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는 특무대장 김창룡 제13회》
13.남로당 조직부장 이중업 체포와 탈출
이중업(李重業)은 남로당의 제3인자로 조직부장이었다. 군대로 말하면 작전참모격으로 박헌영의 지령을 받아 남한사회를 혼란시키고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주무참모였다.
이중업은 49년 2월 25일 장충동 아지트에 들어가려다 공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돌아 남산쪽 산길로 가다 잠복하고 있던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었다.
도망자들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수사관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는 체포 당시 공작금 80만원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었는데 고향 경북 예천에서 집을 사려고 새벽차로 올라왔다고 거짓 진술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바빠서 이 돈을 놓고 갈테니 나가게 해달라고 사정하였다.
수사관들은 이사람이 이중업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이미 잡혀 있던 남로당 간첩들에게 먼발치에서 보여주자 이중업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중업은 191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하여 경성제2고보(경복고 전신)와 명륜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박헌영을 만나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박헌영과 함께 지하활동을 하다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을 재건할 때 행동을 같이 하였다.
이중업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서빙고 군 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삼룡은 비서 김형륙을 월북시켜 북에 있는 박헌영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박헌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중업을 감옥에서 탈출시키라며 수도경비 사령부 법무장교 구덕회 대위를 찾아가라고 하였다. 구덕회는 박헌영을 알고 있는 남로당 푸락치였다.
그리고 김창룡 소령과 오제도 검사를 암살하라는 지령도 내렸다.
김형륙은 서울로 돌아와 구덕회 대위를 만나 이중업 탈출계획을 모의하였다.
어느날 김형륙은 구덕회가 구해준 군복을 입고 구덕회의 안내로 서빙고 영창을 순시하였다. 이 때 김형륙과 이중업은 눈이 마주쳤는데 이중업은 김형륙이 군복을 입은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헷갈렸다.
김형륙이 경비대에 입대 한건가?
김형륙은 구덕회에게 공작금을 안겨주며 영창을 관리하는 헌병중사 조병옥을 소개받아 그를 매수하였다.
김형륙은 조병옥 중사에게 매일 술과 여자를 안기고 좌익으로 포섭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조병옥 중사는 완전히 코가 꿰어 김형륙의 노예가 되었다.
사형 집행일이 일주일도 남지않은 어느 일요일 새벽 2시에 조병옥은 당직을 서면서 죄수 이중업이 급성맹장염으로 병원을 가야한다며 보초를 속이고 위병소 밖으로 업고 뛰었다.
고갯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형륙이 사복을 꺼내 갈아입히고 죄수복은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그길로 명륜동에 정해놓은 아지트에 들어가 숨었다.
김형륙이 아침 일찍 시내 공기를 탐지하러 나가보니, 경찰과 군인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죄수를 데리고 나간 조병옥 중사가 돌아오지 않자 보초가 상황계통으로 보고를 하게 되었고 아침 5시에 이중업의 탈옥사실을 보고 받은 김창룡은 머리가 돌아버렸다.
김창룡은 즉시 합동수사본부와 서울경찰청에 비상을 걸고 검문검색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때는 숙군기간이라 김창룡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었음)
그러나 지하로 숨어버린 이중업은 찾을길이 없었다.
김형륙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김수임이 미24군단(군단장 하지 중장) 헌병대장 <베어드>대령과 동거하고 있는 옥인동 집으로 옮겼다.
<베어드> 대령에게는 김수임의 친정 오빠라고 속이고 며칠간 병 간호만 하고 가겠다고 속였다.
김수임 집에서 2개월간 숨어지내는데 박헌영으로부터 월북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김형륙과 김수임은 이중업을 미국인 처럼 변장을 시켜 의사 가운을 입히고 자기 어머니 병을 보러 간다며 헌병대장 <베어드 >대령의 자가용을 이용해 개성 검문소를 통과하여 38선까지 데려다 주고 북으로 도망치게 하였다.
김수임은 간첩죄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을 때 이중업을 숨겨주고 탈북시킨 죄에 대해 잘못을 인정했고, <베어드> 대령은 이중업을 친정오빠라고 자기를 속인 김수임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북에 있는 애인 이강국도 김수임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괴로워 했다.
사랑하는 애인 김수임이 자기들이 제일 싫어하는 미군하고 동거를 하였다고 하니, , ,
(그러나 김수임은 남한에서 이강국은 북에서 총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무지랭이 좌파학자라는 것들이 김창룡과 오제도가 김수임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나팔을 불어대니, 이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환경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지금 한국에는 주사파들 때문에 골머리 아픈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방첩사령부에서 군 내부에 주사파가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는 말은 직무유기다.
지금은 김창룡 시대보다 수사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검거도 하고 예방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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