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兄思想

천부경의 유래

太兄 2023. 4. 28. 20:18

천부경의 유래

2018-05-19 07:15:22


천부경의 유래


'천부경'은 천제환인의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온 글이다. 환웅대성존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태백산으로 내려오신 뒤에 신지혁덕에 명하여 이를 독도문으로 기록하게 하셨는 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고비를 보고 다시 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였다. 그러나 한양조선에 이르러 세상 사람이 오직 유가 경전에만 뜻을 두고, 조의(皂衣)의 정신을 되살려 다시 서로 들어 보고 보전하는 자가 없으니 이 또한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특별이 이를 들춰 내어 후손에 전하고자한다.
*녹도문~6천 년 전에 초대환웅천황의 신하인 신지혁덕이 최초로 만든 문자
*최치원~신라 말의 유학자, 당나라에 유학하고 귀국하여 시독겸 한림하사가 됨, 골품제를 시행한 정계에 실망하여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삼국유사)


최치원이 한문으로 번역한 천부경은 '환단고기'를 편술한 운초가 1916년 9월9일에 묘향산에서 발견하였다.  이를 묘향산석벽본이라 하는 데, 태백일사에 실린 천부경 원본과 전문이 일치한다.     
*신지의 전고비~신지(神誌)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교육부 장관격이다. 배달.단군조선 때의 관직명이다. 환웅천황의 명에 따라 천부경을 기록한 신지혁덕이라는 이름이 밝혀졌다. 고운이 발견한 고비(古碑)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3세 갸륵단군의 명을 받고 '배달유기'을 편찬한 신지 고글, 또 6세 달문 때에 신지비사의 제천서원문을 쓴 사람은 신지 발리이다.  고조선기에 "신지는 청석에다 삼일신고를 그려져 전했다"라고 하였다.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동시에 강설된 전례를 볼 때, 천부경도 단군조선에서 삼일신고와 동시에 처음으로 청석에 전문(篆文)으로 각자(刻字)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고운이 발견한 그 전문각비와 단군 개국 초의 각비(刻碑)가 같은 것인지는 알 수없다.(송호수, 한민족의 뿌리 사상, 74쪽)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507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5, 소도경전을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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