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천에서 박정희 대통령님께 -
봄엔 잔디밭에 불이 나도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 아지랑이 때문이다. 봄불은 아지랑이 속에 숨어서 피어오른다. 불탄 재의 까만 흔적이 아니라면, 잔디밭에 붙는 불은 알아채기 어렵다.
그러니까 산소 잔디밭 이야기다.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잔디밭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무심코 버린 것이 불이 난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난 산소에 올 때는 화기(火器)를 갖고 오지 않는다.
최초의 작은 불꽃을 놓치면, 다음은 가공하리만치 엄청난 산불로 번진다. 바람이 부는 날 산소잔디밭은 그래서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은 부모님 산소 묘소 잔디에 제초제를 했다. 밭 가운데 있어서 온갖 봄풀이 자란다. 그 중에는 나물 종류도 많다. 아마도 콩나물 빼고,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종류는 다 난다고 봐야 한다. 어떤 때는 보리싹도 난다.
산소를 돌본다는 것은 잡초를 제거한다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벌초는 물론이고 제초제도 해야한다. 다행히 선택성 제초제가 있어서 잔디 다치는 일은 없다.
일을 마치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오다가 대산읍 정류장 편의점에서 사온 것이다. 난 강렬한 커피 쓴맛에 적응할 수가 없어서 라떼를 주로 마신다. 혀에 감기는 은은한 단맛과 은근한 쓴맛이 좋다.
멀미등에서 멀리 들을 가로지르는 대산천이 보인다. 금구마을과 우리 마을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다. 옛날에는 법성바다에서 농어새끼며 숭어새끼 모치들이 이 하천까지 올라왔었다. 밀물이면 바닷물도 들어와서, 그 시절엔 선착장도 있었던 모양이다. 배에 관련된 지명이 여럿 있다. 하천공사 중 하천 바닥에서 그 시절 배가 발견된 일도 있었다.
대산천이 거대한 둑길로 변한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추억은 하천길을 따라 십여리 흐드러진 왕버드나무 숲으로 달려간다. 그 버드나무는 일부가 지금도 삼태마을에 천연기념물로 남아있다. 하천둑을 보호하고자 심은 버드나무였다. 모두 아름드리 고목들이었다.
밤이면 왕버드나무 우거진 하천엔 도깨비불이. 일어났고, 그 도깨비불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본 우리들은 공포에 질려 말바위 쪽을 바라보곤 하였다. 도깨비들이 말바위에서 나오는 줄만 알았다.
훗날 이 도깨비불의 정체를 알기까지 우리는 대산천에 사는 도깨비가 실제로 사람을 해치는 줄만 알았고, 망태귀신이며 청도깨비들이 사람을 잡아간다는 말에 목을 움추리며 살았다.
더 신비로웠던 것은 버드나무 위로 올라간 가물치들이었다. 비 오고 난 다음날 아침 냇가로 가보면, 버드나무에서 냇물로 떨어지는 가물치들이 있었다. 버드나무에 빗물이 흐르면 가물치가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 멀리서 풍덩! 소리가 나면, 그게 가물치 떨어지는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가물치를 바구리에 넣고 버들가지로 덮으면, 한나절이 가도록 죽지 않는단다.“
그만큼 가물치와 버드나무는 서로 궁합이 맞는 사이라고 어른들은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가물치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내 추억 속 한 편을 자리하는 신비였다.
문제는 홍수였다. 오뉴월 모내기가 끝나고 벼가 분얼(分蘖)을 하여 포기가 굵어지는 칠팔월에는 반드시라 할 만큼 홍수가 났었다. 제 아무리 아름드리 왕버들이 둑길을 보호한다 하여도 둑은 터졌고, 온 들판이 물바다가 되었다.
해마다 쌓인 모래로 하상(河床)이 높아지면서 둑은 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넘친 물에 잠긴 벼논들은 그대로 모래에 파묻히고, 그해 농사는 망해버리는 것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불행이었다.
둑이 터지는 것을 '방천( 防川) 났다'고 하였다. 물을 막으려는 둑이 무너져 나가버렸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방천났네' 소리가 들려오면, 우리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 둑을 넘어오는 어마어마한 붉은 황톳물을 바라보았다.
어른들은 넋을 잃었고. 우리 어린 것들은 두려움에 떨곤 하였다. 이제 추운 겨울을 어찌 보낼까나. 춘3월 보릿고개 부황든 얼굴들. 어찌 살아낼까나.
아무리 동네사람들이 모여 둑길을 보수해도, 한꺼번에 쏟아지는 홍수는 불가항력이었다. 만석꾼이 살았을 만큼 거대한 들이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고 나면, 마을사람들은 굶어야 했다.
1968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근 60여년 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 불도저를 처음 보았다. 당시 불도저는 대한민국에 몇 대 되지 않았을 때이고, 그것도 경남에 겨우 두 대 있었다는 불도저였다.
그 불도저가 왕버드나무를 넘어뜨리는 모습을 보았다. 앞에서 한 대 치고 뒤에서 밀면 그 거대한 버드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갔다. 하천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공사를 명령한 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셨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께선 민정시찰 중이셨다. 대산읍에 들렀을 때, 고을 유지들이 대산천의 비극을 말하였고, 우리 마을 그 넓은 들을 바라본 대통령께선 즉시 공사를 명하셨다. 그리하여 불도저가 우리 마을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 하천공사는 약 3년이 넘게 지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 멀리 와탄천까지 연결되었으니, 근 오십여리가 넘는 엄청난 공사였다.
이 하천공사를 맡아 감독하셨던 분이 우리 부친이셨다. 집안일 모두 어머님께 맡기고 하천공사일에 매진하셨던 부친께선, 도깨비불 날아다니던 하천길을 없애고 이 거대한 둑길을 남기셨다.
그리고 60여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마을은 단 한 차례도 홍수를 겪지 않았다. 마침 통일벼가 심어지기 시작했고, 200평 한 마지기에 나락 10가마(쌀 닷섬)가 수확되는 풍년이 지속되었다. 한 마지기에 겨우 나락 두 가마 수확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하천공사와 통일벼로 우리네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덕에 마을 아이들은 너도나도 유학길에 나서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부친 하늘로 가신 이 마을에는 지금 불초자식만 남아있다. 그리고 저어기 덕천마을로부터 내려오는 대산천 둑길을 본다. 높이가 3~4미터가 넘는 거대한 혈맥이었다. 그 공사를 하신 부친은 지금 여기 이 산소에 묻혀계신다. 모두가 그때 일을 잊은 것처럼 당신께선 아무 말도 없으시다.
노령의 산맥들이 저 멀리 펼쳐져 있다. 그 산 우거지면서 대산천엔 끊임없이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들녘이 메마른 적은 없게 되었다.
곧 증조부님과 조부님 산소 단장이 끝나면, 비(碑)를 세워 부모님을 기리고, 대산천에 얽힌 사연을 새겨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겠다. 우리 부친께선 박정희 대통령님의 명(命)을 받들어, 이 마을에 홍수와 가뭄을 몰아낸 분이셨다는 말을 꼭 전해 주리라. 그리고 60여년 전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말 꼭 전해주리라.
2026. 3. 30.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기쁨 공식》 장애인의 성공담
가난과 장애, 차별과 절망,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산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시기를 놓쳤고, 그 후유증 때문에 “앉은뱅이” 로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시며,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리라고 말하며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눈물로 지샜습니다.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습니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고는 병아리들과 강아지,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작은 꽃들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학교는 '장애인이란 이유' 로 그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교문 밖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들을 등에 없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
“ 아가야 춥지 ? ”라고 따뜻하게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그에게 다른 어떤 말보다 값지고 힘이 났으며,
세상의 힘든 일들이 비수처럼 다가왔을 때 기억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어둠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그 날 이후 아들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1세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고 굳은 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그가 공부에서는 늘 1등을 했고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 중학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습니다.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한구석에서 밥상을 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 (KIAS) 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 상’ 을 받았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장애를 딛고 세상에서 온갖 냉대와 차별 속에서도 “인생을 기쁨공식으로 풀어낸” 【김인강 교수】 입니다.
그는 '3차원 다양체의 위상수학' 과 '기하학 분야' 의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망이 높습니다.
김인강 교수는 자전 에세이 《기쁨공식》 을 펴내,
소외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 를 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장애를 딛고 촉망받는 과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지나온 삶』 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김 교수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공식“ 을 들려줬습니다.
김 교수는 주위의 온갖 냉대와 차별 속에서도 장애를 이겨낼 수 있었던 "신앙의 힘" 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하나님이 그를 위해 마련해 둔 계획은 달랐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는 또 고통스러운 육신 안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그 곳에서 만난 하나님과 그분 안에서 발견한 “기쁨 공식” 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다음은 《기쁨 공식》 책의 “불완전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 내용입니다.
나는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재활 치료 끝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조기를 끼고 목발을 짚고 처음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초,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체 너무 많이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다.
의사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기도원 한 구석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 주세요. ”
그때 문득 등 뒤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다.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
그 순간 자아가 꺾이며 회개가 터져 나왔다.
욥처럼 하나님의 모든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처럼 연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법” 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기도하는 법’ 과 ‘성경 읽는 법’ 을 배웠다.
고통 하는 가운데서도 ‘찬양하는 법’ 을 배웠다.
나는 육신의 나약함에 끊임없이 노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인해 『약한 데서 강해지는 법』 을 배우게 하셨다.
【예수님】 은 나에게 ‘세상의 모순과 절규’ 를 알려주었고,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방법’ 을 알게 하셨다.
세상이 나를 죄인 취급할 때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시며 당신이 하실 일을 계획하셨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질그릇이 되게 하신 것이며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선하심을 나타내려 하셨다.
만에 하나 쯤 생길 수 있는 "경이로운 인간승리 이야기" 입니다.
나는 《인강》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김인강” 은 말했다.
『 이웃을 돕는 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가능하다. 』
이 한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다.
경험에서 얻어진 생명력 있는 명구 (名句) 다.
“인강” 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동정의 시선 , 호기심의 시선, 경멸의 시선...
그 눈초리가 무엇이었던 간에 “인강” 은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다.
눈총을 받아내기 위해 무감각을 연습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이건 안 뜨겁다’ 고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았다.
정신적으로 견딘다 해도 상처가 남는다.
상처 위에 덧 입혀져 무감각해질 때까지 버티는 동안 어느덧 “인강의 마음” 은 딱딱해지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와 성경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들을 읽었다.
마치 “인강” 자신이 당하는 것 같았다.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희롱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인강은 자신의 처지로 이입시키는놀라운 체험을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씀이 인 강의 가슴을 쳤다.
완전한 용서 완전한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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