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교 교사, 대형 학원에 2억5400만원 받고 수천개 문항 팔아
경찰 '사교육 카르텔' 수사 결과 중간 발표
총 69명 입건...현직 교사 24명 송치
교사에 대한 청탁금지법 적용 처음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 2022년 5월 ‘2023학년도 6월 수능모의평가(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검토진으로 참여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받은 출제 정보를 토대로 11개 문항을 제작, 시험 전 사교육업체 2곳에 각각 판매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를 받는다. 이런 수법 등으로 A씨는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매달 정기적으로 사교육업체에 총 수천여개의 문항을 납품한 대가로 2억5400만원을 챙긴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파악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입시 학원들이 수능 출제 경향 같은 정보를 파악하고 교사에게 금전을 제공하는 식의 ‘사교육 카르텔’ 수사를 통해 A교사를 포함 총 69명을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중 현직 교사 24명을 송치했다. 입건 대상자 전체로 보면 69명 중 현직 교원은 46명(범행 후 퇴직자 2명 포함), 학원 관계자는 17명(강사 6명 포함), 기타 6명이다. 기타 6명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 4명과 입학사정관 1명이 포함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를 오늘 교육청에 통보할 예정이니, 각 교사에 대한 징계 여부는 교육청에서 곧 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현직 교사들의 문항 판매 행위에 대해 청탁금지법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치된 24명 모두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현직 교사다. 범죄 유형별로 나누면 문항판매 14명, 문제유출 1명(A씨), 자격위반 19명이며, 10명은 혐의가 중복 적용됐다.
특히 A교사는 EBS 교재 출제위원으로도 활동했고 현재 교사 신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A교사는 문제 유출과 관련해 ‘모의평가와 출제한 문제 간 유사성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전문가 감정 등을 토대로 유사성을 확인해 혐의를 적용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판매한 문제 중 일부는 100%에 가까울 정도로 유사하게 모의평가에 출제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능은 출제진이 외부에 합숙해 문제가 유출되기 어려운 반면 모의 평가는 문제 출제 후 시험이 약 40일 후에 있어 그 사이 유출 범죄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유출한 문제를 먼저 풀어본 사람은 나중에 쉽게 풀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A씨를 포함해 문항 판매 혐의로 송치된 14명 중 11명은 사교육업체에 수능 관련 사설문항을 제작·제공한 대가로 금원을 수수했다. 문항당 판매 가격은 평균 10만원 내외이고 최대 20만∼30만원짜리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사교육업체로부터 돈을 가장 많이 받은 이가 A씨(2억5400만원)”라며 “나머지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정도로 조사됐다”고 했다. 다른 3명은 특정 학원에 독점적으로 사설문항을 제공하기로 약정한 후 최대 3000만원의 전속(독점)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 교사는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문항을 판매한 브로커 등은 파악된 바 없다”며 “송치된 24명 현직 교사 모두 개인 일탈로 문항을 판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문항판매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겸직근무 위반 등 징계 사유일 뿐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교육부는 지난 2017년부터 이러한 일탈에 대해 ‘문항을 판매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수차례 학교에 전달해왔다”며 “교사들의 ‘위법성을 몰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국수본은 문항 판매 시 평가원 주관 출제본부 입소가 불가함에도 허위의 자격심사자료를 작성·제출해 출제위원으로 선정된 19명을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현직 교사가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경우, 최근 3년간 수능과 관련된 상업용 수험서 집필에 관여한 적이 없다는 ‘출제위원 후보자 자격 심사자료’를 작성·제출하고 있다.
이번 송치 대상자에는 논란이 됐던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 관련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은 수능 영어 23번 지문과 똑같은 지문으로 사설 모의고사 문항을 만든 입시업체와 해당 강사 B씨, B씨와 공모한 교사·교수를 상대로 수사를 아직 진행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 7월 교육부로부터 최초 수사 의뢰서를 접수한 뒤 지난 8월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판매한다’는 자체 첩보를 입수해 입건 전 조사(내사) 및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교육부와 감사원의 추가 수사 의뢰를 받아 총 7회의 압수수색 및 관련자 105명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국수본이 수사하는 사교육 카르텔 사건은 총 24건으로 교육부 수사 의뢰 등 5건, 감사원 수사 의뢰 17건, 자체 첩보 2건으로 나뉜다. 국수본은 “현재 수사 중인 나머지 사교육 카르텔 사건 40명에 대해 신속히 수사를 마무리하고, 교육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입시 절차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건전한 교육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실효적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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