우울증·알츠하이머·비만까지… 전자약으로 고친다
[IF] 신경 직접 자극하기 때문에 화학약품 부작용 안 나타나
100g도 채 되지 않는 회색 두건을 둘러쓰게 하고, 1회당 20분씩 2mA(밀리암페어)의 약한 전류를 흘려 보낸다. 정부 출연(出捐) 연구 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이 진행 중인 식욕 억제 연구의 임상 시험 일부다. 실제로 두뇌 피질의 자극을 받은 29명 중 27명이 식욕이 줄었다고 답했다. 대조군에 비해 식욕이 전반적으로 30%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다.
이처럼 전류나 자기장 등 에너지로 뇌, 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내는 전자약이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자약은 치료가 필요한 신경을 직접 자극하기 때문에 기존 화학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덜하고, 실시간 측정과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에는 심장 박동 조절기 등의 형태로 사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질환 치료 가능성이 나타나면서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세계 전자약 시장 규모는 2024년 239억달러(약 32조원)에서 2029년 336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류, 자기장으로 신경 자극
전자약은 체내에 삽입하는 침습형과 체외에 부착해 사용하는 비침습형으로 나뉜다. 침습형 전자약은 심장 박동 조절기와 뇌심부 자극기가 대표적이다. 비침습형 전자약은 전류나 자기장을 통해 뇌 신경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이 많다. 전극을 통해 전기 자극을 두개골로 보내면 특정 신경 세포가 자극되고 신체나 심리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귀에 붙이는 패치 형태의 ADHD 치료용 전자약, 팔찌처럼 착용하는 관절염 치료용 전자약도 있다. 초음파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거나, 빛으로 신경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하는 방식의 전자약도 나왔다.
최근에는 두뇌를 자극하는 비침습형 전자약이 각종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잇따른다. 영국 서리대 연구진은 미국 ‘테크 이노스피어 엔지니어링’이 개발한 장치를 통해 어린이들의 ADHD 증상을 완화했다고 발표했다. 이 장치는 ‘경두개 불규칙 신호 자극’을 통해 뇌를 자극해, 활동성이 낮은 부위를 활성화한다. 장치를 통해 전류를 흘려보낸 어린이 중 55%가 ADHD 표준 검사에서 증상이 호전됐다. 전류를 흘려보내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17%만이 증세 호전을 보였다.
중국 닝보대 의대 연구진은 경두개 직류 자극을 통해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65세 이상 남녀 알츠하이머 환자 1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6주간 전전두엽 피질을 자극한 그룹은 대조군에 비해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헬스케어 기업 와이브레인은 지난 6월 편두통 치료제 ‘두팡’으로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이 치료제는 손가락 크기의 패치를 이마에 붙이는 ‘전자약’이다. 이마의 신경에 전기 자극을 줘서 신경을 안정시키고 편두통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앞서 이 회사는 2021년 대뇌피질에 전기 자극을 가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자약 ‘마인드스팀’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현재까지 병원 130곳에서 8만건 이상 처방됐다. 와이브레인 관계자는 “마인드스팀은 임상에서 항우울제보다 높은 우울 증상 개선 효과를 보였다”며 “FDA 허가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전자약 기업 리메드도 자기장 우울증 치료제 ‘브레인스팀’을 내놨고, 같은 방식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뇌와 컴퓨터 연결하는 BCI 연구도 활발
뇌에 전극을 직접 심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가 이끄는 뉴럴링크는 첫 임상 실험자 뇌에 심은 칩을 통해 무선으로 체스 게임을 즐기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브라운대 의대 공동 연구진은 사지 마비와 언어 장애를 겪는 루게릭병 환자의 뇌 영역 피질에 전극 256개를 심었다. 이를 통해 환자가 말하려는 문장을 파악했고, AI를 활용해 환자 목소리로 음성을 출력하는 임상 시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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