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3 22:37:50
作名
코뿔소(Rhinoceros)
소?
코끼리?
공룡?
언어(말)는 우리들의 인식. 사고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구속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말이 다르면 똑같은 세계도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말은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그 의미가 사물이 보이는 모양을 결정한다.
의미에는, 외시(denotation)와 공시(connotation)가 있다.
“외시”란 사전에 나타나는 의미,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말한다.
말은 모두,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외시와 공시를 병유 하고 있다.
“빨강”이라고 하는 말이 “공산주의자”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
이것은 공시로서의 의미이다.
경상도 사람이 길에서 만난 친구를 향해 “문둥아” 라고 소리쳐 부를 때,
그 단어는 “한센병(Hansen’s disease)”을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강한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한 말일 뿐이다.
이들은 공시의 의미로 말이 사용되는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물을 바라보고 있어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그 사물을 달리 본다.
이런 우스운 일이 실제로 존재할 것인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프랑스인은 무지개를 7가지색으로 본다.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6색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쇼나어를 말하는 짐바브웨의 아프리카인에게는 3색,
밧사어를 말하는 라이베이라인에게는 2색,
인도네시아인에게는 5색이 보인다고 한다.
태양의 경우도 무지개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림물감을 가져다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
일본어를 쓰며 자란 아이들은 <빨갛게>그린다.
영어를 쓰며 자란 아이들은 <노랗게>그린다.
타이완(중화민국)의 국기는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이다.
다시 말해, 상당수의 중국인은 태양을 <희다>고 본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말(모국어)이라는 이름의 색 안경을 쓰고 바깥 세상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놀라운 것은, 말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심리학자 우메즈하치조우의 연구(1952년)에도 명확히 드러나 있다.
선천적인 맹인이 수술을 하여 시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눈에 처음으로 비치는 외계는 단지 눈부시기만 할 뿐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은 을보고 “원”, <ㅁ>보고 “사각”이라는 말을 배운다.
그리고 그러한 말들을 되풀이하여 배워 기억해서 눈앞의 네모난 것이 네모나게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이나 “삼각”과의 차이를 알더라도 “사각”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고서는 네모난 것도 네모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이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반대로 사물이 말의 산물이라는 셈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성서에서 “태조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함은 정말로 옳은 말이다.
말은 언제나 독립 변수로서 우리들의 인식을 결정 짓고 있다.
<책읽고 밑줄긋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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