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인생의 여정, 결국 남는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이다 외2.

太兄 2026. 4. 1. 20:26

인생의 여정, 결국 남는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이다

월요일 아침 또 다시 시작되는 한주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주는 조금 더 잘 살아보자.”
나는 오늘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길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하루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사람은 평생을 살지만, 결국은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가 여유로워야 하고, 그 하루의 끝, 저녁이 평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여서 1년이 되고 10년이 된다.
그 1년이 지치지 않고 따뜻하게 흘러가야 비로소 우리의 인생도 편안해진다.
인생은 결국 노년이 여유로워야 성공한 인생이 완성된다고.
젊은 날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불안하면 그 인생은 결코 완성된"진정한삶"이 아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성공한 사람도 있었고, 부를 이룬 사람도 있었고,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 마지막까지 평온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일까.? 그해답은 단순하다.
우리는'‘잘 사는 법’'보다 ‘'바르게 사는 법’'을 너무 늦게 깨닫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싶다.

사랑하고 이해하라.
모든 것을..그리고 건강하라.
항상 자기자신을 지켜라.
늘 친절하라.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대하라.
자신감있게 용감하라.
어떤 일 앞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말라. 효도하라.부모님께..
부단히 노력하라. 사는 그날까지.
진실하라.어떤 상황에서도..
늘 겸손하라. 모든 일 앞에서.
그리고 밝게 웃어라.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이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이것이 인생을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가장 단단한 힘이다.

사람들은 큰 성공을 얘기하지만, 나는 작은 태도가 인생을 바꾼다고 믿고 확신한다.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친절
누군가를 위해 참고 넘긴 순간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시간
그것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멋진 인생을 만든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삶을 밝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확신한다.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모든 것은 반드시 뒤돌아온다.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그래서 그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볼 가치가 충분하게 있는 것이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가다 보면 길이 보이고 열린다.
걷다 보면 끝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도 결국 모두다 지나간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자.
오늘 하루만 조금 더 버텨보자.
조금 더 웃어보자.
조금 더 따뜻해져 보자.
그 하루 하루가 모이면, 당신의 인생은 분명히 변화하고 달라진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조금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 마음을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스며들게 하겠다고,
기운찬 행복에너지와 긍정의 힘으로 선한 영향력을 끝까지 전달한다.

행복이 샘솟는 하루!
에너지가 넘치는 하루!
오늘도 萬事형통大吉 하소서 

 

가슴속 "배냇 저고리"
 
신부 서품을 받아 한 성당의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비단 보자기로 싼 작은 상자를 내밉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조용한 시간에 풀어 보라고 이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참을 잊고 지내온 신부는 사제관 한쪽에 놓아둔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상자 안엔 누렇게 바랜 아주 작은 배내옷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속에 어머니 편지가 곱게 접혀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가 있더라도 늘 기억하라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예전엔 나도 한없이 어리고 작았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낮은 신부님이 되세요.
어미도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라는 글입니다.
편지를 읽던 신부님의 가슴도 뜨거워졌겠지만, 배냇저고리라는 말에 내 가슴도 뭉클했습니다.
한없이 여리고 연약한 나를 감싸 주었던,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은 어머니가 지어준 옷.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어머니의 사랑의 언어가 숨어 있습니까?
겸손해라. 온유해라.
사랑하고 섬겨라. 그때를 기억하라.
모든 언어가 하나가 되어 가리키는 곳은 ‘낮은 곳’ 이었습니다.
배내옷에는 세상의 어떤 선물과도 견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제가 되어 광야로 떠나는 아들에게 사랑의 가늠자 하나를 선물한 것입니다.

김수환추기경은 어머니 기도대로 일생을 배내옷을 품고 산 분입니다.
47세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일생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면서, 늘 넉넉한 품으로 핍박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소리를 내던 분이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의 마음을 심어준 분입니다.
19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을 때 선택한 성구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였고, 세상에 남기고 간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김수환 추기경’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미리 쓴 유서가 있습니다.
1971년 2월 21일 밤이라고 밝힌 사무용지 한 장에 또박또박 써 나간 유서엔 회개와 용서를 구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사랑 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의 부족한 사랑을 용서해 주십시오.”
열정으로 가득한 마흔아홉 나이에, 유서부터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생을 통한 추기경의 고백이고, 다짐이었을 것입니다.

가슴에 품은 빛바랜 배내옷의 가르침 대로. 추기경은 잘못된 정치에도 묵직한 매시지를 날렸습니다.
정권의 수배를 받은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에게 말합니다.
“나를 넘고 지나가라.
그러면 뒤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또 넘어가면 뒤엔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준엄하게 불의를 꾸짖는 어른 이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이었어요.
TV를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 세상에!”
“추기경님이 어떻게!”
TV 속에서 대중 가요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놀라면서도 입은 웃었습니다.
추기경의 소박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남자라는 소탈한 모습에 마음 뭉클함을 느끼면서.
추기경은 종교의 편 가르기를 경계 했습니다.
구원이라는 명제 앞에 종교는 서로가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 했습니다.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화합의 아름다움을 보였습니다.
촛불, 반미시위 등을 둘러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이 공격을 받던 2004년 때입니다.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바꿔가는 보수 (補修)”라고 뼈 있는 유머로 답했지요. 
지방 선거를 앞두고는 깜짝 선언도 합니다.
“나도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이고, 지역구는 전국구입니다.”
바보 추기경의 유머는 늘 잔잔한 깨달음을 동반했습니다.
거칠고 서걱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낮은 자리를 찾아다닌 김수환 추기경.

‘내 탓입니다’를 선창해 사람들마다 자동차 뒷 유리에 스티커를 달게 한 그분의 따뜻한 리더십이 선연합니다.
아픔 있는 자에게는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위로하고,
젊은이에겐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라고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또 고단한 삶으로 방황하며 길을 묻는 자에게는
‘인간의 길이란 어떻게 하면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냐에 있습니다.”라며 다독였지요.

#오늘의 명언
김수환추기경님은 2009.2.16일 선종하셨습니다.
선종 17주년이 설명절 연휴이기에 미리 추념해 봅니다.
옮긴 글

 

https://www.youtube.com/live/hP9NVCqLLxU?si=8UTdQYpif2_ty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