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베트남서도 장특공 비판 "비거주 稅감면은 투기 권장"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자신의 X(옛 트위터)를 통해 1주택자 양도소득세 감면 제도와 관련해 “살지도 않으면서 투자용으로 사 오래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더구나 고가 주택에 양도세를 깎아주는 것은 주거 보호 정책이 아니라 ‘주택 투기 권장 정책’”이라고 밝혔다. 실거주가 뒷받침되지 않은 장기 보유 공제 혜택을 ‘주택 투기 권장 정책’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열심히 일해 번 돈에도 근로소득세를 내듯, 주택 양도 소득에 양도세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또 이 대통령은 현행 제도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똘똘한 한 채 사기” 투기를 확산시키고 집값을 연쇄 폭등시켰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세금 폭탄’ 주장에 대해서는 “살지도 않을 집에 오래 투기했다고 세금 깎아주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 어떻게 세금 폭탄이냐”고 했다.
이어 최근 정치권의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제한 법안 논란과 관련해, 정부와 무관한 법안을 대통령이 낸 것처럼 조작해 공격하는 “부동산 투기 조장 세력”의 활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소득세법에 있는 장기보유특별공제 제도는 양도세를 부동산 ‘보유’ 기간에 따라 40%까지, 여기에 추가로 ‘거주’ 기간에 따라 40%까지 총 80%를 깎아주는 제도다. 장기 보유에 따른 감면과 장기 거주에 따른 감면이 하나로 묶여 있다. 이 제도를 없애는 법안은 진보당 등 범여권 의원들이 발의했다.
이 대통령은 “1주택자의 주거를 제대로 보호하려면, 비거주 보유 기간에 대한 감면을 축소하고 그만큼 거주 보유 기간에 대한 감면을 늘리는 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보유 기간 혜택은 줄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이미 지난 18일에도 “성실한 1년간 노동의 대가인 근로소득이 10억원 넘으면 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데 부동산 투기 불로소득은 수십, 수백억이라도 오래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거주와 무관하게) 세금을 대폭 깎아준다는 건 정의와 상식에 어긋난다”며 장특공제에 대한 손질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크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소득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1만9348건 중 반대 의견이 1만6604건으로 85.8%에 달했다. 반대 의견에는 “주택 실수요자의 안정적인 주택 확보란 취지와 다르게 똘똘한 1채의 주택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한미관계 위기 인정한 靑 "美·정동영 인식 차이로 사달"
정동영 장관 '美 제공 기밀누설' 논란으로 한미 갈등
위성락 "美·정동영 간 인식 차이...사달 나"
"사안 발생 직후부터 미국과 소통, 출구 찾는 중"
쿠팡 문제가 한미 안보 협의에 영향 줘 "바람직하지 않아"
동맹 관리를 정원 관리에 비유 "잘 조율해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소재지로 ‘평북 구성’을 언급한 이후 촉발된 한미 관계 갈등에 대해,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관계가) 정상적인 협력 상태로 조속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방향에서 미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갈등으로 인해 한미 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위 실장은 지난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빈 방문 중인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이 사안이 생긴 직후부터 한미 간에 많은 소통이 있고, 서로 일종의 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위 실장은 “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상황을 명확히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리해서 단기간에 수습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지난달 6일 국회 외교통일위에 출석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무기급 우라늄 농축 시설 소재지로 평북 영변, 남포특별시 강선과 함께 ‘평북 구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후 미국이 정 장관 발언을 ‘기밀 누설’로 판단하고 한국에 제공하던 북한 관련 위성·감청 정보를 일부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기밀 정보가 아니라 이미 공개된 정보에 근거해 발언했다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며 정 장관을 감쌌다.
위 실장은 “정 장관은 (미국이 아닌) 오픈 소스에서 취득한 것을 얘기했을 뿐이라는 것이고, 미국은 자기들이 준 정보가 흘러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인식 차이가 있다”라고 했다. 위 실장은 “정 장관의 설명은, 이것이 미국이 우리에게 공유한 정보에 기초한 게 아니라는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정 장관의 머릿속에나 기억 속에는 미국으로부터 온 정보하고 무관하다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고 계시다”라고 했다. 정 장관이 해명은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기밀 누설’ 쪽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방정보본부는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관련 제반 사항은 한미 간 ‘연합 비밀’로 분류돼 공개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 장관의 발언을 ‘한미 연합 비밀 누설’로 볼 여지가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위 실장은 이에 대해 “정 장관이 연합 비밀을 듣고 거기에 의해 (발언을) 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정 장관은 일관되게 본인은 그런 정보 브리핑은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라며 “그러니까 연합 비밀은 정동영 장관에게는 여전히 비밀이고 모르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이제 사달이 난 것인데, 그 경위를 따져보면 (서로 입장이 다른) 그런 측면이 있다”며 “그러니까 연합 비밀이라는 것과 정 장관이 말한 것하고는 조금 구분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미국은 최근 우리 측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처벌과 제재 등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보 등 한미 안보 합의 이행을 위한 고위급 외교 협의가 어렵다는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 실장은 이에 대해선 “쿠팡 문제가 한미 간의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위 실장은 “정부는 그동안 (쿠팡과 안보 협의가 연계되는) 그런 방향의 연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쿠팡의 법적인 문제는 법적 절차대로 진행하고, 안보 협상은 안보 협상대로 진전을 해야 된다는 입장으로 미국과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보 협의가 지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그것이 동맹 관계 전체에 저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연시키지 않아야 된다, 조속히 재개돼야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위 실장은 쿠팡 사태부터 정 장관의 발언 논란까지, 일련의 누적된 상황을 ‘한미 동맹 위기’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동맹은 아주 가까운 관계지만 또 잘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동맹 관계를 ‘정원’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정원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처럼, 한미 동맹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위 실장은 그러면서도 “한미 간 관계는 동맹 관계이고 아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다양한 현안이 대두되고, 지금의 몇 가지 현안도 그러한 대상 중의 하나”라며 “그런 과정 속에 있는 것이지 지금 무슨 누적된 이상 기류가 지금의 현상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했다.
위 실장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21일 미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정치적 편의주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한 발언에 대해선, 전작권 전환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됐다는 점을 환기하며 “전작권 전환 추진은 정치적 편의주의는 아니다”라고 했다. 위 실장은 그러면서도 “전작권 문제는 군사적 측면을 경시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의 문제”라고 했다.
한미간 쿠팡 불협화음 하나 해결 못하나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 대사에게 “애플, 구글, 쿠팡 같은 미국 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조직적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특히 쿠팡에 대해 “범정부적 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작년 11월 쿠팡의 우리 소비자 개인 정보 유출 사고도 “민감도 낮은 정보의 유출”이라며 쿠팡 공격을 위한 “구실”이라고 했다. 미국 집권 공화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쿠팡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도 쿠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우라늄 권한 확대 등을 위한 고위급 안보 협의가 어렵다는 뜻을 우리 측에 전했다고 한다. 작년 한미는 관세 협상에서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쿠팡도 미국 기업인 만큼 불이익을 받는다면 안보 협력도 어려울 것이란 압박이었다. 개별 기업 문제로 동맹의 안보 현안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쿠팡은 고객 3370만명의 정보 유출 혐의로 우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가 빠져나갔는데도 쿠팡은 5개월간 보안이 뚫린 줄도 몰랐다. 심각한 사건이다. 오너 김범석 의장도 미국 국적이지만 쿠팡 매출의 90% 이상은 한국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우리 국내법상 김 의장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김범석 의장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로비에 나섰다. 쿠팡은 트럼프 대통령의 30년 친구가 운영하는 로비 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과 가까운 회사와도 손을 잡았다. 트럼프 정부 1기 국가안보보좌관은 쿠팡 조사와 관련해 “트럼프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거의 전방위적인 로비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외교력은 쿠팡이라는 일개 회사의 로비력보다 못하다는 건가. 이 문제를 한미 동맹 문제에까지 어려움을 초래할 상황으로 만들어야 했나. 미 정가는 올 초부터 쿠팡을 두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 외교 당국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납득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문제가 터지면 차분하게 조사해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전방위로 달려들어 윽박지르는 우리 정치 풍토도 악영향을 미쳤다. 경찰 수사도 4개월 넘게 질질 끌고 있다. 그사이 쿠팡은 워싱턴에 로비할 시간을 벌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반도체 거액 성과급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가르기 안돼

삼성전자 노조가 어제 투쟁결의대회를 열고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과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이 수용되지 않으면 5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한다고 한다. 반도체 수퍼 사이클로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지난해의 거의 7배에 달하는 3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 45조원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연간 급여 총액(19조8000억원)의 2배가 넘는다. 이대로면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1억5800만원)의 4배가 넘는 7억원 가까운 성과급을 받게 된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그 성과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모든 일은 도를 넘어선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은 노동 투입량보다 기술력과 자본 투자가 성과를 좌우한다. 초미세 공정과 첨단 설비 경쟁이 핵심인 산업에서 노동의 기여도를 평가해 보상하는 방법에 대한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반도체 불황 속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 왔다. 지난 5년간 연구·개발(R&D)에 148조원, 시설 투자에 230조원을 투입했으며, 이는 향후 시장 반등을 대비한 선제적 투자였다. 이러한 투자 성과가 인공지능(AI) 확산과 맞물리며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대규모 투자와 해외 전문 기업 인수가 불가피하다.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는 것보다 더 중대한 사활적 문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마이크론, 엔비디아, TSMC 등 글로벌 공룡들,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 업체들과 사생결단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투자 지연이 추락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도출하고, 국가 전략 산업의 지속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켜나가야 한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광화문 현판은 그냥 두라
'쌍현판' 속도 내는 문체부
절충안 아닌 현판 원형 훼손
광화문이 국가 상징이라면
정권 따라 쉽게 바꿔선 안돼

서울 광화문 앞이 또 소란하다. 지난 1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 검토안’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부터다. 지금 있는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추가한다는 이른바 ‘쌍현판’ 아이디어. 장관은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 한글 현판을 부착하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다”고 했다.
발언 시점과 주체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쓴 새 현판이 걸린 게 불과 3년 전이다. 광화문 현판 복원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는 문체부가 아니라 국가유산청이다. 그런데도 문체부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글날에 설치를 완료하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말 찬반 토론회를 개최했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 중건된 광화문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일제에 의해 옮겨졌고, 6·25 때 불타며 현판도 전소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원래 위치에 재건하면서 친필 한글 현판을 달았으나, 노무현 정부 때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 속에 철거됐다. 2010년 ‘고종 때 중건 당시’를 기준으로 한자 현판이 복원됐지만, 석 달 만에 균열이 생겼다. 이때 한글 단체를 중심으로 “한글 현판을 달자”는 주장이 나왔다. 한자냐 한글이냐, 누구의 글씨를 쓸 것이냐, 숱한 논란이 이어졌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수차례 문화재위원회 심의 끝에 ‘1865년 임태영 글씨’라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아니라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오류도 바로잡았다. 지금의 현판이 걸리는 데 13년이나 걸린 이유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원칙이 있었다. ‘문화유산=원형 복원’이라는 큰 틀과 ‘고종 때 중건’이라는 복원 시점이 명확했다. 당시 주무 부처인 문화재청이 이미 대국민 토론회, 설문조사, 전문가 집단의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낸 사안이다. 13년간 이어진 혼란을 수습하고 새 현판 복원 기념식을 열며 환영한 게 3년 전이다.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그간 내세운 문화유산 복원의 근본 철학을 내던질 것인가.
최휘영 장관은 “한글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재 원형을 지키려는 정신에 더해 한글이라는 시대적 요구도 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얼핏 합리적인 ‘절충안’처럼 들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판 추가는 원형 훼손이라고 반박한다. 지난달 토론회에서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발음 기호 표기에 불과하며,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국가유산청의 애매한 태도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도 한글 현판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가유산청장이 문화유산 복원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그러나 이번 국무회의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쌍현판 설치에) 저희도 적극 지원할 생각”이라고 맞장구쳤다. 노무현 땐 박정희 ‘친필’을 문제 삼더니, 이제 와선 한자를 트집 잡아 바꾸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현판을 갈아치운다면, 문화유산의 역사성과 신뢰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글은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글자다. 하지만 그 우수성을 알리는 방법이 반드시 광화문 현판을 바꾸는 것이어야 할까. 광화문을 국가의 자존심이자 상징으로 여긴다면, 그 얼굴을 정권 따라 쉽게 바꾸면 더더욱 안 된다. 광화문 현판을 정치 논쟁에 끌어들이지 말자. 3년 전 합의를 뒤엎는 ‘쌍현판’ 논의는 정부가 쌓아온 국가유산 복원의 원칙과 철학을 무너뜨리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재판 봉쇄하는 권력자의 해악

2014년 여름, 기자는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50일간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가자지구에서 취재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만 2000명이 넘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공습을 지휘한 인물은 당시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였다.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인 그는 이후로도 안보 위협의 근본적 해결 대신, 주기적인 전쟁으로 긴장을 조장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잔디 깎기 전략’으로 정치적 활로를 뚫어왔다. 당시 가자지구 폭격의 반작용으로 세계가 ‘반(反)이스라엘’ 혐오 범죄로 들끓었는데, 이 비극적 패턴은 12년이 지난 지금 더 끔찍한 규모로 반복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부의 현실 인식은 국제 사회와 아득히 멀다. 네타냐후는 지난달 미 언론 인터뷰에서 유가 폭등에 고통받는 국제 사회의 휴전 요구에 “기름값이 일시적으로 오른다고 ‘안 돼, 하지 말자’고 하고 싶나”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 타격을 예고하며 “한 문명이 사라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아 세계가 경악할 때,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이란 인프라를 초토화할 전례 없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며 반색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은 전했다.
네타냐후가 전쟁을 고집하는 이유는 개인 비리 재판 영향이 크다. 그는 억만장자들에게 고급 시가와 샴페인 등 26만달러(약 3억8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이후 무리하게 사법부를 통제하려다 건국 이래 최대 반정부 시위에 직면했던 그는, 2023년 하마스와의 전쟁부터 최근 이란 전쟁까지 주도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자신의 재판을 유예시켜 왔다. 개인의 권력 연장과 형사 처벌 회피를 위해 국가 안보를 볼모로 삼은 것이다.
네타냐후의 야욕이 남긴 청구서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이후 이스라엘의 압도적 보복으로 희생된 가자지구 사망자는 7만명이 넘는다. 유럽 정치권에선 네타냐후를 히틀러에 빗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2014년에도 이스라엘 신문들은 날마다 혐오 범죄에 시달리는 세계 각지 유대인의 피해 사례를 1면에 싣고 이를 ‘반유대주의’라고 비판했는데, 네타냐후가 자국 안보를 이유로 중동 곳곳을 잿더미로 만들 때마다 유대인을 향한 테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은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과반이 이스라엘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고, 청년층은 유대인을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아닌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해자로 인식했다.
이란 전쟁의 총성이 멎으면 네타냐후의 사법 시계는 다시 돌아간다. 결국 그는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재판을 막으려는 집요한 욕망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자국민을 전 세계적 혐오 범죄의 표적으로 내몰았다. 사법 책임을 피하려는 한 권력자의 무리한 사투가 얼마나 파괴적인 해악을 초래하는지 이스라엘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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