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겨레를 구원한 다섯분의 영웅들

太兄 2024. 6. 26. 20:13

2024‘ 06’ 23‘(일)
겨레를 구원한 다섯분의 영웅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부닥치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
각자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필자 개인적 생각으로는 배고픔, 추위, 질병, 전쟁(외적의 침입), 문맹(文盲) 등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이러한 엄청난 어려움으로부터 겨레를 구원한 다섯분이 있는바, 그 다섯분의 위대했던 역정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 다섯분 영웅들

1. 추위에서 구출한 문익점(고려말)

옛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말로 “춥고 배고프다”였고, 편한 신세를 “등 따습고 배부르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 인류들에게는 추위를 극복하는 것이 하나의 숙명적 과제였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천년 우리 겨레는 추위에 떨며 살았다. 
물론 그때도 지배층에서는 비단이나 虎皮등으로 추위에 크게 노출되지 않고 살았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않아 한겨울에도 삼베옷 중간에 닭털이나 억새꽃을 넣어 보온하는 정도였으니, 그어려움을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런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한 해결사 한 분이 있다. 

바로 고려말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문익점 선생이시다.
물론 문익점 선생은 고위관료여서 자기 자신은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어려움을 그냥 볼 수 없어서 목화씨를 중국에서 가져와 재배에도 성공하여, 서민들에게 솜이불을 덮게하고 무명옷을 입게하였다. 
또한 재배기술과 목면제조 기술의 발전, 종자개량 등에도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문익점 선생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사신으로 오가면서 목화씨를 가져올 수 있었으나, 그 사람들은 당장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게 던져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익점 선생은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이를 가져와 백성들이 더 이상 겨울에도 춥지 않게 지내도록 함으로써 청사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2.백성을 문맹에서 구출한 세종대왕(조선)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것은 식목이지만 낳은 자식에 교육을 가해 잘 키우는것은 양목이다.
동물에게는 먹이만 주기때문에 사육이라고 하지만 만물영장인 인간에게는 교육을 하기에 양육이 된다.
유대인 세계에서는 스승은 부모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단군 이래로 수많은 임금이 있었지만, 가장 뛰어난 임금은 바로 조선의 4대 세종대왕이라는데 異說이 없다. 
또한 그분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 바로 한글 창제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유산임에 분명하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길러 낸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 소장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 우리 민족의 문자를 창제하였다.

한글은 14개의 자음과 10개 모음으로 구성되어 무려 8,800여개의 소리와 문자를 낼수 있으나 일본어는 300여개, 중국어는 400여개에 불과하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디지털 문자로 바꾸는데는 다시 한자로 바꾸는등 절차가 복잡하나 한글은 디지털 문자화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고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준비하여 세계 문맹률 퇴치에 공로가 큰 분에게 수여하고 있는 바 이는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다.

※ 참고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큰일에는 항상 반대자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한글창제에 반대 여론도 심각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바로 기득권층이데 반대사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글인 한자를 제쳐놓고 우리의 글을 만든다는 것은 중국에 대한 事大에 어긋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서민들이 글을 깨우치면 글을 아는 양반들의 기득권이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반대 인물은 잘 아시다시피 최만리와 정창손이다.
이에 세종대왕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최만리를 의금부에 가두고, 정창손은 파직을 시키면서 강력하게 밀어부쳤던 것이다.

3. 질병으로 부터 구출한 허준 선생(조선)
허준은 타고난 명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의술을 동의보감이라는 필생의 역작에 담아서 이를 후대에 전하였기에 그의 공로는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이 동의보감이 왕명에 의하여 출발되었고 초기에는 5명의 의관이 합동으로 진행되기는 하였으나, 허준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공적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한방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었고, 지금도 여러나라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다.

이에 허준을 일본에서는 조선의 편작이요 창공이라 극찬하였고, 중국에서도 천하의 보물이라고 칭송하였다.
여하튼 종합 임상의학서인 동의보감은 허준 선생이 선조 사망에 따른 유배시에 주로 집필하였는데,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생의 마지막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25권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대작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이 동의보감은 현재 국보 319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수준을 갖춘것도 허준 선생의 업적이 크다고 본다.

* 참고
허준은 선조사망에 따른 유배지에서 동의보감을 집대성하였고
정약용은 정조사망이후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신유사옥) 18년간 강진으로 유배되었지만
어려운 유배생활에서 실학(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포등)을 집대성하는 호기로 활용하였다.
이와같이 위기란 위험을 잘 극복하면 기회가 온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4. 외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조선)
우리나라 역사상 외적의 침입이 수없이 많았지만 가장 오랜기간, 그것도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던 전쟁은 바로 임진왜란이 아닌가 한다.
임진왜란 시 나약하고 도망가기에 바쁜 선조. 
국가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간언과 대책을 세우지도 않으면서 당파이익에만 몰두하였던 신하들. 
제대로 훈련된 군대 하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왜군을 맞이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내었던 분이 있다. 
우리가 다들 아시다시피 바로 이순신 장군이시다.

이 위대한 영웅은 선조의 끊임없는 의심과 견제, 부하장수인 원균의 지속적인 음해와 시기등으로 세번의 파직과 두번의 백의종군, 그리고 옥살이까지 하였다.
그리고 어디 하나 원조받을 곳이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이를 뚫고 23전 23승의 신화를 이룩하였으니, 이는 바로 실제한 전설인 것이다.
이러하기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난세에 이순신 같은 영웅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늘이 조선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때에 맞추어 이를 내려보낸 것이라고 하고있는 것이다.

* 참고
필자가 보기에 이순신 장군의 학인진 전법은 고대 로마군을 포위섬멸한 카르타고의 하니발이 개발한 칸네전투와 유사하게 보인다.
임진왜란에 등장한 거북선은 (전남나주 나대용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 완성) 오늘날 핵을 장착한 함대급 정도로 보인다.

5.배고픔을 탈피한 박정희 대통령(대한민국)
필자도 위관급 장교시절에는 박정희= 독재자로만 인식한 나머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소령이후 박정희에 대한 업적을 알게 되었고 예편후 안보분야를 집중연구후부터 박정희= 위대한 영도자로 존경하게 되었다.

* 필자의 대통령 평가 5대요소는 위기관리능력, 정치력, 경제발전, 인재등용 및 도덕성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고픔보다 더 서글픈 경우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식량과잉시대이니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생까지만 하여도 춘궁기니 보릿고개라는 것을 기억할 터이고,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배고픔의 시절은 단군 조선이래 1960년대까지 이어온 우리 겨레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반만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준 분이 있다. 
바로 박정희 前대통령이다. 
당시 서양의 산업화는 평균 200년, 일본은 평균 100년이 소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약 30년(1960~1990) 소요되었다.
영국산업혁명(1760~1840)기간 평균경제성장률은 3~4%였으나 박정희 재임기간 평균경제성장률은 10%대였다.
미국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20세기 진정한 혁명가는 오직 박정희 대통령이었다고 했다.
김 대중 전 대통령도 새마을 운동을 통한 자신감 획득과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은 경제가 발전되어야 민주주의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띠라서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개발독재를 하였으나 그분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 참고(인요한 의사 왈! / 전남 순천)
링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보다 백 배 더 독재를 했습니다.
신문사 300개 문 닫았어요. 주의회를 재판도 안하고 연금을 시켰어요.
대법원장 불러 가지고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 했어요. 
남북이 나눠지고 전쟁이 날 것 같으니까 링컨 조차도 그런 극단의 처방을 냈어요.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평가를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시의 '시대성'은 배제하고서 오늘의 잣대로 옛날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일갈하였다.
맞는 말이다. 
당시 시대성(상황)을 무시한 나머지 지금의 잣대로 600년전 이성계를 평가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반역이 될 수 있으며 열 한 명 부인을 둔 세종대왕은 바람둥이로 매도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면 영웅은 단 한명도 없고 모두가 매국노가 될 수있다.

■ 맺음말

상기 영웅 다섯분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적 주인공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상기 다섯분 영웅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의 소중한 자유와 경제 및 안보를 지키는데 배전의 노력을 해야한다.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 명수 (육사 31)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