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했던 삼성전자 주총날, 노조는 파업을 결의했다

18일 오전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열린 수원컨벤션센터 2층. 삼성전자가 마련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전시 코너엔 주주들이 줄을 서서 실물과 모형 사진을 찍으며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납품을 시작한 HBM4(6세대)와 전날 세계 최초로 공개한 HBM4E(7세대) 실물 칩을 살펴보던 50대 주주 김모씨는 “주가를 올려준 효자인 HBM을 꼭 보고 싶었는데, 설명까지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이날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는 1년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송곳 질문과 질타가 이어졌던 작년 주총과 달리 올해 총회장을 가득 채운 1200여 주주는 “믿음에 경영진이 보답했다”며 격려의 말을 쏟아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1년 전보다 256% 오른 20만8500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날 회사와 성과급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삼성전자 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노조가 실제 파업 수순에 들어간다면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인공지능(AI)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삼성전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기애애 삼성전자 주총
삼성전자는 이날 주총에서 1년 만에 ‘완벽한 부활’을 선언했다. 주총 의장을 맡은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는 “작년 주주총회에서 경쟁력 부족에 대해 반성하고, 회복을 약속드린 바 있다”며 “그 약속을 지켰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내년에는 더 차별화된 기술을 발전시켜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 부회장은 “중장기적인 사업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3년 또는 5년 단위의 다년 메모리 공급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며 “HBM4E와 HBM5 등 후속 제품도 탁월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날 주주들의 질문은 반도체(DS) 부문 대비 부진이 예상되는 완제품(DX) 부문과 주주 가치 제고 방안 등에 집중됐다. “삼성전자 주가가 30만원, 40만원 가려면 DX 부문도 중요한데, AI 시대에 어떻게 주도권을 잡을 것인지 설명해달라” “중국 저가 TV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노태문 대표이사(사장)는 “모든 제품에 AI를 탑재하고, 프리미엄 중심 전략을 통해 차별화하겠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배당 계획도 공개했다. 전 부회장은 “연간 9조8000억원의 정규 배당과 함께 1조3000억원의 추가 배당을 지급할 예정”이라며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DS부문의 김용관 경영전략총괄의 이사 선임, 허은녕 서울대 교수의 감사위원 선임 등 주총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노조는 파업권 확보
주총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삼성전자 현장에선 ‘칼바람’이 불었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이하 노조)는 지난 9일부터 진행한 임금교섭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재적 조합원 6만6019명(투표율 73.5%)이 참여해 찬성률 93.1%를 거둬 쟁의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동투쟁본부는 최근 과반 노조가 된 초기업 노조 삼성전자 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동행 등 3개 노조 연합으로 꾸려진 공동 교섭단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임금 단체 협상(임단협) 관련 파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노조 측은 4월 23일 집회를 열고, 5월 중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파업이 진행되면 삼성전자 창사 이래 두 번째 파업이 된다.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 상한 폐지,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화, 임금 인상 7% 요구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성과급 상한 폐지다. 삼성전자는 1년에 한 번 초과이익분배금(OPI)을 지급하는데, 연봉 50%를 상한으로 두고 경제적 부가가치 지표라는 EVA를 기준으로 금액을 산정한다. 앞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고,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자 삼성전자 노조도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성과급 상한 폐지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성장을 위한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어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위탁 생산(파운드리), 생활 가전, 스마트폰, TV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사업부마다 실적도 다르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은 대규모 장비·시설 투자가 필요한데, 성과급 상한을 폐지할 경우 자칫 직원 보너스를 주느라 투자 자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또 노조 측 요구안은 반도체(DS) 부문에 유리한 구조라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노·노(勞·勞)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면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사업부 직원은 지금보다 많은 보너스를 받고, 적자가 우려되는 가전 사업부 직원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노사 갈등을 몰아닥칠 삼성전자 노조 리스크의 시작이라고 본다. 삼성전자는 임직원 수가 SK하이닉스의 4배 수준이라 전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해도, SK하이닉스처럼 1인당 받을 수 있는 돈이 1억원이 되지 않는다. 이를 구실 삼아 노조 측이 더 많은 영업이익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실제 파업이 진행되면 최근 경쟁력을 회복한 HBM 납품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전 세계가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투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노조 리스크라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고 했다.
쉘 "2040년 LNG 수요 최대 68% 증가"… 韓 조선업 장기 일감 기대
2050년 해상 에너지 교역서 LNG 비중 16%→30%

영국 에너지 메이저 쉘(Shell)이 2040년까지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수요가 2025년 대비 최대 68% 증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배로 실어나르는 에너지 교역에서 LNG가 차지하는 비중은 2050년 약 30%로 지금의 두 배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LNG 해상 교역이 늘어나면 이를 운반할 선박 수요도 커지는 만큼 고부가가치 LNG 운반선 위주의 선별 수주로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공세에 대응 중인 국내 조선업계에 꾸준한 일감이 공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NG 시장, 2030년 40% 확대"
18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쉘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발표한 'LNG 포트폴리오 전략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 전쟁으로 전 세계 LNG 생산량의 20%가 차질을 빚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기 수요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LNG 수요는 2025년 4억2200만t에서 2040년 6억5000만~7억1000만t으로 늘어나며 2050년에는 최대 7억80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쉘은 "LNG가 석탄과 석유 등 탄소 집약도가 높은 연료를 대체하며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는 핵심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해상 에너지 무역의 판도도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배로 실어나르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원유와 석탄이 차지하지만 점차 두 에너지원의 해상 운송이 줄어드는 자리를 LNG가 채울 전망이다. 쉘은 해상 에너지 교역에서 LNG 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16%에서 2050년 약 30%로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에너지 화물 운송 구조의 변화는 곧 대형 LNG 운반선 신규 발주 확대로 이어진다. 영국 해운분석업체 우드맥킨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신규 프로젝트 물량과 노후 선박 교체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2040년까지 650척 이상의 신규 LNG 운반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쉘은 "현재 LNG 산업이 새로운 투자 수퍼사이클 초기 단계에 진입했으며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40%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韓 조선 3사, 특화 전략으로 LNG 시장 선점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대형 LNG 운반선 위주의 선별 수주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LNG 운반선 발주 잔량의 66%를 한국이 맡고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인도된 대형 LNG 운반선 296척 가운데 한국은 248척을 납품해 83.8%의 점유율을 기록했고 중국은 48척을 납품하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중국 조선소의 수주 물량이 늘어나고 있으나 상당수는 자국 해운사 발주 물량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이 건조하는 LNG선은 여전히 한국 선박보다 품질, 기술이 떨어지고 수주 물량 대부분이 중국 내수 물량"이라며 "최근 미국 셰니에르나 모잠비크 에퀴노르 프로젝트 등 주요 글로벌 발주 물량에서는 중국 조선사의 참여가 배제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 3사는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LNG 수요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오션은 단일 조선소 기준 세계 최다인 대형 LNG 운반선 200척 건조 실적과 쇄빙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북미 등 신규 가스전 수주에 집중한다.
삼성중공업은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해 액화·저장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분야에서 전 세계 발주 물량 10기 중 6기를 수주하며 1위를 기록 중이다. HD현대 계열 조선사들은 이중연료 엔진 등 친환경 기술 고도화와 함께 글로벌 LNG 벙커링선(해상 연료 공급선)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공급 초과 변수, 신흥국 新수요 창출로 상쇄
LNG 공급 과잉이나 프로젝트 지연 등은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쉘은 대규모 신규 투자에 따라 단기간에 물량이 초과 공급될 경우 LNG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가스전 프로젝트들이 각국의 정책이나 지정학적 요인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지연될 경우 대규모 선박 발주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쉘은 가격 하락 압력이 오히려 LNG 시장 팽창을 이끄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단기적인 공급 과잉으로 LNG 가격이 내려가면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개발도상국들이 화석연료 대신 LNG 도입을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쉘은 "유럽과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가스 소비가 정점을 지났으나, 아시아 신흥국들의 신규 수요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면서 "글로벌 LNG 수요는 2040년 이후에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가중되는 美의 파병 압박, 정부의 지혜 절실한 때

한국을 포함해 특정 국가를 거명하며 이란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는 미국의 요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가 우리를 도왔는지 기억할 것”이라며 이 사안이 대미(對美) 관계의 척도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 일본, 독일의 미군 주둔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보호해줬지만 그들은 열의가 없다. 그 열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미 국무장관과 통화했던 조현 외교부 장관은 17일 국회에서 미국의 파병 요청 여부를 묻자 “현재로선 답변 드리기 참 곤란하다”고 했다.
한국 원유 수입의 6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고 있다. 208일분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악의 시나리오 대책을 언급하면서 “차량 5부제나 10부제 대책을 수립하라”고까지 했다.
호르무즈 문제는 한국 경제와 직결된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미 동맹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응 수준을 보면서 관세 등 경제 문제부터 주한미군, 핵우산 등 안보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호르무즈는 미 해군조차 직접 군함을 투입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해역이어서 우리 해군이 이 해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이 군사작전에 동참할 경우 중동의 주요국인 이란과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현재는 대부분의 나라가 군함 파견에 선뜻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트럼프는 31일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 연기까지 시사하며 반발했다. 결국 미국의 압박은 동맹이면서 호르무즈 해협 의존성이 높은 한국과 일본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 총리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곤란하다”는 우리 정부 답변은 파병 요구를 수용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난처함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는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우방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는 한편 현재 중동 부근 해역에 파견 중인 청해부대의 활용에서부터 기뢰 제거함의 투입 같은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란 전쟁 상황은 예측불허다. 트럼프도 예측불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익을 지킬 정부의 지혜가 절실하다.
지금 이 경찰과 중수청이 유일 수사 권력 된다면

민주당이 공소청 검사가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의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공소청법과 중수청법 최종안을 공개했다. 기존 정부안엔 중수청이 수사를 개시하면 검사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를 삭제했다. 각 분야 범죄의 1차 수사를 맡아온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 지휘권도 삭제했다. 세무·환경·노동 등 각 정부 부처에 소속된 사법경찰인 2만명가량의 특사경이 검찰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검사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경찰이나 중수청이 수사권을 남용하거나 사건을 덮을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공소청 검사가 중수청이 송치한 사건에서 또 다른 범죄 수사 필요성을 발견한 경우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했다. 중수청 수사관이 돈을 받고 피의자를 입건 대상에서 빼준 것으로 의심돼도 공소청 검사가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도 없는 것이다.
경찰이 직무 집행과 관련해 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검사가 소속 기관장에게 직무 배제를 요구할 수 있는 공소청법 조항도 삭제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경찰·중수청 등 1차 수사기관이 모든 권한을 갖게 되고, 이를 견제할 장치는 사라진다. 수사 전문성이 떨어지는 특사경이 아무런 수사 지휘도 받지 않을 경우 예상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벌어질 수 있다.
정권이 경찰과 중수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중수청법은 행안부 장관에게 중수청 지휘·감독권을 부여했다. 경찰청을 관장하는 행안부 장관이 중수청마저 통제하면 대통령이 행안부 장관을 통해 수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과거 검찰 시절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검찰이 수사 중립을 지키지 못해 개혁한다면서 경찰, 중수청을 정권이 장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미 경찰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고발된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 등 정권과 관련된 수사는 아예 뭉개고 있다.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전재수 의원 수사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일 것이다.
악질 범죄자의 新무기, '소송 지옥'의 시작
가해자에 칼 건넨 '법왜곡죄'
피해자는 끝없는 재판 지옥
우려 속에 시행된 '사법 3법'
'사법방해죄' 도입해 견제해야

법을 왜곡 적용하는 판·검사를 처벌하는 ‘법왜곡죄’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난 5일, 지방의 한 법정에서 50대 상습 스토킹범 A가 법왜곡죄를 거론했다. 그는 자신이 스토킹하던 피해자를 등장인물로 한 음란 소설을 블로그에 게시해 명예훼손과 통신매체 이용 음란 혐의로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이번이 세 번째 실형이다. 그런데도 그는 항소심에서 “민주당에서 법왜곡죄를 통과시켰으니 내 사건은 분명 법 왜곡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름과 나이를 비슷하게 써서 욕을 했을 때, 판사가 ‘나구나’ 하고 고소하면 처벌받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악질 범죄자가 법왜곡죄를 신(新)무기로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사건 피해자인 40대 여성은 일면식도 없는 A에게 7년 가까이 시달려 왔다. A는 2019년부터 가끔 미디어에 얼굴과 글이 노출되는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글에 댓글을 다는 정도였지만, 차츰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적 괴롭힘으로 나아갔다. 그녀가 유튜브 측에 신고해 해당 채널이 삭제되자 그때부터는 이메일과 편지로 직접 협박을 이어갔다.
참고 참던 그녀는 2021년 11월 결국 법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보복으로 “앞으로 엄청 괴로울 거다” “네 목줄을 쥐고 있다” 같은 악담을 퍼부었다. A는 첫 사건에서 음란죄·모욕죄 등이 인정돼 징역 1년이 확정됐고, 스토킹과 보복 협박 등이 추가로 드러나 복역 중 징역 2년 6개월이 더해졌다. A는 수감 중에도 피해자에게 음란한 그림을 담은 편지를 보내며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3년 6개월 형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번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자 A는 법왜곡죄로 재판부를 압박해 감형을 노리는 것 같다. 뜻대로 안 풀리면 재판 도중 1심 판사나 검사를 고소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재판이 열리고 피해자는 더 고통받게 된다. 경찰이 사건을 각하 또는 무혐의 처분하면 담당 경찰관을 고소할 수도, 판결에 불복해 재판소원으로 다시 한번 시간을 끌 수도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A 같은 범죄자의 소송이 인용되긴 어렵겠지만, 소송 제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대법원이 경고한 무한 반복의 ‘소송 지옥’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저 놈 손에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판사가 흔들릴까 봐 너무 무서워요.”
그녀는 기자에게 이렇게 절규했다. A가 감형돼 풀려나는 것도, A와 엮여 끝도 없는 재판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피해자에겐 공포 그 자체다. 그녀는 “나 같은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렇게 법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법왜곡죄와 재판소원법이 통과된 뒤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등 ‘사법 3법’은 국민 기본권 보호와 사법권 남용 차단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판·검사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려다 무고한 피해자를 끝없는 불안에 떨게 하는 법이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난 12일 ‘사법 3법’이 시행됐다. 1주일도 안 돼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수십 건이 접수됐다. 협박범, 성추행범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소송을 건다. 범죄자에게 쥐여 준 칼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방패를 마련해야 한다. 허위 고소와 재판 방해 수단으로 악용되는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을 견제할 ‘사법 방해죄’ 같은 보호 장치를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 이 법을 만든 거대 여당의 책임이다. 사안에 따라 목적은 달랐지만, 민주당도 과거 여러 차례 사법 방해죄 도입을 외치지 않았나. 그것이 피해자가 최소한의 안심을 얻는 길이고, 꼬인 ‘사법 개혁’을 바로잡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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