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비경 품고 달리는 '낭만 철도' 동해선이 온다
[아무튼, 주말]
동해선 개통으로 뜨는
강릉~부산 기차 여행
한반도의 등줄기를 잇는 동해선 열차가 개통 초읽기에 들어갔다. 동해중부선 삼척~포항(166.3㎞) 개통으로 강릉~부전(부산)을 잇는 동해선 전 구간이 연결되면 동해의 거대한 축을 잇는 철도망이 드디어 완성된다.
개통 일자가 당초 12월 31일에서 1월 1일(개통식 12월 31일)로 미뤄졌지만, 오래 기다려온 만큼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1년 후 시속 260km의 준고속 열차인 ‘KTX-이음’이 투입되면 강원도 강릉에서 부산 부전역(363.8km)까지 2시간 후반대, 삼척에서 포항까지 100분 만에 도착한다. 그 전까지는 신형 새마을호인 시속 150km의 ‘ITX-마음’으로 운행하기에 열차에 따라 강릉~부전은 4시간 40분~5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동해선 전 구간 개통은 강원·경상도 동해 생활권을 아우르는 지역민들뿐 아니라 동해 여행객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달 말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가 여행 전문 인스타그램 계정 ‘여행에 미치다(여미)’에 올린 ‘동해선 기차 여행’ 영상은 게시 일주일 만에 조회 수 75만회를 기록했다. 앞으로 동해선 철도 여행객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어떤 역에 들르며 어떤 여행지가 주목받을지, 동해선과 가까운 7번 국도와 지방도 등을 오가며 동해선 구간의 뷰포인트에 미리 가봤다.
◇바다 실컷 보고 달린다?
‘동해선’이기에 바다 하나는 실컷 보겠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구간에서는 바다 조망이 가능하고, 바다와 멀어져 터널을 통과하는 구간이 훨씬 많다.
강릉에서 부전까지 바다와 가장 가까이 달리는 구간은 이미 개통해 운행하는 강릉~삼척이다. 작년 말까지 강릉에서 출발해 정동진을 거쳐 묵호·동해·추암·삼척 해변을 오간 동해 관광 열차 ‘바다 열차’의 운행 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새로운 풍경을 기대한다면 개통하는 동해중부선 삼척~포항 구간 중 삼척 ‘근덕역’, 울진 ‘울진역’, 영덕 ‘고래불역’, 포항 ‘월포역’ 등을 오갈 때 눈을 크게 뜰 일이다.
동해와 근접해 나란히 달리는 7번 국도보다 철로와 역사(驛舍)가 바다쪽에 있거나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자리해 바다 조망이 가능하다. 울진역 부근을 지날 땐 멀리 동쪽으로 은어 조형물로 지어진 ‘은어 다리’도 보일 것이다. 이후 바다와는 한참 떨어져 매화·기성·평해역을 지나 후포~고래불역 부근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월포역은 바다와 직선 거리 400m 정도. 승강장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이긴 하나 민가나 농지, 건물을 사이에 두고 있어 탁 트인 전망을 기대하긴 어렵다. 포항에 접어들면 열차는 내륙을 파고든다.
◇월포·고래불·죽변역에서 걸어서 바다로
동해선 삼척~포항 구간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해변이나 호젓한 항구를 곁에 두고 달리기도 한다. 비교적 걸어서 해변까지 접근하기 쉬운 역은 포항 ‘월포’, 영덕 ‘고래불’과 ‘장사’, 울진 ‘죽변’이다. 월포역에서 월포해수욕장, 장사역에서 장사해수욕장, 고래불역에서 고래불해수욕장, 죽변역에서 봉평해수욕장까지는 모두 도보 10~20여 분 거리.
울진 죽변역 가까이 봉평리 마을 입구엔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어 바다를 향해 걷다가 잠시 쉬어 갈 겸 들러볼 만하다. 역사들이 외곽에 있기에 아직 인도가 없는 구간도 있지만, 역에서 동쪽을 향해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바다와 만난다.
◇‘블루로드’ 걷고, 독도까지 가고
새해의 시작과 함께 강원도 강릉 경포대·정동진, 동해 추암 촛대바위, 경북 포항 호미곶 등 기존 동해 일출 명소뿐 아니라 삼척과 울진·영덕의 해맞이 전망대나 작은 포구, 등대 등이 해맞이 명소로 속속 등판, 급부상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울진은 ‘망양정해맞이광장’ ‘등기산스카이워크’ 등이 널리 알려졌다. 각각 울진역이나 후포역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곳이다. 차로는 10분 거리다.
영덕의 ‘영덕해맞이공원’은 아담하지만, ‘해파랑길’과 영덕의 해안 도보 여행길인 ‘블루로드’ 코스로 이어져 있어 바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좋다. 영덕해맞이공원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블루로드가 고래불해수욕장의 고래불음악분수까지 이어진다. 영덕해맞이공원 부근 영덕풍력발전단지와 코스로 엮기 좋다. 푸른 바다와 대비를 이루는 하얀 풍력발전기를 가까이 두고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며 걸어볼 만하다.
영덕해맞이공원 부근 창포말등대 아래 남쪽으로 이어지는 소박한 어촌 마을의 풍경도 아름답다. 왕복 2차로를 따라 과메기를 손질해 말리는 풍경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겨울 찬바람에 꾸덕꾸덕하게 말라가는 청어를 매만지던 마을 주민은 “우리 마을은 청어를 옛날 방식 그대로 말리고 있다”며 “과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영덕 청어 과메기가 유명해 전국 택배도 한다”고 자랑했다.
완만한 곡선의 명사십리 고래불해수욕장을 형상화한 영덕역사 바로 옆으로도 블루로드 A 코스 중 하나인 ‘고불봉’ 코스가 이어진다. 문경우 영덕역 부역장은 “동해선 개통 후 기차 타고 블루로드로 접근하기가 수월해져서 블루로드나 해파랑길 도보 여행객들, 다가올 ‘영덕 대게 축제’에 참가하는 여행객도 많이 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울진 후포항엔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후포항의 한 상인은 “현재 울릉도와 독도로 가는 여객선이 동절기 휴항에 들어갔지만, 운항을 재개하고 동해선 열차 시간대만 잘 맞아떨어진다면 후포역을 통해서도 울릉도·독도 관광객이 오지 않겠나?” 하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삼척역 앞엔 번개시장 눈길
삼척시 측은 “관동팔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와 지난 7월에 개관한 ‘이사부독도기념관’이 삼척역과 비교적 가까워 많이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곳 모두 삼척역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뜻밖의 동해선 기대주로 떠오르는 곳은 삼척역 바로 앞 ‘번개시장’이다. 동해선 열차에서도 옹기종기 모인 지붕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삼척역사와는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번개시장은 새벽 시장이다. 대개 오전 5시쯤 장이 열리기 시작해 오전 10시쯤이면 파장한다. ‘번개처럼 문을 열었다가 닫는 시장’이라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이 구역 ‘친절한 금자씨’로 통하는 ‘번개수산상회’의 주인 박금자씨는 바짝 건조된 곰치를 들어 보이며 “이 시장에선 곰치, 열기, 가자미뿐 아니라 동해에서 나는 수산물 대부분을 판다”고 했다. 항과 가까우니 싱싱한 것은 물론이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노포가 밀집해 시골 장터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씨는 “시장이 허름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인심 좋고 물가도 싸서 동네 주민은 많이 찾는다”며 “현재 전통 시장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머지않아 이 시장 풍경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전했다.
◇동해안 비경 ‘지오트레일’도 열차 타고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포항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오도리 주상절리·이가리 닻 전망대, 영덕 강구항 대게 거리·죽도산 모래돌섬 길·관어대·고래불해수욕장, 울진 성류굴·왕피천 케이블카&망양정, 죽변해안스카이레일 등을 동해선 여행 기대주로 추천했다. 김선주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해양문화관광팀장은 “동해선 개통 후 동해선의 비경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모여 있는 지질 명소와 지오트레일(geotrail)에 도전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울진·영덕·포항·경주 등이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에 속해 있다. 내년 5월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 승인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 영덕해맞이공원이나 울진 성류굴, 포항 호미곶 해안단구 등이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 지질명소에 포함돼 있다.
◇동해선 예매는 24일부터
숨은 여행지 발굴의 재미를 100배 즐길 수 있는 동해선 여행도 결국 중요한 건 순발력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1월 1~5일 기차표는 이달 24일, 이후 기차표는 이달 27일 예약이 ‘레츠 코레일’ 홈페이지, 코레일의 모바일 승차권 예약 앱 ‘코레일톡’, 전국 역 창구를 통해 시작된다. 각 지자체는 동해선 개통 후 시티 투어, 관광 택시 등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나 이용객이 적은 역의 경우 당분간 목적지까지 택시 이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근덕·평해·기성·매화·죽변역 등 무인 역으로 운영되는 일부 역은 아직 이렇다 할 대중교통 연계 노선이 없거나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도 알고 가는 게 좋겠다.
동해선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동해남부선인 포항~경주 구간이 개통하면서 시작됐다. 2028년 개통 예정인 강릉~고성 제진 동해북부선(110.9km)까지 더해지면 100여 년 만에 부산부터 고성까지 고속철도 시대가 열린다. 이번 동해선 개통 후 한반도의 여행 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하시라. 아니, 재빨리 기차표부터 끊고 다녀와 볼 일이다.
[ 아침에 삼척서 곰칫국 한 그릇, 저녁에 영덕서 대게를? ]
동해선 타고 떠나는 별미 여행
1월 1일 개통하는 동해선 열차 시간표는 예매 시작일인 24일쯤 공개될 예정이지만, 강릉과 부산까지 당일 생활권이 된다면 이런 기대도 해본다. 동해안의 별미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하루. 아침에 삼척에서 곰칫국(물곰국) 한 그릇 하고, 점심엔 묵호에서 문어 탕수육, 저녁엔 영덕에서 대게 파티를. 당분간은 열차 운행 편이 많지 않기에 꿈같은 코스일 수도 있겠지만, 이용객이 늘어 열차 운행 횟수가 늘고, 1년 뒤 준고속열차인 ‘KTX-이음’까지 투입된다면 강릉 초당 순두부까지 하루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 개통하는 만큼 동해안의 겨울 별미를 즐겨보면 좋겠다. 시원하고 뜨끈뜨끈하기로 최고로 치는 국물 요리인 곰칫국, 물곰국(물곰탕)에 도전해볼 것. 곰치 또는 물곰 등 다양하게 불리는 호칭때문에 ‘논란의 생선’이기도 하다. 학술명은 미거지. 논란의 생선이라 해도, 물에 빠진 ‘비호감 생선’이라 해도 국물 맛만큼은 시원하다. 지역이나 식당 주인 취향에 따라 주로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빨갛게 김칫국처럼 끓이기도 하고, 맑은 탕처럼 끓여 내기도 한다. 배를 타는 어부들의 해장용으로 시작된 음식인 만큼 콩나물까지 들어가 아침에 먹기에 부담없다. 가격은 ‘시가’로 적힌 곳이 많은데 대개 1만8000~2만원 선이다. 울진 죽변항에 간다면 ‘죽변우성식당’에서, 영덕 관어대를 찾는다면 ‘백강’ 식당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후포역과 가까운 후포항 등기산 아래 자리 잡은 아담한 ‘동심식당’은 전복죽(1만4000원) 딱 하나만 파는 곳. 후포항 식당가에서도 안쪽에 있어 관광객들보다 현지인들이 더 즐겨 찾는다. 근처 ‘후포 어시장 회도매센터’도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겨울철엔 대게만큼이나 방어회와 성게알을 많이 먹는다.
전국에서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은 곳이 경북. 경북에서는 포항이 으뜸이다. 해녀가 운영하는 물회 집을 찾는다면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부근에 자리한 ‘해녀전복’을 찾아가 볼 일이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할매전복집’으로 불린다. 전복을 주재료로 한 물회(3만원)부터 전복죽(1만5000원)을 비롯해 성게알밥, 과메기(겨울)까지 동해의 겨울을 다양하게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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