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일잉구관(一仍舊貫)

太兄 2024. 7. 11. 16:01

일잉구관(一仍舊貫)     
한일.인할잉.예구.꿸관 - 좋은 옛 관례를 그대로 따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무조건 낡았다고 폐기할 것인지, 아니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판단할 나름이다. 하지만 전면 배척하거나 수용하는 극단은 금물이다. 많이 인용되는 孔子(공자)의 말씀이 있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되, 옛것이나 지금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溫故知新(온고지신)이 그것이다.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제도가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다면 蕭規曹隨(소규조수)라 하여 前漢(전한) 초기 蕭何(소하)가 만든 법규를 曹參(조참)이 따른다고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옛 관례나 좋은 점(舊貫)을 그대로 따라 행한다(一仍)는 ‘論語(논어)’에 나오는 성어다. 인할 仍(잉)은 ‘따르다, 좇다, 거듭하다’의 뜻이 있다.
 
先進(선진)편에 많이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 閔子騫(민자건)은 孔門十哲(공문십철) 중에서 顔淵(안연) 등과 함께 덕행에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효자를 기린 二十四孝(이십사효) 중에서도 蘆衣順母(노의순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계모가 자신에게는 갈대 솜의 옷을 입히고 동생들엔 따뜻한 솜옷을 입히는데도 순종했다.
 
아버지가 사실을 알고 계모를 내쫓으려 하자 동생들까지 고생한다며 말렸다. 공자가 민자건의 효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이 트집 잡을 일이 없다고 칭찬했다. 바른 길만 걷는 민자건이 魯(노)나라의 관리가 재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개조하려 하자 조언한 데서 성어가 나온다.
 
‘옛 것을 그대로 쓰면 어떻기에 반드시 개조해야 하는가(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잉구관 여지하 하필개작).’ 이를 듣고 공자는 또 칭찬했다. ‘그 사람은 말을 잘 하지 않지만 말을 한다면 꼭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夫人不言 言必有中/ 부인불언 언필유중).’ 옛 창고를 다시 헐고 다시 짓는 것보다 불편한 곳만 수리한다면 백성들의 수고를 줄일 수 있다고 한 것은 기존의 바탕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고전에도 사용한 곳이 많다.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의 시에 ‘유막의 하늘은 옛것 그대로 쓰고(劉幕一天仍舊貫/ 유막일천잉구관)’란 구절은 옛날 하늘을 벗 삼았던 劉伶(유령)과 같이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말했다. 正祖(정조) 실록에는 사당의 수리를 주청하며 ‘장마가 들기 전까지 원상대로 속히 수리하도록 하소서(未潦前仍舊貫卽速修葺/ 미료전잉구관즉속수즙)’란 부분이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變化無雙(변화무쌍)한 오늘날 옛것을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아니고 取捨選擇(취사선택)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 것은 舊惡(구악)이고 積弊(적폐)로 치부하고 무조건 배격해야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마구잡이로 파헤치면 끝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지 말고 좋은 점은 받아들일 줄 아는, 민자건식으로 창고를 개조해 쓸 수 있어야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여력을 쏟을 수 있다.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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