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공계로, 한국은 의대로, 미래 있겠나
정부·여당이 이공계 활성화를 위해 내년부터 이공계 석사 1000명에게 매년 연 5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 AI(인공지능)위원회’는 오는 2030년까지 AI 유니콘 기업 10개를 육성하고 AI 인재 20만명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법무부는 AI·로봇·우주항공 등의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톱티어(Top-Tier)’ 비자를 신설하기로 했다.
한 나라의 미래는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로 성장해온 우리는 ‘기술 세계대전’의 시대를 맞아 지금 이공계 두뇌 유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10년간 34만명의 이공계 인력이 한국을 떠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한 두뇌 유출 지수에서 한국은 2021년 24위에서 지난해 36위로 더 내려갔다.
최상위권 학생이 이공계 대신 의대로 쏠리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의대 증원이 확정된 지난 5월 이후 서울대 휴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1학년 휴학생 수는 813명으로, 작년(418명)의 2배, 2020년(247명)보다 3배로 늘었다. 농생명과학대는 1학년 정원의 47%가 휴학 중이고, 수의과대 40%, 공과대 27%, 자연과학대 26%, 약학대 19%, 첨단융합학부 17%가 휴학계를 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이 전공을 포기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과학기술의 미래가 있겠나.
그러는 사이 경쟁국들은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대만의 파운드리 반도체 종사자는 14만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명 넘게 늘었다. 대만 정부가 법까지 만들어 반도체 인력 확보를 전폭 지원한 덕분이다.
중국은 내년 중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박사 인력만 8만명을 배출할 예정이다. 미국의 2배가 넘는다. 전 세계 고급 AI 연구원의 47%가 중국 출신이란 통계도 나왔다. 올해 중국 청년들의 인기 학과 톱10은 전기공학·자동화학과, 전자정보학과, 기계설계제조학과, 컴퓨터공학과 순이라고 한다. 세계 우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영향력을 점수화한 ‘네이처 인덱스’에서 올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 우연은 아니다.
아무리 반도체·AI 등 전략 산업 육성을 외쳐도 과학기술 인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헛구호에 불과하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뿌리는 것보다 이공계 고급 인재에게 장학금을 주고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 훨씬 값어치 있는 투자다.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리고 이들이 국내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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