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궁예

太兄 2023. 3. 17. 15:25

궁예

-고대사

2014-12-25 21:44:24


 왕건이 세운 고려의 기반을 마련해준 궁예. 하지만 통치자로서 궁예의 면모는 패자라는 이유로 그늘에 가려졌고 미치광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정치가로서 궁예의 모습, 그리고 후삼국 시대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궁예를 재평가 해야 할 것이다.  

1. 궁예가 살아있는 철원 땅

철원은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의 수도였다. 지금도 철원에서는 궁예를 이 지역을 다스린 왕으로 추앙하며 ‘태봉제’라는 축제를 연다. 궁예가 살았던 궁궐과 궁예도성 터는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궁예도성, 천년이 지난 지금도 궁예의 꿈은 그곳에 묻혀 있다.

2. 몰려드는 사람들
궁예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농민을 흡수해 독자적인 세력을 확보한다. 전쟁터에서 궁예는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뛰어난 지도력으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해서 강원도 일대를 점령해 나간다. 강원도는 현실개혁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이 퍼져있던 지역이었다.

3. 철원을 택한 이유
골이 깊고 산이 높은 강원도에서 가장 넓고 시원하게 트인 곳이 철원평야이다. 이 곳 철원을 궁예는 나라를 건설하는 중심지역으로 정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궁예의 눈으로 철원을 바라본다.

4. 송악으로 떠나다
궁예는 철원에 도읍을 정한지 1년 만에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송악으로 옮긴 후 궁예는 한강유역을 장악한다. 그리고 청주와 공주일대까지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면서 국호를 ‘고려’라 명하며 고구려 계통의 호족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는다.

5. 철원으로 돌아온 궁예
고려라고 정한지 3년 만에 궁예는 대 동방국을 뜻하는 ‘마진’으로 국호를 바꾼다.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다. 이곳에서 궁예는 자신의 꿈인 대 동방국을 이루려고 했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호족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다.

6. 궁예의 미륵신앙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바꾸면서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치수단이 필요했던 궁예는 미륵신앙을 이용했다. 미륵신앙은 미륵이 나타나서 현실을 개혁해 주고 모두가 잘 사는 이상사회로 만들어준다는 신앙이다. 이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궁예는 반 신라세력을 규합하고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권후반기가 되면서 궁예는 자신이 살아있는 미륵이라고 자칭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하는데...

7. 부인과 두 아들을 죽이다
삼국사기는 궁예가 부인 강씨의 부정한 행동을 신통력으로 알아보고 부인과 두 아들을 잔인하게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궁예의 포악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이 과연 사실이었을까.

8. 궁예의 마지막
궁예는 왕이 된지 18년 만에 종말을 고한다. 왕건의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철원에는 궁예 최후의 은거지로 알려진 명성산이 있다. 궁예의 마지막 모습이 전설로 내려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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