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147만명이 청원했던 '문재인 탄핵'

太兄 2024. 8. 10. 19:16

[박정훈 칼럼] 147만명이 청원했던 '문재인 탄핵'

민주당 기준대로면 文 탄핵 사유야말로 차고 넘쳤지만
당시 야당은 엄두조차 못냈다…
탄핵의 피맛을 본 민주당 눈에는 순진해 보였을 것

입력 2024.08.10. 00:02
2017년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베이징의 현지 식당에서 노영민 주중 대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3박 4일간 10끼 식사 중 8끼를 우리 측과 먹어 '혼밥' 냉대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탄핵이란 헌법의 힘으로 공직자를 쫓아내는 서슬 퍼런 제도이나 시대가 혼탁해지자 발에 채일 만큼 흔해빠진 정쟁의 소도구가 되어 버렸다.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 새 민주당 등이 발의한 탄핵안이 7건이다. 방통위원장은 임명도 되기 전에 타깃으로 찍히더니 취임 다음 날 탄핵안이 발의됐다. 아무리 사람이 잘못해도 단 하루 만에 탄핵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을 저지르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항변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재명 전 대표와 민주당 등을 수사한 검사 4명도 탄핵 리스트에 올랐다. 한 검사는 당사자들도 부인하는 피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이 탄핵 사유로 적시됐는데 첨부된 증거 자료는 언론 보도 4건이 전부였다. 다른 검사는 음주 추태 의혹 등을 문제 삼았다. 설령 사실이더라도 탄핵 거리가 될 수 없는 사유였다. 이미 무혐의로 결론 난 한명숙 사건 허위 진술 의혹이며 심지어 위장 전입까지 탄핵 사유에 들어갔다. 중대 사안에 쓰여야 할 탄핵의 큰 칼이 허드렛일 용도의 막칼이 되어 버렸다.

민주당과 조국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작전에도 돌입했다. “3년도 길다”며 탄핵 조사 청문회를 열고 제보센터까지 개설했다. 민주당은 탄핵 청문회의 근거로 국회 청원을 내세운다. 윤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해달라는 청원에 143만여 명이 동의했으니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4년 전에도 당시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있었다. 여기엔 147만명이 동의해, 민주당이 참여를 독려하며 분위기 띄운 윤 대통령 탄핵 청원보다 4만명 가량 더 많았다. 그러나 4년 전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은 청원을 이유로 탄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무현 탄핵 역풍’의 트라우마도 있겠지만 엄중해야 할 탄핵을 함부로 내질러도 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 임기 중 탄핵 청원은 두 차례 제안됐다. 147만명이 동의한 청원은 코로나 창궐 초기인 2020년 초, 문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안 막아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발의된 것이었다. 그 전 해인 2019년엔 북한 핵 방치·묵인과 국정원 대공 수사권 박탈을 사유로 든 탄핵 청원에 25만명이 동의했다. 탄핵 요건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떠나 하나같이 국민 분노를 살 만한 사안들이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문 정권이 저지른 울산 선거 개입은 헌법상 탄핵의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는 중대 범죄였다.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 8개 부서가 총동원된 혐의가 드러났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미는 후보의 공약을 지원해 주고, 경찰은 허위 제보를 근거로 경쟁 후보를 압수 수색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심각한 헌법 유린이었지만 이걸 보고도 당시 야당은 탄핵 카드를 꺼내들지 못했다.

문 정권은 국가 통계도 조작했다. 아파트 값 지수만 94회 손대고 5년 내내 고용·소득·부동산 통계를 왜곡한 혐의가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통계청장을 내쫓고 그 자리에 자기 편을 갖다 앉히기까지 했다. 이렇게 마사지한 거짓 통계를 근거로 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의) 긍정 효과가 90%”라거나 “부동산은 자신 있다”는 허언을 늘어놓았다.

지금 민주당과 조국당이 주장하는 기준이 적용된다면 문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차고 넘쳤다. 우리 국민이 죽어가는 걸 방치하고 ‘월북’으로 몰아간 서해 공무원 사건, 에너지 백년대계를 하루아침에 뒤집은 탈원전 폭주, 멀쩡한 원전을 멈춰 세운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온갖 국기 문란 의혹의 정점에 문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차라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사소해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이유로 해병대원 사건 수사 개입을 든다. 문 정권은 조국 법무장관을 비호하려 검찰 수사팀을 공중 분해하고 검찰총장 직무까지 정지시켰다. 수사 개입을 넘어 아예 수사를 못하게 막았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문제도 탄핵감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 전용기로 타지마할에 가고, 현지 대통령도 없는 체코며 이집트 피라미드를 방문해 세금으로 관광 다녔다는 논란을 빚었다. 청와대 특활비로 의심되는 이른바 ‘관봉권(官封券)’으로 옷·장신구를 구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무엇이 더 중대한가.

민주당 등은 대(對)일본 저자세 외교도 문제 삼고 있다. 이것이 탄핵 사유라면 중국에 ‘사드 3불(不)’을 비밀 약속하고, 김여정의 한마디에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등 대북·대중 굴욕으로 일관했던 문 대통령은 몇 번 탄핵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민주당 기준대로라면 문 정권 5년간 탄핵을 정치 쟁점화할 기회가 수두룩했지만 당시 야당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의 피 맛을 보았던 민주당 눈에는 참으로 순진하게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