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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총사령관에 "빨리 7층 피신" 전화...옮긴 곳에 폭탄 떨어졌다

太兄 2024. 8. 19. 17:43

헤즈볼라 총사령관에 "빨리 7층 피신" 전화...옮긴 곳에 폭탄 떨어졌다

얼굴 없는 '유령'이라 불리던 인물
이스라엘군에 피살된 내막 드러나
통신망 뚫어 공격 쉬운 위치로 유인
누가 전화했는지는 아직 안 밝혀져

입력 2024.08.19. 10:26업데이트 2024.08.19. 13:29
 

7월30일 저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의 한 건물에서 일하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군 총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62세 추정)에게 누군가 전화를 했다. 사무실로 쓰고 있는 2층에서 7층의 거주 공간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헤즈볼라(’알라의 당ㆍ黨'이란 뜻)는 이슬람 시아파가 이끄는 레바논의 무장 정파로, 슈크르는 이 헤즈볼라의 군병력 양성과 이스라엘 공격, 테러를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슈크르 피살(被殺) 전후 내막에 따르면, 그는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슈크르가 주거와 사무실이 한 데 있는 이 건물에서 일한 것도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웃들조차 그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실제 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유령(ghost)”으로 불렸다. 심지어 그의 피살 뉴스를 보도한 레바논 매체들은 엉뚱한 사람을 슈크르로 게재하기도 했다.

7월30일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살해된 레바논 헤즈볼라군 총사령관 푸아드 슈크르(왼쪽). 그는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 레바논 매체들은 처음에 그의 피살 뉴스를 전하며 엉뚱한 사람의 얼굴(오른쪽)을 게재했다.

슈크르가 이 전화를 받고 7층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오후 7시쯤 이스라엘 공군의 폭탄 여러 개가 그의 아파트ㆍ사무실 건물을 강타했다. 이 폭격으로 아파트로 쓰던 7층과 그 아래 3개 층이 박살 났다. 슈크르와 아내, 두 자녀, 또 다른 두 여성이 죽고 70여 명이 다쳤다. 옆 건물로 날아간 슈크르의 시체는 한 참 뒤에 발견됐다.

며칠 전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으로 이스라엘 북부 마을에서 12명의 아이들이 죽은 것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이었다.

슈크르가 살해된 지 수 시간 지나서,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던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폭발로 인해 살해됐다. 이후 이란과 헤즈볼라는 모두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그를 7층으로 올라가라고 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직은 드러난 것이 없다. 그러나 의도는 분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주위 건물에 가린 그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보고 타격하려고 7층으로 유인한 것이었다.

헤즈볼라는 이후 조사에서 누군가 헤즈볼라 내부통신 시스템을 해킹하고 들어와서 그를 식별하기 쉬운 높이로 유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2월,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전(全)수뇌부와 대원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금했고, 이후 헤즈볼라는 내부통신망이나 일반 전화 사용 시 모두 암호를 이용해 통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헤즈볼라는 결국 이스라엘의 정보ㆍ기술력이 자체의 내부 방첩 시스템을 능가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그동안에도 헤즈볼라의 군 수뇌부 일부가 이스라엘과 미 중앙정보국(CIA)에 암살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같은 해외에서였다.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하마스의 대규모 테러 이후 전개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전투와 포격으로 헤즈볼라군 주요 지휘관과 대원들 약 400명이 죽었다. 그러나 모두 레바논 남부였다. 헤즈볼라 수뇌부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신들이 살해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敵) 이스라엘과 일종의 ‘교전수칙’이 설정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7월 27일 이스라엘이 장악한 골란고원의 한 마을에서 헤즈볼라 공격으로 12명의 아이들이 죽고 슈크르가 이스라엘군 표적에 오르자, 이스라엘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사상 최대의 미군 몰살 테러 기획한 인물

슈크르는 1983년 10월 23일, 미 해병대원ㆍ해군이 주둔하던 베이루트의 숙소에 막대한 폭탄이 적재된 트럭을 보내는 테러를 기획했다. 당시 미군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ㆍ시리아 간 분쟁을 끝내는 평화유지군 임무를 띠고 왔지만, 이 테러로 241명이 사망했다. 지금까지도 미군이 테러로 숨진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수 분 뒤에는 같은 임무로 파견된 프랑스 특수부대원 58명도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이 테러는 1985년 헤즈볼라가 공식 출범하기도 전이었고, 이후 슈크르는 40여 년 간 미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았다.

1983년 10월 23일 미 해병대가 베이루트에서 숙소로 쓰고 있던 건물이 막대한 폭탄을 적재한 트럭의 돌진으로 파괴된 모습./자료 사진

슈크르는 1985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미 항공사 TWA 847편의 납치를 기획했다. 결국 승객들이 풀려나기 전에, 이스라엘은 700명의 이슬람 시아파 전사들을 석방해야 했다. 이후 그는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는 올해 단 한 번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숨진 조카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수 분에 그쳤다.

슈크르는 2006년에는 헤즈볼라 대원들의 국경 침투와 이스라엘 군인 8명 살해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군이 한 달 간 레바논을 침공하는 전쟁이 촉발됐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가까운 친구인 슈크르는 이란의 지원을 받아 헤즈볼라 병력을 훈련하고, 로켓ㆍ드론 등의 무기를 확대했다. 슈크르의 지휘 속에, 레바논 정규군도 아닌 헤즈볼라 무장병력은 보유한 로켓이 1만5000기에서 15만 기로 늘어났고 중동에서 가장 잘 무장된 비(非)국가 플레이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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