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1.(화요일)
굿 모 닝!!!
**"늙은 말(馬)과 빈대"에게 배워야 할 지혜 **
유대인의 격언에
"몸 무게는 잴 수 있어도 지성(知性)의 무게는 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체중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은 곧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지식은 언제나 몸따라 함께 다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학교 교육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의 배움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요즈음은 평생교육 또는 생애교육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니, 그 선한 쪽을 골라 이를 따르고, 그 악한 쪽을 골라 이를 고쳐야 하느니라.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군이 싸움이 끝난 뒤 돌아갈 길을 잃고, 모두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명재상 관중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런 때는 나이 먹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되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해 환공군은 그의 말대로 늙은 말을 놓아주고 그 뒤를 따라가자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일화로 관중 같은 총명한 사람도 자신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늙은 말을 스승으로 여겨 배웠던 것이지요.
소설 <흙>을 읽으며 변호사를 꿈꿨던 청년 정주영이 16세 때 고향 통천을 떠나는 계기가 됐던 것은 당시
모 신문에서 연재한 이광수의 소설<흙>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당시 해당 신문을 구독하고 있던 마을 이장 집으로 밤마다 2㎞ 이상을 달렸다고 합니다.
소년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으며 도시 생활을 꿈꿨고 주인공 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출했는데 실제로 상경한 후 정주영은 `법제통신(法制通信)' 등 여러 법학 관련 서적을 독학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출 후 인천부두에서 막노동을 할 때 청년 정주영이 머물던 노동자 합숙소에는 `빈대'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50년대 말까지도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빈대가 많았습니다.(70년대 중반 고등학교 다닐때 자취방에 빈대가 있었음)
온종일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자려니 빈대의 극성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궁여지책으로 큰 밥상 위에 누었더니 잠시 뜸하다가 이내 상다리를 타고 올라와 물어 뜯더랍니다.
기어 올라오는 빈대를 잡기 위하여 양동이 4개를 구하여 물을 가득히 담아 밥상 다리를 그곳에 담가 놓고 잠을 자니, 2, 3일은 조용하다가 다시 빈대가 찾아와 물어뜯기 시작하여 이상해 불을 켜고 빈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양동이 물 장애를 극복하고 올라 왔을까?
살펴보니 놀랍게도 빈대들은 방벽(房壁)을 타고 천정까지 올라간 다음, 상을 겨냥 해 뚝 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에나 전심전력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빈대의 지혜를 기업경영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서나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려는 의지를 가질 때 나의 스승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미세먼지는 많지만 그래도 영춘화 산수유 개나리가 피는 설레는 봄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나는 한국에 와서 한국의 현실을 보고서야 김일성이 장담했던 그 사실을 이해하였다.
지금 내가 보건데는,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을 깔고 앉는데는 3일도 길다는 생각 이 든다.
이미 한국의 정치•경제• 군사• 법•언론•교육•공권력•종교•부동산까지 모두 북한과 중국이 장악한 상태다.
그 뿐이 아니다.
동부연합의 이석기부대 같은 지하무장 조직이 얼마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민노총만 해도 국군의 2배가 되는 108만 명이다.
또한 전교조는 5만 명이 넘는다.
북한을 찬양하는 더불어 민주당은 권리당원 포함 600만 명이 넘는다.
한국에 거주등록이 된 중국인 만 해도 북한 인민군의 2배가 넘는 245만 명이다.
불법체류자 숫자는 누구도 모른다.
이상의 모든 숫자는 미군만 철수하면, 자체로 대한민국을 전복하고도 남을 반민주화 역량이다.
내 말을 부정할 사람들은 45년 전 광주에서 2시간만에 국가무기고 42개가 털리고, 군 부대와 군수공장과 교도소 와 국가기관들이 습격당한 것을 보라.
지금의 한국은 미군이 지켜 주기 때문에 땅 덩어리와 국호만 존재할 뿐, 나라도 정권도 한국인들의 것이 아니다.
그 증거가 바로 중국인들과 친중 친북 분자들이 한국을 지켜낸 국가유공자들보다 더 큰 혜택을 받으며, 더 자유 롭게 살며 대한민국을 호령하 고 있는 것이다.
속은 다 썩어서 껍데기만 남은 나라에서 비행기, 탱크 몇 대 수출하고, 미사일 잘 만든다고 우쭐해서 미군 없이 도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완전 바보다.
어떤 사람은 북한은 경제가 한국의 일 개 군만도 못하기 때문에 전쟁 못한다고 아는 척을 한다.
북한은 경제가 낙후해서 전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미군만 나가면 북한이나 중국은 손을 안 대고도 코를 풀만큼 한국은 다 썩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 김여정의 말 한 마디에 한국의 정규군 부대들이 해산을 당하고,
애국자들이 압력을 받는 나라 에서 아직도 북한과의 전쟁 에서 이긴다고 자랑하는 바보 들은 정신을 차려라!
- 김태산
미국의 은혜를 잊지 말라
☆미국의 "100년 선의"와 중국의 "2천년 패악질"( 양상훈/조선일보 주필 )의 글을 인용함
사주 (四柱)라고도 하는 팔자 (八字)는 흔히 타고난 운명이나 숙명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삶의 조건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이 조건이 운명이자 숙명이기는 하겠지만 절대 바뀔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팔자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팔자가 가장 사나운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 같은 대륙 세력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다. 일본 같은 해양 세력에서 본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큰 전쟁만 50여 차례 당했다. 중국이 김일성과 모의한 6·25 남침은 한 사례일 뿐이다. 왜구 정도의 침략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라를 통째로 들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정말 이사 가고 싶은 숙명을 안고 살아온 것이 우리다.
그 숙명 중에 가장 가혹했던 것은 중국이라는 존재였다. 육지로 바로 연결된 중국은 수천 년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조선은 생존 전략으로 사실상 무력을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들어갔다. 그에 따른 피해나 수모도 전쟁 못지않게 고통스러웠다. 처녀들을 바치라, 금을 바치라, 은을 바치라, 사냥용 매를 바치라, 말(馬)을 바치라는 등 조공 요구는 끝이 없었다. 바치라는 단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물산이 부족한 나라가 거덜 날 지경일 때도 있었다.
이 가혹한 조공을 피하고자 조선은 중국 조정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생존 수단이 됐고 그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뇌물로 조선에 가는 사신이 된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금과 은을 내놓으라며 부린 행패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중국이 러시아의 연해주 진입을 막는다고 조선군 부대 파병을 요구하고선 조선군이 총을 잘 쏘자 조선군 총을 다 뺏고 무장 해제한 일을 다룬 내용도 읽었다.
조선이 미국에 외교관을 파견하자 가로막고 미국 대통령도 만나지 못하게 방해했다. 20대 중국 애송이가 조선에 와 대신들을 때리고 조선왕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숙명 속에서 우리는 한 순간도 빛나는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때 구한말 한국에 와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들을 언급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같은 분들은 환생한 예수가 아닐까 느낀 적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왜,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장 더럽고, 가장 희망 없는 나라에 와서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했을까. 이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지금 우리나라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로제타 홀 여사는 가족 전체가 한국에서 봉사하다 전염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 둘을 한국 땅에 묻고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고대 병원, 이대 병원을 세우는 등 43년간 봉사하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지금 서울 양화진엔 홀 여사와 아들 부부까지 5명이 묻혀 있다.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멘다.
조선일보가 홀 여사를 보도했더니 한 분이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준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지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명 없습니다. 그들의 억압과 행패만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과 100여 년 관계를 맺은 미국은 세계 변방의 이 나라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피 흘려 싸우고, 식량을 주고, 돈을 주고, 미국으로 불러 가르쳤습니다. 미국 세계 전략의 한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중국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 10위권 국가가 된 것은 우리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의 노력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마침내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을 만났다는 우리의 역사적 선택과 행운이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나라가 됐지만 중국은 한국과 맺은 관계를 과거 조선과 맺었던 관계로 고착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 특사를 중국 지방장관이 앉는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주한 중국 대사는 계속
부국장급 정도의 하급 관리를 보내고 있다. 모두 의도하고 계산한 행동이다.
그 중국 대사가 얼마 전, “한국이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과 정상적이고 대등한 우호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특히 中共 (공산당)에 ‘베팅’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베팅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한국과 미국 모두 같은 베팅을 했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한 베팅이다. 이 베팅으로 한국은 팔자를 고쳤다. 2000년 악몽을 벗어났다. 중국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꿈을 깨야 한다. (끝)
(* 지금 미국은 중동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경찰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것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의 도움으로 잘 진행되고, 인류대가족 세계평화구현이 속히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세브란스 유래!
미국에서 은행에 다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859년 세계 최초로 석유갱이 발견되자 친구 Rockefeller(록펠러)와 함께 석유회사를 세웠습니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했고 그는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벌였습니다.
도시 곳곳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 하였는데,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 병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완공된 건물을 시에 기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Severance(세브란스) 입니다.
그는 빈민과 고아를 돌보았던 부모님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자선 활동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00년의 어느날 그는 뉴욕 '카네기 홀' 에서 연설을 듣게 되었는데 연사는 당시 조선(대한민국)에서 의료봉사 활동중이던 의사 Avison(에비슨) 선교사 였습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조선에 있는 병원들은 병원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빈약합니다.
간호사도 없이 한 명의 의사가 모든 것을 운영합니다."
이 연설을 들은 세브란스는 흔쾌히 기부했고 4년 후 경성(서울)에 조선 최초의 종합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의 모체이며 당시 기부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약 5,000억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왕부터 백성까지 누구나 진료 받을 수 있는 자선병원 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브란스 자신의 주치의 였던 lrving Ludlow(어빙 러들로)도 조선으로 보냈습니다.
'어빙러들로'는 26년 동안 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낙후된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어빙러들로'가 미국 본국에 입국한 이듬해, 세브란스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낡은 수첩에는 기부금을 약속한 여러 곳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약속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금까지 마련해 두었으나, 정작 자신 명의의 집은 한 채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받는 당신보다 주는 내가 더 행복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져려오는 감동의 모습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교훈을 몸으로 실천한 성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세워진 의술의 초석은 이렇게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힘이 생기고 커지면서 점점 물질의 바벨탑을 쌓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눔, 섬김과 찾아감을 뒤로한 채 힘, 모음, 움켜쥠에 매달리면서 자기의 성(城 )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이름 없는 어느 시인(詩人)의 말이 울림을 줍니다.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 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인데..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인데...
-옮겨 온 글-
♥︎3월 마지막 날입니다.
3월 한달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다가올 4월에도 넘치는 봄기운과 아름다운 꽃향기를 만끼 할수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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