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 문화 인류학 교수 리처드 폴먼 교수의 "젓가락 문화에 관한 연구" 내용의 강연을 발췌한 것 입니다》
🥢한국의 젓가락 문화(세계 강국이 된 이유)
저는 리처드 폴먼 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30년째 문화인류학 을가르치고있습니다.
제 전공은 음식 인류 학과 인지 인류학 입니다.
인간이무엇을먹느냐보다 어떤 도구로 먹느냐가 제 연구 주제 였습니다.
젓가락, 포크, 숟가락, 손으로 먹는문화까지 모두 제 연구 영역 이었죠.
지난 30년간 저는 유럽과 중동동아시아를 오가며 현장조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중국과 일본의식문화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으로정리했습니다.
그들은 예측 가능한 문화권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달랐습니다. 한국은 늘 데이터에서 튀는 값이었습니다.
무시할 수는없었지만 설명도 되지 않았죠.
세계 강대국과 식사 도구를 연결시키는 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논리 이니까요.
**먼저 포크를 생각 해 봅시다.
포크는 서양 문명의 대표적인 식사 도구 입니다.
구조가 단순하죠. 날카로운 네 갈래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습니다.
사용법도간단합니다. 음식을 찌르면됩니다. 손목을 약간만 움직 이면 되고 힘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필요한 근육은 손목과 팔뚝 일부분입니다.
단순동작의 반복이죠. 뇌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젓가락을 봅시다.
젓가락은 완전히 다른 도구입니다.
2개의 막대를 동시에 제어해야 하죠. 하나는 고정하고 다른 하나는움직여야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지렛대 원리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엄지와 검지 중지가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손가락 끝에 압력이 손목으로 전달되고 손목의 각도가 팔 전체의 균형을 결정합니다.
하나의연쇄작용이죠.
그런데 한국의젓가락은 여기서 더 나아 갑니다.
무게가 있습니다. 나무젓가락과 비교하면 2배에서 3배는 무겁죠.
그리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나무처럼 마찰력이 없습니다.
힘을 과하게 주면 음식이 튕겨 나가고 힘을 덜 주면 음식을 놓치게 됩니다.
강의실이 점점 더 조용해졌습니다.
더 중요한 건 형태 입니다.
납작하죠. 둥근 젓가락보다 훨씬 다루기 어렵습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자꾸 돌아가려하거든요.
그걸 잡아두려면 계속해서 미세한 압력을 조절해야 합니다.
이 도구로 밥을 먹는 다고 생각해 봅시다. 미끄러운 반찬을 집어야 합니다.
국물 속에 있는 젖은 음식도 집어야 하죠. 매 순간 판단이 필요 합니다.
얼마나 힘을 줄 것인가?
어떤 각도로 접근할 것인가 언제 압력을 풀 것인가?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그건 그냥 불편한 도구 아닙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불편한 도구죠.
하지만 그 불편함이 핵심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이 불편한 도구를 사용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죠.
손가락 끝에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훈련입니다.
압력을 조절하는 훈련입니다.
실수를 수정하는 훈련입니다.
이건 단순한 식사 습관이 아닙니다.
이건 하루 세 번 반복되는 고강도 손과 뇌협응훈련입니다.
어릴때부터시작됩니다.
태어나 숟가락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이 무겁고 미끄러운 도구를 쥐게 되죠.
처음엔 제대로 짚지 못합니다.
떨어뜨립니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하니까요. 수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손끝의 감각이 극도로 정교해집니다.
미세한 압력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순간적인 판단이 몸에 배입니다.
이런 불편한 도구를 쓰는 나라가 한국뿐 일까요?
제 질문이 끝나자 마자 한 아시아계 한 학생이 교수님 중국과 일본도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왜 한국만 특별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히 제가 기다리던 질문이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해야 하죠.
가방에서 다른 젓가락들을 꺼냈습니다. 중국식 젓가락과 일본식젓가락이었습니다.
**중국 젓가락부터 봅시다.
길고 둥근나무젓가락 중국젓가락은 길이가 25cm 정도 됩니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길죠. 재질은 주로 나무나 대나무 입니다.
가볍고 표면에 마찰력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만들었을까요?
중국의 식사 문화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중국은 원탁 문화죠. 큰 테이블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습니다.
내 앞이 아니라 테이블 중앙에 음식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젓가락이 길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중국 음식은 기름진 요리가 많습니다. 볶음 요리 튀김 요리가 주를 이루죠.
그래서 마찰력이 필요합니다. 미끄러운 금속보다는 나무가 적합한겁니다.
**일본 젓가락은 또 다릅니다.
짧고 끝이 뾰족한 젓가락이었습니다. 길이가 짧습니다. 20cm 정도죠.
그리고 끝이 아주 뾰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은 독상문화 입니다.
각자 자기 앞에 놓인 밥상에서 식사하죠. 멀리 있는 음식을 집을 필요가없습니다.
그래서짧아도됩니다.
그리고 일본 음식의 특징은 생선입니다.
회 구이 조림 할 것 없이 생선 요리가 많죠. 생선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그 가시를 발라내려면 끝이뾰족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찔러서 분리해야 하니까요. 학생들이 진지하게 듣고 중국 젓가락도 일본 젓가락도 모두 이해가 됩니다.
환경의 도구를 만들었고 식문화가 형태를 결정했죠.
***그런데 한국 젓가락은 다릅니다. 재질부터 다릅니다.
쇠죠.
무겁습니다. 나무 젓가락에 두세 배는 무겁습니다.
그리고 납작합니다. 둥근 형태가 아니라 평평하게 눌린형태죠.
표면은매끄럽습니다. 마찰력이 거의 없습니다.
편의성으로 설명이 됩니까?
안 됩니다. 무겁고 미끄러우니까요.
효율성으로 설명이 됩니까?
역시 안 됩니다.
음식을 집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한 학생이 그럼 왜 그런 형태로 만든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한국 젓가락은 편의성으로도 효율성으로도 식문화의 특성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국 젓가락은 도구로서 보면 비효율적입니다.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도 수백 년간 이 형태를 유지해 왔습니다.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인 젓가락 문화권이 아닙니다.
젓가락 문화권의 예외값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런 비효율을 선택했을까요?
이제 비교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도구가 아니라 생활을 봐야 하죠.
한국 식문화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국물입니다.
찌개, 국, 탕 거의 모든 식사에 국물 요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발효음식이죠. 김치 된장 간장 그리고 삭히고 발효시키는 음식 들입니다.
이런 음식을 나무 젓가락으로 매일 먹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뜨거운 국물이 나무에 스며듭니다. 김치의 양념이 배어 듭니다.
된장 찌개의 냄새가 남습니다.
중국식 나무젓가락인 나무는 다공성 재질 입니다.
구멍이 많다는뜻이죠.
수분을 흡수합니다.
냄새를 머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색 되고 세균이 번식합니다.
아무리 씻어도 완벽 하게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주 바꿔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몇 주에 한 번씩 새 젓가락으로 교체해야 하죠.
하지만 한국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쇠를 선택했습니다.
쇠는흡수하지않습니다. 냄새가 배지 않습니다.
국물에 담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끓는 물에 넣어 소독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을 써도 처음 그대로죠.
저는 화면을 다시 넘겼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 수라상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금속 식기 문화는 상류층과 왕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을 감지하기 위해서였죠.
은 젓가락 (은수저)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음식에 독이 있으면 은이 변색되니까요.
일반 백성들은 은을 쓸 수 없었습니다.
비쌌으니까요.
대신 무쇠와 놋쇠를 썼습니다.
그렇게 금속 식기 문화가 전 계층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청결이었죠.
한국은 편리함이 아니라 위생을 선택했습니다.
가벼움이 아니라 청결을 선택한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왜 납작할까요?
왜 둥근 형태가 아니라 평평하게 눌린 형태일까요?
한국의 전통 생활 방식을 봐야 합니다.
좌식생활입니다.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었죠.
밥상은 낮은 소반이었고,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 방으로 날라야 했습니다.
문지방을 넘고 좁은 복도를 지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밥상을 들고 이동하는 겁니다.
흔들립니다.
그릇들이 덜컹거립니다.
만약 쇠젓가락이 둥글다면 어떻게 될까요?
둥근 쇠 젓가락은 밥상 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굴러서 바닥에 떨어지죠.
그래서 납작하게 눌렀습니다.
평평한 면이 밥상에 닿도록 만든 겁니다.
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생활이 담겨 있습니다.
밥상을 나르는 문화 좁은 공간을 오가는 생활 흔들림속에서도 음식을 지키려는 태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쇠젓가락은 취향이 아닙니다.
생활의 결과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한 선택의 흔적이죠.
그리고 이 불편함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생활이 사람을만들고 사람은 결국 산업을 만드니까요.
반도체, 조선, 방산, 자동차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죠.
그런데 이 산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적있습니까?
기술입니까? 아닙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습니다.
자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다른 나라들도 했을겁니다.
***답은 손입니다.
*미세한압력을 조절하는 손,
*반복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손,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손 말입니다.
***반도체 회로는 머리카락 굵기에 1000분의 일입니다. 나노m 단위죠.
이 미세한 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가 모든 걸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기계를 세팅하는 건 사람입니다.
기계의 오차를 감지하는 것도 사람이고 불량을 걸러내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뭡니까?
손끝의 감각입니다.
공정 하나하나를 체크할 때 필요한 촉각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 순간의 판단력이죠.
이게 어디서왔을까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무겁고 미끄러운 세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며 단련된 손끝 에서 왔습니다.
***이제 의료로 눈을 돌려 수술실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수술은 손끝 감각의 극한입니다. 피부를 절개하고 혈관을 봉합하고 신경을 연결하는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죠.
칼을 쥐는 힘 바늘을 잡는 각도 실을 당기는 강도 모두 mm 단위의 정밀함을 요구합니다.
한국 의료진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뭡니까? 정교함입니다.
수술 후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봉합합니다.
미세혈관을 연결하는 재건 수술에서도 탁월하죠.
손의 감각을 믿는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프를 생각 해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힘의 스포츠라고 착각합니다.
세계 치면 멀리간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아닙니다.
골프는 터치의 스포츠입니다.
공을 치는 순간에 손 감각 그립을 쥐는 압력 클럽 페이스가 공에 닿는 각도 이 모든 게 손끝에서 결정되죠. 거리감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m와 110 m를 구분하는 건 힘이 아니라 손의기억입니다.
한국여자골프선수들이 세계 랭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남자 선수들도 마찬가지죠.
이게 우연일까요? 타고난 재능일까요?
손 감각의 누적 결과 입니다.
어릴 때부터 쇠젓가락으로 밥알 하나하나를 집으며 길러진 미세 조절 능력 미끄러운 반찬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조심하며 체득한 압력, 감각, 매 끼니 마다 반복되며 몸에 배인 정밀함.
이 모든 게 골프채를 잡는 손으로 이어진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쇠젓가락으로 단련된 손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손이 되었고 *수술실에서 사람의 몸을 다루는 손이 되었고
*골프장에서 공을 다루는 손이되었습니다.
* 밥상에서 시작된 훈련이 국가의 경쟁력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능력을 세계는 과연 가만히 두었을까요?
이제 분석이 아니라 관찰을 이야기할 차례였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본 광경이 있습니다.
화면에 한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쇠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려 시도하는 모습이죠.
영상 속 사람들은 젓가락을 쥐고 있었지만 손놀림이 어색했습니다.
음식을 집으려 하면 미끄러져 떨어졌고 다시 시도하면 또 놓쳤습니다.
몇 번 반복하다 결국 웃으며 포크를 찾았습니다.
재미있어 보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왜 이렇게 간단한 도구를 다루지 못하는 겁니까?
막대기 2개입니다.
복잡한 기계도아니고 정교한 장비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실패할까요?
연습이 부족해서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연습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하루 이틀연습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뜻이죠.
일주일을 연습해도 한 달을 연습해도 한국 사람들만큼 자연스럽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사람들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쇠젓가락 사용법을 배운 게 아닙니다.
자라면서 몸에 밴 겁니다. 서너 살 때부터 매일 세 번씩 수년간 반복하며 체득한 겁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손이 움직이는 수준까지 온 거죠.
문화는따라할수 있다. K-POP을 듣고 드라마를 보고 한글을 배울 수 있죠.
하지만 생활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생활은 시간 속에서 천천히 몸에 새겨지는 것이니까요.
한국의 쇠젓가락 문화는 부모에서 아이로 전해집니다.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매일 밥상 앞에 앉히고 손에 쥐어주고 반복하게 만들 뿐이죠.
그렇게 세대를 거쳐 이어져온 겁니다.
저는 마지막 문장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세계는 한국의기술을 배우려 합니다.
반도체 공정을 조선 기술을 의료 술기를 배우려 하죠. 하지만 그 기술을 만든 생활까지는 가져가지 못합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묻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작은어디였을까요?
***답은 다시 밥상 입니다.
강의가 끝났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한국의 어느 저녁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오래된 기억 속 장면 이었죠.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거실 낮은 밥상 위에 하나씩 올라오는 반찬들 그리고 아이 앞에 놓인 쇠젓가락 한 쌍 밥상머리였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젓가락을 가르치며 다른 것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기다림을가르쳤습니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시기 전엔 먹지 않는 것 그게 순서라고 했죠.
절제를가르쳤습니다.
많이 짚지 말고 적당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배려를 가르쳤습니다. 좋은 반찬은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버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새 젓가락은 아이 손에 잘맞지 않았습니다. 무거웠고 미끄러웠습니다.
밥알을 집으려 하면 자꾸 떨어졌고 반찬을 집으려 하면 손가락이아팠습니다.
울고 싶었을 겁니다. 포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들은 포기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밥상 앞에 앉혔고 다시 쥐게 했고 계속 연습하게 만들었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렇게 해야 하니까 반복하게 했을 뿐이죠.
하루 한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세번이었습니다.
1년, 2년, 5년, 10년 그렇게 시간이 쌓였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의 손끝이 달라 졌습니다.
뇌가 달라졌습니다.
인내심이 생겼고, 집중력이 길러졌고, 정밀함이 몸에 배었습니다.
밥상에서 시작된 태도가 학교에서 집중력이 되었고, 공장에서 정밀함이 되었고, 산업에서 신뢰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쇠 젓가락을 집어들었습니다.
한국을 만든 것은 위대한 전략도 아니었고 기적 같은 정책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을 만든 것은 매일 저녁 아이 앞에 놓인 30g의 쇠젓가락과 그것을 끝까지 가르친 어른들이 었습니다.
한국은 천재를 키운 나라가 아니었습 니다.
버티는 법을 가르친 나라였습니다...!
( 리처드 폴먼, 하버드 대학교, 문화 인류학 교수)
10,000명이 가짜 주민? 공무원이 주도한 사상 초유의 '집단 위장전입' 사건 | KBS 시사기획 쌈 20080422 방송 - https://youtube.com/watch?v=dAmE5GUJuEc&si=JkTYa1cCzfSUUC3R
"전 세계 한국 호감도 1위 결과에 의문을 품었던 제가 틀렸습니다" 동생 사고로 한국에 편견을 가졌던 외국 기자가... - https://youtube.com/watch?v=EVVo4BdRGUU&si=iWWKS9JPz-KuFUzB
"청백리 세분의 자녀교육"
우리는, 청렴 결백한 관리를 청백리라 호칭하며 그분들 존함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첫째,
황희 정승께서는 아들 셋 중에 한명의 아들이 주색잡기로 방탕한 짓을 해서 골치 거리였을 때 몇 번을 좋게 타일렀지만 고쳐지지 않아서...
하루는 밤늦은 시간까지 관복을 차려입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며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께서,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은 예의인즉, 저는 지금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무릎을 꿇어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
맹사성 선생께서는 세종 초기에 이조판서였다.
그의 복장은 늘 허름하고 낡은 차림이었다.
하루는 내를 건너가려고 짚신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는데, 한 젊은이가 맹사성에게
“제가 내를 건너야 하는데 제 옷이 물에 젖으면 안돼서 그러니 저를 업어다 건너에 내려 주면 10전을 드리겠다.”
맹사성은 그 젊은이를 업어다 내려 준 후
“어디를 가는데 좋은 옷을 입고 가는가?”
“제 부친이 맹사성 이조판서와 친구인데, 저의 관직을 부탁하러 부친의 서찰을 가지고 맹사성 어른을 뵈러갑니다.”
“내가 맹사성이다. 자네가 관직에 오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부친에게 가서, ‘자식 인성교육이나 똑 바로 시켜서 관직에 보내라.’ 한다고 전해라.”
하고서는, 호되게 야단을 쳐서 보냈다 했다.
벗의 자식이지만 잘못을 지적하여 야단을 쳤고, 그 청년은 몇 년을 자숙하며 겸손을 깨달은 후, 말단 관직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세 번째로,
세종 초기 대사헌(검찰총장)과 판서를 역임한 정갑손 선생께서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 정오는 효성이 지극했고 문재가 빼어났다.
정갑손이 함길도 (함경도의 옛 이름) 관찰사로 있을 때, 아들 오도 어느덧 훤칠한 대장부로 자라 있었다.
함경도 관찰사 재임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에서 한 달 가량 머물다 함경도로 돌아와서, 밀린 서류를 점검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사이 치러진 향시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아들 '오'의 이름이 '장원 급제자’ 로 적혀 있었다.
향시는 지금의 도청격인 각 도의 관찰부에서 치르는 지방과거로, 향시에 합격하면 초시나 생원이 되어 한양에서 치르는 본 고사인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정갑손은 즉각 향시 출제위원들을 불러서 "정오의 합격을 취소하라." 명령했다.
출제와 채점을 했던 위원들은
“채점은 공정했고 장원 자격이 충분하다.”며 거세게 항변했지만 정갑손의 태도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곳 관찰사로 있는 한, 정오는 합격시킬 수 없소이다.”
그날 밤, 정갑손은 셋째 아들을 조용히 불러서
“오야, 나는 네가 함길도 향시쯤이야 장원을 하고도 남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들 ‘오’ 역시 미소로 답했다.
“네, 아버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후 ‘정오’는 경상도 외가로 잠시 내려갔고, 그곳 향시에서 장원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한양에서 치러진 과거에서 장원급제 어사화를 꽂고 함길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청렴했던 정갑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초가집에서 평생토록 무명 이불에 부들자리를 깔았고, 비단 이불 한번 덮어 보지 않았다고 한다.
몰염치가 오히려 당당하게 호도되며 당연지사로 여기는 즉물적(卽物的) 가치관이 횡행하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 선현들의 검박했던 청백리 표상 세분의 올곧은 삶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다아서 새겨본 것이다.
'교 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의길상(如意吉祥) 이란 말을 아십니까? 외3. (0) | 2026.03.09 |
|---|---|
| 5명의 영웅들! 한국은 영원히 가난할 것이라던 CIA 보고서가 30년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힌 이유 - 외4. (0) | 2026.03.08 |
| 내 인생을 바꾼10문장 외2 (0) | 2026.03.05 |
| 역심(力心)과 강심(强心) 외3. (0) | 2026.03.04 |
| ♤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과 달걀 외3. (1) | 2026.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