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호 피격' 23일 만에야... 정부 "이란 미사일 가능성 높다"
조사결과 발표... "여러 증거가 이란 가리켜"

한국 해운사 HMM의 다목적 운반선 ‘나무(NAMU)호’를 공격한 수단은 이란산 대함미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정부가 27일 밝혔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기술분석 결과, 이란에서 개발된 ‘누르’ 계열 대함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엔진의 경우 이란산 터보제트 엔진과 유사하였고 부품에서 이란의 제조사 각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탄두의 경우 형태가 다소 온전한 상태인 불발탄으로 추정되었으며, 이란 대함미사일 누르 탄두 형상과 유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현장 조사에 이어 엔진, 탄두, 화약, 기체 등의 비행체 잔해물을 분석한 결과 “나무호는 총 2번의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았으며 첫 번째 탄두는 불폭, 두 번째 탄두는 기폭됐다”고 박 차관은 밝혔다.
불발로 추정되는 탄두와 고폭 화약 물질을 분석한 결과, 이란 대함미사일 누르 계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 차관은 ‘나무호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보는 건가’라는 질문에 “일단 여러 가지 증거가 이란 쪽을 향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해 선박 피격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공격 주체에 대해선 “이란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주체를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란 정규군이나 혁명수비대, 이란의 후견을 받는 후티 반군과 민병대 등을 특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0일 1차 조사 결과 나무호가 미상 비행체 2기에 의해 선미를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타격당했다며 ‘외부 공격’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비행체 잔해를 15일 국내로 들여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서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해 왔다.



"선거개입" "발목잡기" 李대통령 부산 방문에 정치권 '시끌'
무소속 한동훈도 "李대통령, 북갑에서 한번 붙어보자"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을 찾아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을 거론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6·3 지방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후방 지원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반박도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부산 영도구 국립한국해양대에서 개최된 ‘제31회 바다의날’ 기념식에서 “해양강국의 비전을 동남권에서 실현하겠다”며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은 해양강국 비전을 일자리와 지역의 활력으로 직결시키는 균형성장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헌신처럼 우리 선원들과 해양수산 종사자들의 묵묵한 발자취 역시 대한민국 산업화 역사에 당당히 새겨져야 할 위대한 업적”이라며 “국민주권정부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꿈꾸셨던 해양강국 대한민국으로의 힘찬 도약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부산에서 박정희·김영삼 대통령의 성취를 언급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엔 부산 자갈치시장, 이날에는 부산 남항시장을 연이틀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자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무소속 한동훈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이 이곳 부산에서 김영삼 정신과 박정희 정신을 얘기하면서 부산 선거개입 시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개입은 얼마든지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라”며 “바로 여기 부산 북갑에서 진짜 보수 한동훈과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 부산 북갑에는 이재명 청와대 AI수석 출신인 민주당 하정우 후보가 출마했다.
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거론한 데 대해서도 한 후보는 “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심도, 김영삼 대통령의 배짱과 기개도 없다”며 “일말의 애국심, 배짱, 기개도 없기 때문에 자기 죄 없애는 공소 취소 같은 시스템 파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가 여기 부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심과 김영삼 대통령의 기개와 배짱으로 이재명 정권 공소취소 폭주를 박살 내겠다”며 “이재명 대통령, 6월 3일 선거에서 봅시다”라고도 했다.
여야도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선거가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서울 서소문 고가 붕괴로 3명의 시민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자갈치시장에서 희희낙락 회 파티를 하는 게 정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이냐”며 “여야 후보들마저 유세 일정을 멈추고 있을 때 국가 안전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선거에만 몰두했어야 했나”라고 썼다.
박성훈 중앙선대위 공보단장도 논평에서 “선거 중립 의무를 내팽개친 이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 극에 달하고 있다”며 “부산 여론이 뒤집히니 대놓고 관권선거인가”라고 했다. 이에 민주당 김현정 선대위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서”대통령이 일 잘하면 자신들의 선거에 불리하니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떼쓰기와 습관적 발목잡기”라며 “국민의힘에 묻는다. 선거 기간에는 대통령의 시간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박근혜, 대구·충청 이어... 경남 찾아 국힘 지원 유세
朴 "경제전문가 박완수에게 맡겨 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충청에 이어 27일 경남을 찾아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박완수 경남지사 후보와 한경호 진주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시민 여러분께서 믿고 맡겨주시면 반드시 경제를 살릴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진주 중앙시장을 찾아 “요즘 경제가 어려워 저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에는 박완수·한경호 후보뿐만 아니라 경남 진주를 지역구로 둔 박대출·강민국 의원 등이 동행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중앙시장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상인들과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이날 중앙시장에는 박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수백 명의 지지자가 몰렸다.
박 전 대통령은 “제가 작년 중앙시장에 왔을 때도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는데, 오늘도 많은 분이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여기 함께 자리한 박완수 후보와 한경호 후보는 모두 경제 전문가들로 어려운 지역경제를 잘 살려내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박완수 후보도 집중 유세 연설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폭주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오만을 심판하는 선거로, 만약 민주당이 승리하면 마지막 남은 지방 권력까지 넘어가게 된다”면서 “진주시민 여러분께서 높은 투표율로 일당 독재를 막아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불기 시작한 (보수 결집) 동남풍이 서부 경남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며 “경남도정은 검증된 도지사, 일해 본 도지사, 살림살이를 책임질 수 있는 도지사가 맡아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대선 투표일 하루 전날 진주 중앙시장을 방문했었다. 이날 진주 일정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울산, 부산 지역을 잇따라 찾으면서 지원 유세에 나설 예정이다.

보수·중도층 56% "나를 대표하는 정당 없다"

국민의 51%가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본지가 304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17%만이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있다”고 답했고, 국민 2명 중 1명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것이다. 이렇게 응답한 유권자들은 진보보다 보수나 중도층이 많았다. 보수의 56%, 중도의 57%가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변해, 같은 답을 한 진보 유권자 39%와 큰 차이를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52%, 개혁신당 지지자의 62%는 해당 정당이 자신을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라고 답했다. 보수나 중도 유권자들은 대안이 없어 현재 활동 중인 정당을 지지하고 있지만, 그 정당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수층의 54%가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당들이 유권자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들은 정책 대안이나 노선 경쟁보다는 대중의 혐오나 분노를 지지 세력 결집에 활용하고 있다.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나 과거 노 재팬 운동이 그랬고, 반대편에서는 참사 유족들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그랬다. 국민 의식은 다양해졌는데, 정당들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초적 내용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반대층을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보수와 중도층에 지지 정당이 없다는 답변이 많은 데에는 1년여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과 탄핵, 그리고 이를 둘러싼 보수층의 분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민주당은 각종 위헌적 법률을 일방 처리하고 이제는 대통령 관련 사건을 공소 취소할 권한을 갖는 ‘조작 기소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절반 이상이지만 국힘이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힘은 아직도 ‘윤어게인’ 논란으로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무조건적 지지나 반대가 아니라 사안별 정책과 정당의 태도를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유권자들도 늘고 있다. 변화와 쇄신 대신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당들은 점점 밀려날 것이고 그래야 한다.
괴담 수준 스타벅스 공격까지, 도 넘지 말아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26일 5·18 폄훼 논란을 일으킨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에 대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여러분들의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신세계그룹은 자체 진상 조사 결과 이번 이벤트가 5·18을 겨냥해 고의적으로 기획된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무자들은 날짜가 5·18과 겹친다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행사를 진행했고, 4단계 결재를 거치는 동안 상급자들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 기업이 날짜의 의미를 주의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이벤트를 한 것은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난의 도를 넘어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문제가 된 ‘탱크 텀블러’의 명칭과 용량(503mL)이 계엄군 탱크와 박근혜 전 대통령 수인번호였던 503번을 암시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대만 업체가 제조한 이 텀블러는 2023년부터 한국뿐 아니라 호주·태국·일본 등에서도 탱크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탱크는 물탱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503mL도 스타벅스 본사인 미국에서 사용하는 용량 단위 17온스를 환산한 값일 뿐이다.
스타벅스코리아가 판매하는 ‘탱크 듀오 세트’의 할인율(21%)이 5·18 당시 계엄군 집단 총기 발포일인 5월 21일을 상징한다는 의혹,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2024년 4월 16일에 배를 난파시킨다는 신화가 있는 ‘사이렌’ 이름이 붙은 머그잔 시리즈가 출시됐다는 의혹 등도 모두 황당한 음모론일 뿐이다. 사이렌은 1971년 스타벅스 창립 당시부터 로고로 사용된 상징물이고, 국내에서만 그 이름이 붙은 상품 500여 개가 판매 중이다.
이 일은 기업의 잘못이 있지만 일선 매장의 스타벅스 직원들까지 폭언을 들어야 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통령 장관 여당이 전부 나서 일제 공격을 퍼부을 일도 아니었다.
병자호란 치욕도 '내란 누명' 軍 숙청이 불렀다
'이괄의 난' 소문만으로 제거
무고한 장수도 대거 희생돼
北 도발로 알았다가 강제 전역
누명 벗으려 억대 소송비 고통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아직 만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는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조선은 1000만명을 넘었다. 압록강을 건넌 청군은 5만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에는 10만명이 넘는 군대가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6일 만에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혔다. 임진왜란 때와 달리 변변한 전투도 없이 ‘삼전도 굴욕’을 당했다.
당시 조선은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한 안보 전문가는 ‘이괄의 난’ 여파를 꼽았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반정의 공신인 도원수 이괄이 북방 주력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서울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진압됐다. 인조와 집권 세력은 이괄과 조금이라도 왕래가 있던 장수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그 과정에서 반란과 무관한 장수들도 대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반란을 진압한 장군들까지 다시 일을 벌일까 두려워 한직으로 내몰았다. 반란의 싹을 자른다며 훈련만 하면 정보원을 보내 감시했다.
정묘호란 때 남이흥 장군이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훗날 청나라) 군대와 맞섰다. 이괄의 난을 막은 1등 공신이지만 중과부적으로 패했다. 그러자 ‘내가 지휘관이 돼 진 치는 훈련 한 번 못하고 죽는 것이 애통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폭했다고 한다. 9년 뒤 병자호란이 터졌다.
이재명 정부가 ‘계엄 가담’ 혐의로 수사 의뢰한 공무원이 110명인데 108명이 군인이다. 지금까지 징계받은 군인 45명 중 22명이 파면됐다. 파면이면 군인 연금도 반 토막이 난다. 지금 이들 대부분은 변호사 비용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행정 소송 등에 파면은 2억원, 중징계는 4000만~5000만원, 경징계는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평생 박봉에 1~2년마다 이삿짐을 싸야 하는 군인에게 이런 돈은 큰 부담이다. 전셋집을 빼서 변호사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송에 나선 군인은 “평생 명예를 먹고살았는데 ‘내란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불법 계엄에 적극 가담한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 이번 계엄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극소수가 주도한 것이고 불법을 알고도 뛰어든 장성들은 전부 재판을 받고 있다. 징계받은 군인 상당수는 무슨 명령인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몰랐다. ‘계엄 버스’가 그랬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했는데도 군 간부 34명을 태운 버스가 계룡대를 떠난 것은 ‘2차 계엄 모의’라고 여당 등은 주장한다. 버스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전역 대상이 됐다.
당시 A 간부는 저녁 음주로 술 냄새가 많이 나자 ‘그냥 집에 가라’는 상관 지시 덕에 전역 대상에서 빠졌다. 반면 B 간부는 술 먹고 자는데 부인이 ‘긴급 복귀’ 전화를 대신 받았다. 남편을 태우고 부대로 달려갔다. 부인은 “국가 긴급 상황인 줄 알고 남편을 깨운 것이 평생의 한이 될 줄은 몰랐다”며 오열했다. C 간부는 당직을 바꿔줬다가 버스 탑승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들이 ‘내란범’인가.
계엄 당시 합참 지휘부는 다른 부대 이동을 통제해 인명 피해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기존 수사에서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고, 현 정부 들어 해군 총장으로 승진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차 특검은 당시 지휘부 수사에 나섰고 국방부는 해군 총장을 돌연 교체하는 등 기존 합참 출신들을 대폭 물갈이했다. 합참은 연합 작전을 짜고 부대를 지휘하는 중추 기관이다. 구성원의 능력과 경험이 어떤 군 조직보다 중요하다.
지금 국제 정세는 명·청 교체기만큼 혼란하다. 유능한 군인이 정치적 이유로 줄줄이 화를 입는다면 국가적 손실이다. 훈련을 제대로 안 한 군대가 나라를 지켰다는 역사 기록은 본 적이 없다.
[김정호의 AI시대 전략] 100개의 AI 에이전트와 일하는 '1인 기업 시대' 온다
인공지능 시대는 전통적 노사관계에도 적잖은 변화를 예고해
분업의 종말인가? 인간과 AI 또는 AI 끼리의 분업이 시작된다

산업혁명의 역사는 생산 분업(分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류가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역할을 분담해 온 데서 출발해, 산업혁명과 현대 자본주의를 거치며 분업은 더 세밀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핀 공장을 예로 들며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대신 여러 사람이 공정을 나누어 맡을 때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19세기 공장과 기계화의 확산은 분업을 공장 내부에서의 세밀한 작업 분할로 심화시켰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자동차 산업에 도입한 컨베이어 시스템은 분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작업물이 이동했다. 작업자들은 각자 하나의 반복 작업만 수행함으로써 생산 속도는 극대화되었다. 이를 통해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의 토대를 만들었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는 분업이 기업과 산업,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어 ‘글로벌 분업 구조’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분업, 그리고 인공지능 사이의 분업이 등장한다. 인간과 인간이 분업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대신 일을 처리하는 인공지능이 ‘자율형 AI 에이전트’다. 스스로 권한을 가지고 인간 대신 일을 수행하고 평가하며 완료한다. 시킨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능동형 인공지능이다. 자율형 AI 에이전트로 최근 ‘오픈클로(OpenClaw)’가 그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오픈클로는 PC나 Mac 환경에서 돌아가는 오픈소스 자율형 AI 에이전트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6개월 전인 2025년 11월 공개했다. 누구나 자신의 PC에 설치해 작업 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다. 수백 대의 PC에 설치하면 수백 개의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24시간 인간을 대신해 일할 수 있다. 미래에는 이들끼리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 보통 텔레그램으로 인공지능에게 지시하는데, 핸드폰에서 지시하는 셈이다. 그러면 PC나 Mac에 설치된 소형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클라우드에 설치된 초대형 생성형 인공지능이 원격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

오픈클로는 개인 컴퓨터 내의 파일 시스템, 터미널, 브라우저, 이메일 등의 도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 인간 대신 스스로 파일을 정리하고, 지우고, 메일을 보내고, 문서를 작성하고, 일정을 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파일 읽기와 쓰기, 그리고 웹 탐색 등을 조합해 자발적으로 작업한다. 캘린더와 연동해 회의 일정을 잡고, 매일 아침 일정과 날씨, 뉴스 브리핑을 메신저로 보낼 수도 있다.
오픈클로는 민감한 기업 정보나 개인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지만 위험도 공존한다. 인공지능이 개인 데이터나 정보, 비밀번호 등을 누출하거나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잘못된 설정, 프롬프트 주입, 모델 편향 등으로 파일 삭제, 계정 오남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메신저를 통한 원격 제어의 경우, 인공지능에 인증과 권한의 제한이 필요하다. AI 에이전트에게도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인간과 신뢰 관계도 필요하다.
이제 자율형 AI 에이전트 같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얼마나 받고 잘 활용하는지 여부가 업무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있다. 한 사람이 100개의 자율형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고용할 수도 있다. 100개의 AI 에이전트가 24시간 인간을 위해 일을 수행하면, 인공지능 사용량을 가리키는 ‘토큰(Token)’의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수요와 전기비용이 증가한다. AI 에이전트가 일을 많이 할수록 지불해야 할 비용이 커지는 셈이다. 이를 ‘토큰 경제학(Token Economics)’이라 부른다. 최근 기업에서는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할수록 인사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토큰 맥싱(Token Maxxing)’이라 한다. 인공지능을 최대로 잘 사용하는 것이 업무 능력이자 사업 능력이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자율형 AI 시대에는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도 바뀐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작업은 AI 에이전트로 대체된다. 수백 개의 자율형 AI 에이전트를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종합적 비전을 세우고, 작업을 기획하고, 지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역할이다. 미래에는 자율형 AI 에이전트 100개를 고용한 1인 기업이 탄생할 전망이다. 기업 내부에 직원 1명이 자율형 AI 에이전트 100개와 일하는 조직도 생긴다. 지금까지 산업화를 이끌어온 인간 사이의 분업은 종말을 맞고, 인공지능과의 분업이 늘어날 것이다.
기업에는 경영자와 근로자 사이에 합의된 규칙이 있고, 그 합의의 바탕에는 노사 간의 신뢰가 있다. 서로 인간적인 권리를 존중하면서 충분한 생활을 보장하고 합리적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업의 수익 분배에 주주, 경영자, 개발자, 연구원,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공지능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면 인공지능도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기업의 운영 방식과 노사 문화도 변화를 맞을 것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재설계가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 인류사적으로 가장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보고 있다. 그 중심에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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