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은 필연이다.
“의욕의 주체는 영원히 애타게 갈망하는 탄탈로스와 같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이 '채울 수 없는 갈증'이라는 점에서
탄탈로스와 비슷하다고 본다.
제우스의 아들 시필로스의 왕 탄탈로스는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탄탈로스는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훔쳐 발각됐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제우스는 탄탈로스를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마르고,
과일을 따 먹으려 하면 가지가 물러나서 그는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린다.
인간은 탄탈로스의 운명처럼 목마름을 완벽하게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모든 의욕은 욕구에서, 즉 결핍이나 고뇌에서 생긴다.
이 욕구는 충족되면 끝난다. 그러나 하나의 소망이 성취되더라도
열 개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고 남는다. 더군다나 욕망은 오래 지속되고,
요구는 끝없이 계속된다. 즉 충족은 짧은 시간 동안 불충분하게 이뤄진다.
의욕한 대상을 얻지 못하면 확고하고 지속적인 충족은 얻을 수 없다.
이는 마치 거지에게 늘 던져 주는 적선이 오늘 그의 목숨을 이어 주어
고통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 두려움과 희망의 근원은 같다.
우리의 욕망의 만족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 의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가 끊임없는 희망과 두려움으로 여러 충동에
내몰려 있는 한, 우리가 의욕의 주체인 한 우리에게는 결코
지속적인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욕망을 충족해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이 성취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충족된 욕망은 한정돼 있지만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 욕망의 충족도 잠정적인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곧 싫증이 나고, 늘 똑같은 갈증을 느끼며
삶을 갈망할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이데스 자매의 비극을 언급한다. 다나이데스 자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 왕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로, 결혼하고 첫날밤에
각자의 남편을 죽인 죄로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는
벌을 받는다. 쇼펜하우어가 "다나이데스 자매가 밑 빠진 독에
끊임없이 체로 물을 퍼 올리는 것”에 비유한 이유는 그 행위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즉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동은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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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지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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