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 한동훈 "김경수 복권 반대"
"민주주의 파괴 범죄 반성 안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復權)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김 전 지사는 전날 열린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에서 8·15 광복절 복권 대상자에 포함돼 오는 13일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남겨두고 있다. 대통령실에선 “국정원·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다수 연루자가 사면·복권된 것과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김 전 지사 복권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복권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대표가 ‘반대’로 입장을 정하면서 사면권자인 윤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주목받게 됐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 복권을 재가한다면 한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주요 정치 현안에서 이견을 빚게 된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지사 복권과 관련해 한 대표는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반성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치를 하라고 복권해 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국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란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시중 여론 등 민심을 대통령실이 알아야 한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 전 지사가 복권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등에선 “댓글 조작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공정성을 훼손한 범죄에 대해선 복권에 반대한다”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다.
김 전 지사는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22년 12월 사면됐다. 당시 복권은 이뤄지지 않아 피선거권이 2027년 12월까지 제한돼 있다. 그런데 김 전 지사는 특검 수사와 법원 재판 과정은 물론 지금까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한 적이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이 ‘야권 분열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김 전 지사가 이번에 복권되면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출마 길이 열려 이재명 전 대표 일극 체제로 흘러가는 야권에 균열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지지층 사이에선 “문재인 대통령도 사면·복권을 해주지 않은 김 전 지사를 굳이 윤 대통령이 사면·복권해 주느냐”며 반대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에선 9일 오전까지만 해도 김 전 지사가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복권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여야 협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오전에 “김 전 지사가 과거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복권을 받아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가 여야 간 협치의 시작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시간쯤 뒤 국민의힘은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전 지사 복권에 대한 당의 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며 “정부에서 검토 중인 만큼 당은 신중히 상황을 주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기류 변화엔 한동훈 대표가 김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하는 입장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수석대변인이 한 대표 생각과 다른 메시지를 내면서 이를 진화하기 위해 ‘당의 입장이 없다’는 공지를 다시 내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 측근인 김종혁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 “민주주의 꽃인 선거 파괴한 드루킹 그분? 반성은커녕 ‘진실은 법정 밖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복권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서도 김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하는 글이 이어졌다. “댓글 조작으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핵심 인물을 윤석열 정부가 복권하는 게 맞느냐” “댓글 조작 범죄에 대해 반성은커녕 인정도 안 했는데 복권해선 안 된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대표가 이날 기자들이 김 전 지사 복권과 관련한 입장을 묻자 “해야 할 때 백 브리핑하겠다”며 답을 미룬 것도 당원이나 지지층 사이에서 반대론이 만만치 않은 점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날 대체로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친명계 일각에선 “야권 분열의 의도가 깔렸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지난 총선에서 대거 낙천·낙선해 세력의 구심점을 찾지 못하던 민주당 친문·비명계는 김 전 지사 복권이 정치적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김두관 당대표 후보는 이날 “김 전 지사의 복권이 민주당의 분열이 아니라 민주당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살리고,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환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만시지탄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한 친문 인사는 “총선 전에 복권됐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러 정치적 시나리오를 구상해 볼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친문계 의원은 “당장 임박한 선거도 없는 만큼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따라 김 전 지사의 정치적 길도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독일에 머무는 김 전 지사는 연말쯤 귀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친명계에선 김 전 지사 복권이 ‘이재명 독주 체제’에 도전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전 지사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 보장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도 “하필이면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 복권을 하는 건 떨떠름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당대표 연임을 앞둔 시점에 대통령실이 김 전 지사 복권 카드를 유력 검토하는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언주 의원도 라디오에서 “김 전 지사든 누구든 특별사면·복권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고, 황정아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나 “(복권 대상에) 김 전 지사가 포함돼 있다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사안이다. 하지만 특별사면 대상에 국정 농단 세력이 다수 포함된 것은 유감”이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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