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장례식장서 뜻밖의 첫 대면
[여의도 비하인드]
보수 갈등 3인방
20분간 대화 나눠

지난 2일 밤 10시 경기 수원시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가족 상가(喪家)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조문했다. 보수 진영 내 ‘앙숙’으로 평가받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에 따르면 이 대표가 조문을 마치고 4인용 탁자에 먼저 앉아 있었다. 이후 도착한 한 의원이 이 대표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장 대표는 한 의원 옆에 앉았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당시 조문객은 30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한 의원이 장 대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고, 장 대표는 “와줘서 고맙다”는 취지로 답했다. 장 대표는 한 의원이 채워준 술잔을 말없이 비웠다고 한다. 이후 대화는 이 대표 주도로 20분간 간간이 이어졌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정치권 인사는 “정치 현안 이야기보다는 장 대표의 상심을 나누는 자리였다”고 했다.
장 대표는 현재 국민의힘 대표이고, 이 대표와 한 의원은 한때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지만 당내 친윤계에 의해 물러났다. 세 사람은 그간 상대를 견제하며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앞서 장 대표는 ‘당원 게시판’ 문제로 한 의원을 제명했다. 한 의원은 국민의힘 복당 의지를 밝히며 장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개혁신당을 이끄는 이 대표는 이 같은 장 대표와 한 의원의 행보를 비판해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 사람이 한자리에 동석하는 일도 드물었다. 장 대표와 한 의원은 2024년 12월 윤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한자리에 앉아 대화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대표와 한 의원이 동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장 대표와 이 대표의 경우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3월 말 한 차례 오찬을 한 이후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사람의 대면은 한 의원이 부산 지역구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끝났다. 정치권 인사는 “조문을 하는 자리여서 이번 만남에 정치적 의미를 두긴 어렵지 않겠느냐”면서도 “앞으로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이야기하는 조문객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도 장 대표 가족 상가에 근조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여야 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예우는 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했다.



검·경이 서로 견제해야 하는 이유 보여준 '광주 여고생 피살'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을 수사한 광주지검이 살인범 장윤기의 범행 의도를 입증할 증거를 현직 경찰관인 그의 아버지가 폐기한 사실을 보완수사를 통해 밝혀냈다. 경찰은 애초 이 사건을 단순 살인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후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장윤기가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여고생을 살해한 정황을 확인해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그의 부친이 관련 증거를 폐기한 것까지 밝혀낸 것이다.
이 사건뿐 아니다. 4년 전 ‘묻지 마 폭행’으로 알려진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성폭행을 노린 범죄였다는 것도 보완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경찰이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했던 ‘가평 계곡 살인 사건’도 검찰이 재수사와 보완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살인과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작년 10월 식당에서 김창민 영화감독을 폭행해 숨지게 한 가해자들이 사건 발생 7개월 만에 구속된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그동안 해왔던 수사의 98%가 이런 일반 형사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였고, 나머지 2% 정도가 특수 수사였다.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 문제라면 특수 수사 기능만 없애면 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검찰 개혁이란 명분으로 보완수사권을 포함한 검찰 수사권 전체를 없애려 하고 있다. 수사권을 완전히 경찰에 주고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기소 여부만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죄자들만 살판나고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길은 막혀 버린다.
선진국 형사 사법 제도의 기본 원리는 모든 수사는 통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수사 기관이 자기들 마음대로 수사하고 마음대로 종결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 기관들을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그 최소한의 견제 장치가 보완수사권이다.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검찰 개혁의 마침표는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라며 “숟가락만 한 보완수사권이라도 주면 그 숟가락으로 칼을 만들어 정권에 언제 칼을 들이댈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을 내세우지만 속으론 검찰이 보완수사권으로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정권 안위를 위해 국민 피해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한 달 만에 지방선거 전으로 돌아간 국힘 지지율

한국갤럽이 3일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41%, 국민의힘 26%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지난 주와 같았고 국힘은 1%포인트 하락했다. 2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은 지난 조사에서 1% 포인트 상승한 42%, 국힘은 5% 포인트 하락한 20%였다. 국힘 지지율 평균치는 20%대 초 중반으로 봐야 한다. 지난 5월 국힘 지지율은 22%대 였고 6·3 지방선거 직후에는 29%였는데 한달만에 선거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6·3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단체장 중 민주당은 12곳, 국힘은 4곳에서 각각 승리했다. 서울에서 역전했지만 국힘은 총선과 대선에 이어 전국 선거에서 세 번 연속 패배한 것이다. 이런 결과는 국힘이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당의 쇄신을 거부하고 오히려 ‘윤 어게인’으로 회귀 경향을 보일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국힘 지도부와 거리를 둔 서울과 평택, 그리고 무소속 후보를 당선시키며 민주당을 견제하면서 국힘에 다시 쇄신의 기회를 줬다.
선거 이후 국힘 지도부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외면하고 보수의 통합과 쇄신마저 거부하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2030의 참정권 수호 운동을 엉뚱하게 ‘전국 재선거’ 주장으로 호도했다. 국힘 내부에서도 흔들리는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한 정략적 구호라는 비판이 나왔다. 다음 주부터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해당(害黨) 행위가 있었다”며 의원 10여 명에 대한 징계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을 변화시키라는 지방선거 민심에 대한 왜곡이면서 보수 세력을 다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다음 달 전당대회와 2년 뒤 총선을 위한 전략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호남 반도체 단지 투자에 속도를 내고 2030 지지율 회복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국힘에는 선거 패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평가도 없다. 선거에서 연속 승리한 민주당이 패자처럼, 연패를 하고 있는 국힘이 승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잠깐 반등했던 국힘 지지율이 지방선거 한 달 만에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국힘의 이런 퇴행 때문이다.
[강천석 칼럼] 호남 반도체, 정책 壽命 5년 넘을까
TSMC 구마모토 공장
超高速 완공시킨 건
일본 정부·기업·국민의
반도체 復興 향한 간절함
호남,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양보·희생하며
반도체 성공시킬지 보여줘야

대통령 비서실장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은 “이 정부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해서 2년 안에 기반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며 대만 기업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건설한 공장을 모델로 들었다.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예상 건설 기간 5년을 28개월로 단축한 초고속(超高速) 사례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막전막후(幕前幕後)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반도체에 배가 고픈 나라다. 일본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반도체 제국이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란 말도 일본에서 나왔다. 반도체와 결합할 수 있는 산업 분야는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반도체와 결합 방법을 찾지 못한 산업 분야는 퇴보하거나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진행은 그들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일본 반도체 제국은 미국의 폭탄 한 방에 무너졌다. 일본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고, 일본 공세에 밀린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인텔이 1985년 D램 사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미국은 일본에 노골적 통상 압박을 가했다. 결국 일본은 1986년 생산 원가(原價)를 공개하고 미국이 정한 가격 이하로는 시장에 팔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고 무릎을 꿇었다. 미국 제재로 수익성이 악화한 일본 기업은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의 타이밍을 놓쳤다. 일본은 미국 제재를 피하고자 대만 기업에 하청(下請)을 줬고, 이것이 TSMC의 탄생 배경이 됐다. 이때 삼성전자도 날개를 달았다.
일본은 그냥 단념하지 않았다. 총리 직속으로 정부와 민간 기업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차례 재기(再起)를 시도했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반도체 기업의 연속 도산(倒産), 휴업과 폐업의 장기화로 반도체 기술과 기술자라는 발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결론이 과거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견습생(見習生)이자 하청 업체였던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 공장을 일본에 유치해 기술을 배우고 기술자를 다시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TSMC는 구마모토 공장 건설에 돈을 많이 쏟아붓지도, 인허가받기 위해 발품을 팔 일도 없었다. 일본 정부는 조(兆) 엔(円) 단위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일본 총리들과 장관들은 TSMC의 회장·사장을 상객(上客)으로 모시며 인허가 절차는 정부 공무원과 구마모토현 공무원들이 대신 했다.
배부르면 밤일과 휴일 근무를 싫어하게 되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20여 년 전부터 인적 드문 심야(深夜)에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일이 사라졌다. 구마모토 TSMC 건설 현장에선 1970년대 중동 진출 한국 건설 근로자들처럼 3교대 24시간 철야(徹夜) 근무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근로자의 볼멘소리도, 주(週) 52시간 근무 반대라는 노조의 항의 시위도 없었다.
우리 동네 물을 왜 그리로 빼가느냐는 지자체(地自體) 간 용수(用水) 시비도 없었다. 환경 단체도 공사장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산업용 전기가 필요한 곳에서 원전(原電)에 대한 제한을 이미 풀었다. 5년 공사 기간을 28개월로 단축한 TSMC 구마모토 기적 뒤엔 일본 정부·기업·국민의 반도체 부흥을 향한 간절함이 있다. 현해탄 건너에 이 나라가 있다. 한국의 용인·평택 반도체 라인의 첫 삽을 뜨는 데 6년이 걸렸다.
호남 반도체 투자는 대통령 스스로 시인했듯이 정치적 결정이다. 전당대회용(用)인지 장기 집권용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비판은 효율을 따지는 경제적 비판, 입지(立地)의 적합성(適合性)을 묻는 공학적(工學的) 비판이다. 한쪽은 축구 시합, 다른 한쪽은 야구 경기를 하는 이 논쟁이 건설적 결론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있다.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客觀化)해 보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호남은 원전 건설 반대, 댐 건설 반대를 먼저 접어야 한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를 지으면서 수준 높은 학교를 같이 지었다. 자녀를 보낼 훌륭한 교육 시설이 없으면 모든 부인이 반대하고, 부인이 반대하면 어느 남편도 그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이다. 낡은 이념에 붙들려 가장 완고한 평준화 교육을 고집하는 전남광주 교육감은 이런 부인들의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한국의 정책 수명(壽命)은 길어야 5년이다. 같은 당이 정권을 재창출해도 이 수명을 넘기고 살아 남은 정책은 없다시피 하다. 호남 반도체가 그 예외(例外)가 되리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부터 근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배재고 야구부원들의 사과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도 작은 시작은 될 수 있다.
배재고 스타벅스 응원 논란에서 놓친 것
고교 야구장에서 터져 나온 비하
징계 무게 놓고 공방과 논박 난무
책임이 있는 어른들은 어디에…
"승패보다 태도가 중요" 기억해야

“스타벅스 가야지~.”
고교 야구장에서 나온 한마디가 한국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스타벅스 ‘탱크 데이’ 마케팅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직후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짚자. 문제의 배재고 응원 구호는 순간적인 말실수로 치부하긴 어렵다. 경기 중 여러 차례 반복됐다. 광주일고 지도자들도 처음엔 ‘뭐라는 거야’ 하고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수들이 듣고 “너무 심하다”면서 호소하자 귀를 기울였고,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 “그만하라”고 호통쳤다. 당시 광주일고는 크게 지고 있었다. 패색이 짙은 상대를 향해 역사 인식의 결핍과 지역 혐오를 드러내는 야유를 집단으로 외친 건 야비하고 천박했다. 책임은 물어야 한다.
문제는 제재 수위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배재고에 내린 처분은 전국 대회 6개월 출전 정지다. 그러나 올해 남은 전국 규모 대회는 대통령배, 봉황대기, 전국체전 세 개뿐이다. 배재고는 이 가운데 두 대회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이번 징계로 실제 참가하지 못하게 된 무대는 8월 봉황대기 하나다. 형식상 6개월 정지지만 현실적 효력은 2~3개월에 가깝다. 더구나 이 결정은 아직 ‘1심’ 성격이다. 대한체육회 재심이 남아 있고, 불복할 경우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협회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감경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이 조치가 선수들에게 곧바로 ‘사형 선고’가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학 진학을 앞둔 3학년들은 앞서 열린 주말리그 등을 통해 입학 자격에 필요한 최소 출전 시간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처분 자체가 곧장 대입 장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관건은 생활교육위원회 회부 이후 이 사안이 학생부에 어떻게 반영되느냐, 대학과 사회가 이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다. 학교폭력은 아니지만 파장이 워낙 컸던 만큼 입시 현장에서 완전히 무시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다소 막연한 우려는 있다.
선수들의 꿈인 프로 진출 문제는 좀 복잡하고 씁쓸하다. 일부 구단 사이에서는 배재고 선수를 지명하기 부담스럽다는 말까지 나온다. 괜히 해당 학교 출신을 뽑았다가 구단 모기업이 정치적 압박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라고 한다. 인성이나 실력이 아니라 여론의 눈치 때문에 아이들 앞길이 막힐 수 있다니 적잖이 심란한 일이다.
학생들의 행동은 분명 잘못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과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철들기 전 아이들은 자라면서 별별 일을 겪고, 또 저지르기도 한다. 승부가 걸린 운동장에서는 감정이 격해져 도를 넘는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부딪치고, 상처를 주고받고, 앙금도 남는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사과하고, 악수하고, 다시 마주 선다. 스포츠가 교육일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승패 이후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광주일고 선수들도 마음은 많이 상했지만, 경기 중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사과를 받은 뒤 정리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연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지금은 당사자보다 외부자 목소리가 더 격렬해진 형국이다. 아이들 사이 마찰을 어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분열과 반목의 소재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징계가 과하냐, 약하냐만 따지다 보면 본질은 뒤로 밀린다.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일고 친구들에게 가서 직접 사과하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그 자리에서 함께 응원 문화와 스포츠 정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덕아웃에서 그런 말이 나오도록 방치한 지도자, 감수성 교육을 충분히 하지 못한 학교와 학부모, 현장에서 제때 대응하지 못한 협회 운영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이들만 응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포츠의 가치를 승패 바깥에서 찾았다. 이기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이기느냐다. 승리는 기록으로 남지만 태도는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는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이긴 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충분히 일러주지 못했던 건 아닐까.
배재고의 교훈(校訓)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다. 이번 소동을 푸는 실마리도 그 말 안에 있다. 벌을 주더라도 꿈까지 짓밟아서는 안 된다.
정부, 호남에 원전 신설 첫 거론… 김성환 "영광에 2기 지을 땅 있어"
반도체 공장 위해 건설 속도전
"부지 확보 땐 7년이면 완공 가능"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3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반도체는 24시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양만으로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며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 여부를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특히 “새로운 부지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남 영광 한빛원전에 2기, 울산 울주 새울원전에 2기 등 총 4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며 “의사결정을 마냥 미룰 수 없다”고 했다. 부지 선정부터 시작하면 원전 완공까지 13~15년이 걸리지만, 부지가 확보된 상태에서는 7년이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 정부 고위 인사가 ‘호남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공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포함한 ‘메가 프로젝트’ 발표 이후 청와대와 정부에서 원전 확대 메시지가 동시다발로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SMR 국가전략기술 선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배경에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있다는 분석이다.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 없이는 대규모 반도체 팹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데, 지금 착공해도 현 정부 임기 내 가동이 어렵다. 결국 ‘호남 반도체 속도전’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 추가 원전 여부인 셈이다. 다만 호남 지역사회가 신규 원전을 수용할지는 미지수여서 청와대와 정부가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전 없인 호남 반도체 어렵다“… 속도내는 脫탈원전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핵심 가치로 내걸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 메가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빠르게 방향을 틀고 있다. 올해 초 탈(脫)탈원전으로 선회한 데 이어 호남 입지의 추가 원전 건설론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재생에너지 이외의 발전원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리던 정권 핵심 인사들이 앞다퉈 원전의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망을 연결하고, 용수를 확보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일은 결국 모두 합의의 문제”라며 “지금은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원전이나 SMR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수인 반도체 팹·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서는 원전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도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원전 관련 내용이 12차 전기본(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며 “원전을 건설하는 데 보통 9~10년이 걸리는데 이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전기본은 15년 단위의 최상위 국가 전력 수급 법정계획이다.

◇원전 확대론에 대통령·청와대도 가세
정부 기류 변화의 바탕에는 반도체·AI 산업의 전력 특성이 있다. 반도체 팹은 미세공정이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순간 정전이나 전압 변동만으로도 치명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와 냉각설비가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대표적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메가 프로젝트 규모가 커질수록 전력망 보강과 함께 원전·LNG(액화천연가스) 발전 같은 안정적인 기저 전원 확보가 핵심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발표한 기업의 요구도 같은 방향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 및 PPA(재생에너지 직접 구매 계약)를 적극 추진해주시고, LNG와 열병합 발전도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고 ESS(에너지저장장치)도 만능열쇠가 아니다”라며 “2040년 석탄발전 퇴출 로드맵 등을 고려하면 원전뿐 아니라 LNG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성민 카이스트 교수는 “메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삼성전자의 ‘원전 확대’ 요구가 정부로 하여금 실제 산업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키웠을 것이고, 그것이 이번 기조 변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12차 전기본에 대대적 반영 시사
이 같은 흐름은 향후 15년(2026 ~2040년)의 국가 전력 수요와 발전 설비 구성을 정하는 12차 전기본에 반영될 전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 내용을 12차 전기본 수요 전망에 다시 반영 중”이라고 말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메가 프로젝트를 국가 전략으로 내건 이상 전력 수요를 보수적으로 잡기는 어려워졌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전력 수요가 생겼기 때문에 12차 전기본에서 원전과 LNG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12차 전기본 수립 총괄 위원회 산하 설비계획소위원회는 수요 전망이 끝나는대로 어떤 발전 설비를 얼마나 추가할지 구체적 논의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설비소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는 환경·시민단체 소속 위원들이 원전 추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분위기를 지배했는데, 이번 메가 프로젝트 발표를 계기로 설비 구성 논의 방향이 확 바뀔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전후해 12차 전기본 초안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정기국회는 매년 9월 첫 평일부터 100일 동안 열린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3일 라디오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GDP(국내총생산)가 늘어나면 전기 수요도 따라서 늘어나는 거 아니야?’ 이런 정도였는데, 지금 반도체 공장 추가 건설과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건 일종의 현찰”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현찰에 맞게 전력 공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전력을 얼마만큼 늘려야 할지 12차 전기본을 정기국회 전후로는 확정해야 한다.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쪽방촌은 올여름 두렵다… 믿을 건 선풍기와 냉감이불뿐
올해 극한 폭염·폭우 온다는데…

낮 기온이 30도를 넘었던 지난 1일 정오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쪽방촌. 폐기물 재활용 업체 작업장 뒤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을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4명으로 구성된 서울시립 공공병원 ‘서남병원’ 방문 진료팀이 찾았다. 올 초 심한 당뇨병·고혈압 등으로 서남병원에 입원해 3개월간 치료받고 4월에 퇴원한 노모(87)씨를 진료하기 위해서다. 생계급여 수급자인 노씨의 쪽방 입구엔 천 한 장만 둘러 만든 가림막 아래 양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3평(9.9㎡) 남짓한 방으로 들어서자 후텁지근한 열기가 선풍기 바람과 함께 밀려왔다. 곰팡이 핀 벽지의 눅눅한 습기, 반찬 냄새가 뒤섞인 퀴퀴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거동이 어려워 침대에 걸터앉은 노씨의 머리 위로는 굵은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할머니 잘 계셨어요?” 곽은영 서남병원 공공의료본부 팀장이 큰 소리로 인사하자, 노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씨는 당뇨로 발가락 두 개를 잘라냈고, 청각 장애를 앓고 있어 보청기를 껴도 의사소통이 어렵다. 진료팀은 그런 노씨에게 진료 중간중간 음성 인식 패드를 보여주며 소통했다. “혈압은 135에 74, 혈당은 277인데 방금 식사하셨으니 괜찮아요.” 노씨가 “무릎이 아파 일어나질 못해”라고 하자, 문성진 서남병원 노인진료센터장이 노씨의 바지를 걷어 무릎을 살폈다. 의료팀의 이마에도 금세 땀이 맺혔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 온 폭염 대비용 모자와 냉감(冷感) 스카프, 건강 음료를 건넸다. 침대 위에는 새 여름용 이불을, 방과 화장실 사이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았다. 노씨가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라고 했다. 덥지 않으냐고 묻자 낡은 선풍기를 가리키며 “그래도 저게 있잖아”라고 했다.
서남병원은 2022년부터 매년 7월 폭염과 집중호우에 대비해 서울 서남권(양천·강서·구로·금천·영등포구) 지역 반지하·쪽방촌 독거 노인 등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를 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 수준을 뛰어넘는 폭염이 예고된 만큼 일정을 보름 이상 앞당긴 지난달 15일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진료 대상도 예년(약 20명)의 두 배인 43명으로 늘렸다. 실제로 올해 서울의 첫 폭염 주의보는 지난해보다 12일 빨라진 6월 18일 발령됐다. 또 그동안 2단계(주의보·경보)였던 폭염 특보 역시 18년 만에 개편돼 최상위 단계인 ‘폭염 중대 경보’가 올해 신설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폭염·폭우라는 ‘기후 재난’을 가장 먼저, 온몸으로 겪는 사람은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꼽히는 노씨 같은 쪽방촌 독거 노인들이다. 현재 폭염 특보 발령 시 생활 지원사 등이 안부를 확인하는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이용자는 약 57만6000명. 독거 노인 가구 등 정부가 추려낸 이른바 ‘혹서기 위기 가구’ 대상은 약 4만명에 이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 질환자는 446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30.1%(1341명)를 차지했다. 특히 사망자는 65세 이상 비율이 매년 60% 안팎에 달한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탈수 등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더위만큼 힘든 것은 장마와 위생 관리다. 노씨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방에 물이 들어차 쓰레받기와 양동이로 퍼낸다”며 “집 앞 쓰레기장 때문에 모기도 많고, 작년 장마철엔 방 구석에서 쥐가 나와 끈끈이로 잡기도 했다”고 했다.
곽은영 팀장은 “쪽방촌·반지하 거주 어르신들에게 폭염·폭우는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라며 “그런 만큼 직접 찾아가 ‘위험 신호까지 살피는 의료’가 필요하고, 종일 대화할 상대도 없는 어르신들이 우리를 보면 많이 반가워하시며 심리적 안정감도 얻는다”고 했다. 서남병원 방문 진료팀은 이날 뇌경색 후유증을 앓는 기초생활수급자 김모(63)씨의 서울 강서구 반지하 집도 찾았다. 이들은 오는 31일까지 취약 계층 대상 방문 진료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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