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은 반란이다 (5부 반란의 진압)
- 백인엽의 반격 -
<반란군 투항 권고 전단지>
山사람이여 보라.
이치없는 주장과 불가능한 목적아래 희망없이 단말마적인 농산(籠山)을 계속하고 있는 산 사람 여러분!
군들이 그와 같이 굶고 헐벗고 산야를 헤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족을 위함인가? 가족을 위함인가? 또는 자손을 위함인가? 민족을 위한다면 동족 상잔이 무슨 말이며, 가족을 위한다면 헐벗고 굶주리며 살고 있는 그대의 가족들은 어찌 된 일인가?
이가 자손을 위함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대들의 그릇된 사상과 행동으로 인한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 민국을 해(害)하며 민족을 상(傷)하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그러타면 그대들의 사상과 목적이란 근본부터 전복되는 것이 아닌가. 그대들이여 뉘우쳐라.
우리민족은 4천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 하며 서로 죽여야 하겠는가?
서로 서로가 우리 3천리 강토에서 새로 전 세계의 승인을 받은 당당한 대한민국을 받들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타민족 타국가에 지지않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이여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번은 과오가 있는 것이고, 잘못을 생각할 때 결연히 그 과오를 청산함에는 절대적인 용기가 필요하며 그는 우리도 잘안다.
군들이여 군들의 압길을 생각하여 보라.
날은 점점 추워질 것이며 식량, 탄약 역시 결핍하여질 것이고, 그 위에 정예한 우리 국군의 대대적인 토벌도 근일 중에 있을 것이라. 그러면 군들에게는 죽음이 있을 뿐인가? 아니다. 단 한가지 살길이 있다.그것은 즉 이번 대통령명령으로 또는 전투사령부에서 선명하신 1월말일까지 무기 지참자는 이유불문하고 즉시 석방함.
무기불지참자도 우(오른쪽)에 00하라는 관대하신 은전000. 산에 있는 그대들이여. 이것이 0000이니 돌연 과오를 청산하고 하루 속히 근방에 있는 지서나 대한청년단으로 귀순하라. 그러면 그대들의 가족의 안전은 물론 그대들도 무조건 석방할 것이다.
이를 믿지 못하는 자여. 대통령께서나 사령관께서 공적으로 천명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이유가 어데 있는가?
잘못을 뉘우쳐라. 결연한 결심을 가지고 이 관대한 은전을 굳게 믿고 하루 속히 나오라.
우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두손 들고 맞으리라.
(위와 같은 내용으로 국군은 반란군에게 투항 권고문을 전단지로 만들어 뿌렸다.)
-백인엽의 반격-
1948년 10월20일, 이성가 4연대장은 부연대장 박기병 소령에게 1개 대대를 지휘하여 순천 북방 10km 지점 학구에서 반란군이 구례, 남원으로 가는 것을 저지하라고 명령하였다. 박기병 부연대장은 정신없이 군장을 준비하고 1개 대대를 지휘하여 학구에 도착하였다. 그는 광주에서 학구까지 오는 도중 누가 좌익사상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킬지 몰라 불안하였는데 무사히 학구에 도착하여 다행으로 생각하였디.
그런데 4연대 장병들이 싸우려 하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육본에서도 급보를 받고 깜짝 놀라 참모총장 채병덕 준장, 작전참모부장 정일권 대령, 정보국장 백선엽 중령이 비행기로 광주에 도착하여 보고를 받고 14연대 반란군 진압사령부를 신설하여 사령관에 송호성 준장을 임명하고 참모장에 백선엽 중령, 작전참모에 김점곤을 임명하였다.
광주 4연대 1개 대대가 학구에 도착하였고, 군산의 12연대 2개 대대는 부연대장 백인엽 소령이, 전주 3연대 1개 대대는 부연대장 송석하 소령이 지휘하여 진압사령부에 배속되었고, 5연대 1개 대대, 15연대 1개 대대 합 5개 대대로 진압에 나섰다.
진압군 사령부는 12연대, 3연대, 4연대를 주력으로 학구에서 반란군 북상을 저지하고, 광양을 15연대, 보성과 벌교는 4연대 일부를 조공(助攻)으로 진압명령을 내렸다. 순천을 3개 방향에서 공격 진압할 계획이었다.
광주 4연대 1대대 2개 중대를 오덕준 중령이 인솔하여 보성을 점령한 반란군을 진압하러 군 트럭5대에 분승하여 보성 위 4킬로 지점에 도착하였을 때 반란군이 매복하고 있다가 집중공격을 하였다. 최훈섭 대대장이 장병들에게 하차하여 포위망을 뚫으라고 명령하여 겨우 포위망을 뚫었으나 보성 진압에는 실패하였다.
마산의 15연대는 어제 진주를 거쳐 하동에서 잠을 자고 아침 6시 최남근 연대장은 광양에 있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15연대 최남근 연대장은 좌익 장교로서 그는 김일성의 직계였다.
15연대는 3중대가 첨병중대가 되고, 2중대 1중대 순으로 행군을 하였다. 반란군들은 15연대가 진압 차 광양으로 오는 것을 알고 광양 동쪽 8킬로 지점 옥고면 산중턱에서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15연대가 사정권에 들어오자 집중사격을 하였다. 첨병중대장 손 중위(육사 5기)가 차에서 뛰어내려 부대를 지휘할 때 몸이 노출되어 반란군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다.
조시형 소위(육사 5기)가 2개 중대를 지휘하여 고지를 점령하라고 명령하고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장병들과 같이 뛰었다. 대대장 한진영 대위(육사 2기)도 같이 뛰었다. 고지를 향해 뛰어가는데 한 군인이 “국군이 어느 부대입니까?”하고 물어왔다. 한진영 대대장은 의심도 않고 “나 15연대 1대대장이다.”하자, 그 군인이 한 대대장에게 총질을 하여 한 대대장도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다. 그 군인은 반란군이었다.
이 광경을 본 3중대 장병들은 싸우려하지 않고 슬금슬금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반란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광경을 보고 15연대장은 전 병력을 후퇴시켰다.
그런데 3중대가 타고 온 트럭 세 대가 도로상에 그대로 있었다. 최남근 연대장은 조시영 소위와 같이 그 트럭 세 대를 끌어 오려고 차량 가까이 가서 보니 차량 주위에는 온통 반란군뿐이었다. 이것을 알고 조시영 소위가 연대장에게 눈치를 보내어 빨리 가자고 할 때 장병 한 명이 총구를 두 사람 가슴에 겨누었다. 결국 최남근 연대장과 조시영 소위는 포로가 되어 화엄사와 피아골 사이의 문수골로 끌려갔다.
▲ 반란군 시체
4연대 박기병 부연대장은 아침 일찍 순천을 향해 공격하던 중 학구 근방에서 반란군의 저항을 받고 진격하지 못하고 고지를 점령하고 대치 상태였다. 특히 4연대 장병들은 남로당 세포원들의 선동으로 “14연대 장병들은 우리와 함께 지내던 전우였는데, 어떻게 총질을 하느냐?”
며 싸우려 하지 않았으니, 박기령 소령은 고민이었다.
그런데 반란군 편에서 먼저 공격해오자 4연대 장병들도 공격하여 치열한 전투 중 1개 중대를 포로로 잡았다. 반란군이 치열하게 공격해 오자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때 12연대 2개 대대를 이끌고 부연대장인 백인엽 소령이 도착하였다. 백인엽 소령은 부대를 출발하면서 “반란군 빨갱이와 싸우기 싫은 사람은 안 가도 된다. 싸울 사람만 나서라”라고 독려하였다. 이에 장병들은 모두 싸우겠다고 따라왔다.
백인엽 소령은 현장에 도착하여 이성가 4연대장으로부터 현재의 상황을 설명을 듣고 즉시 12연대 2대대장 김희준 대위에게 반란군 후방을, 3대대장 이우성 대위에게는 정면에서 공격하도록 명령하고 백인엽 소령 본인은 3대대를 지휘하였다.
4연대와 12연대 장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자, 반란군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들었다. 그리하여 반란군 일부는 순천으로 도망치는 척하면서 광양으로 도망치고, 어쩔 수 없이 반란군에 가담하게 된 장병들은 이때 틈을 타 손을 들고 항복하여 1시간 만에 반란군을 격퇴하였다.
백인엽 부연대장은 여세를 몰아 순천을 점령하기 위해 오후 4시에 순천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순천 시내로 진격하려면 300고지가 여러 개 있는데 반란군이 이 고지에서 저지하면 공격이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먼저 수색대에게 고지에 반란군이 있는지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반란군이 전혀 없다는 보고를 받은 백인엽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김지회가 얼마나 부족한 인물이었는지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압군의 여수 1차 탈환작전이 실패할 때, 지창수가 썼던 작전이 바로 홍순석의 견해였기 때문이다.
백인엽 소령이 순천 시내로 들어가자 고지에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사이에서 반란군이 공격해왔다. 그러나 12연대가 공격하자 반란군은 힘없이 무너지고 도망쳤다.
송석하 3연대는 순천 서쪽을 공격해 들어갔다. 김지회 반란군 사령관은 12연대와 3연대는 순천을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부대 내의 세포원 공작들에 의해 장병들이 반란군과 합세하였을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연대 2대대 5중대장 김응록 대위는 김희준 대대장을 죽이고 5중대를 반란군 중대로 만들어 12연대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결국 김희준 대대장을 공격하였으나, 김희준 대대장은 기적적으로 살고 보좌관들만 부상을 입었다. 김희준 대대장은 즉시 김응록 5중대장을 체포하여 헌병대로 넘겼다. 김응록은 남로당원으로 12연대를 반란군으로 만들려다가 부대 내의 좌익 세포가 약하고, 시간이 없어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체포된 것이었다.
이어 김희준 대대장은 김응록 후임으로 김한수 중위를 5중대장에 임명하고 81밀리 박격포 2문을 주어 반란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리고 중대 안에 남로당 세포가 있어 또 반란을 일으키려 할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김한수 중위는 명령대로 박격포 2문으로 순천중학교에 있는 반란군 본부를 계속 공격하였다. 반란군 본부는 박격포 2문으로 쑥밭이 되고 있었다.
이 틈을 타 김희준 대대장이 12연대를 동원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반란군은 예상을 뒤엎고 신속하게 12연대가 공격해오자 순천교 근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백선엽 참모장은 연락기를 타고 반란군의 움직임을 동생 백인엽 부연대장에게 알려주어 백인엽은 형님의 지시대로 공격해 들어갔다. 12연대는 순천교를 향해 반란군을 추격하였다. 반란군은 동천강을 배수진으로 하여 12연대를 기다리고 있다가 12연대 선발부대가 동천강 쪽으로 접근하자 공격을 하였다.
12연대 2대대 8중대 송호림 중대장은 선봉에서 반란군을 공격하여 농업학교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9중대가 다른 부대와 전선을 유지하면서 공격해야 하는데 9중대만 돌출되어 반란군에 포위되었다. 송 중대장은 ‘아차’ 하는 순간에 포위되자 50명으로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끌고 반란군 1개 소대를 역포위하여 포위망을 뚫었다. 그러나 반란군 1개 중대에 의해 또다시 포위되어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었다.
이때 송호림 중대장이 “싸우지 말고 협상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진압군이 반란군에 합류하겠다는 뜻으로 알았다. 반란군 대표가 나와 “속히 합류하라”고 하자, 송호림은 때를 놓치지 않고 중대 돌격 명령을 내렸다. 반란군은 진압군이 합류할 줄 알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압군 중대장이 갑자기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중대장이 먼저 반란군을 향해 뛰어드니 반란군은 이 반전(反轉)에 허둥거리고만 있었다.
송호림 중대장은 반란군을 향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반란군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투철한 군인정신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당시 이 뜻밖의 상황에 반란군도 얼떨떨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송 중대장은 이들을 향해 “차렷!”하고 구령을 붙였다. 그러자 고함치는 반란군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송호림은 용기를 내어 큰소리로,
“너희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총을 버려라!”
하고 명령을 하였고, 1개 중대 187명이 총을 버리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송 중대장의 뒤를 따라온 장병들은 10 명밖에 안 되어 이들을 다 인솔해 간다는 것이 큰일이었다. 송 중대장은 10명에게 먼저 땅에 내려놓은 총을 회수하게 하고, 10명씩 앉게 한 다음 대대장에게 보고하니 지원군이 와서 187명을 인솔해 갔다. 이 187명은 조사 결과, 좌익들에 의해 할 수 없이 반란군에 가담한 사람들로 판명되었다.
반란군은 대패하여 일부는 광양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반란군은 순천교에 집결하여 결사 항전할 태세였다. 진압군은 한때 보성과 광양에서 패하여 사기가 저하되었으나, 순천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대전의 2연대 1개 대대와 강필원 대위가 이끄는 장갑차 부대 장갑차 20대가 증원 차 도착하여 진압군은 사기충천하였다.
반란군 김지회는 순천에서 계속 항전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만일 진압군이 광양을 막아버리면, 반란군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반란군이 광양에서 승리하자, 김지회는 밤 10시를 기해 순천을 빠져 광양과 백운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서둘러 무기와 식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0월 21일 밤 진압군 사령관 송호성, 참모장 백선엽, 그리고 연대장들이 모였다. 먼저 백선엽 참모장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백선엽:
보성과 광양에서는 진압군이 패하였으나 순천은 승리해서 다행입니다. 반란군 2개 대대는 순천교에 집결해 있고, 보성과 광양과 여수에 1개 대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송호성:
순천과 여수를 빨리 탈환하여야 전국의 남로당원들이 극성을 부리지 않지 탈환이 늦어지면 제주도 같은데서 남로당원들이 더 극성을 부려 안 되는 순천을 탈환 즉시 여수를 공격해야 합니다.
백선엽:
즉시 광양과 백운산과 지리산 입구를 봉쇄하여 반란군을 진압해야지, 만일 반란군이 광양, 백운산, 지리산으로 빠져나가면 진압이 장기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내가 혼란할 것이며, 제주도에서는 남로당원들이 더욱더 극성을 부려 안 됩니다.
이 회의에서 송호성 사령관이 자기주장을 고집하여, 결국 다음 날 순천과 여수를 탈환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어, 결국 김지회 반란군은 광양을 거쳐 백운산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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