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兄思想

삼황오제는 동이족이다

太兄 2023. 5. 1. 19:31

삼황오제는 동이족이다

2018-07-26 00:00:42


삼황오제는 동이족이다. 동이족은 한민족이다.

치우천자는 지금으로부터 4,700여 년 전 실존했던 우리 선조님들의 나라 구리국(九黎國:‘려黎’자는 나라 이름으로 발음할 때는 ‘리’로 발음한다)의 통치자로써 사마천(司馬遷 : BC 145~BC 86)의《사기(史記)》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과 우리 민족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참역사를 담은《한단고기(桓檀古記)》,《규원사화(揆園史話)》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민족의 계보부터 파악해야 한다.

 

출처: www.coo2.net(우리 역사의 비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한국(桓國)은 약 9,200년 전인 BC. 7,197년부터 3,000년 간 지속됐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 측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고 우리 사서에만 기록되어 있다.《삼국유사》고조선조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남아 있다. ‘석유한국(昔有桓國)’이라는 문구가 그것인데 뜻을 풀이하자면 ‘옛날 옛적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극우파 사학자인 ‘이마니시 류’는 ‘석유한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한 ‘경도제대 영인본’을 세상에 퍼뜨렸다. 비록 양자는 한 글자 차이지만 그것이 가진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한국(桓國)이란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과 ‘한인(桓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9,200년 전 우리 민족이 세운 ’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다’는 건 우리 한민족이 세계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는 얘기가 된다.

 

근대 이후 패권을 움켜쥔 서양인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기록해놓았다. 그것이 발생한 건 고작해봐야 지금으로부터 6,000여년 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로부터 3,000여 년 전에 이미 우리는 국가를 건설했다면 서양인들이 기록한 세계사는 처음부터 다시 쓰여져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석유한국(昔有桓國)’이라는 이 짧은 문구는 세계사에 있어서 핵폭탄의 뇌관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는 한국을 한인으로 변조해 놓았던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조선 중종 때 간행한 임신본(壬申本, 명나라 황제의 연호인 정덕正德을 따 정덕본이라고도 함)에는 환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경성제국대 영인본에는 '환인'이라 날조되어 있다.

 

한국(桓國)에 이어 BC 3,898년 들어선 구리국(九黎國)은 약 1,565년간 18명의 한웅에 의해 통치되었다. 치우천왕은 14대 한웅으로 109년간 재위했다. 

 

출처: www.coo2.net(우리 역사의 비밀)

 

같은 시기에 중국―물론 당시에는 중국(中國)이란 나라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았다.―을 통치하고 있던 인물은 현 중국인들이 시조로 떠받드는 삼황오제 중 하나인 황제헌원이었다. 그들의 사서에는 자신들이 동아시아를 지배했고 치우천왕의 구리는 변방의 많은 오랑캐 무리 중 하나인 것처럼 기록해 놓았지만 우리 측 사서에는 정반대로 기록되어져 있다.

 

치우천왕이 동아시아의 절대 권력자였으며 헌원은 구리국의 제후인 ‘소전’의 아들이라 밝히고 있다. 즉 헌원은 치우천왕의 일개 신하의 아들에 불과했다. 그런 헌원이 감히 반기를 들자 치우천왕은 처절하게 그를 응징했다. 중국의 25사서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흔적이 남아 있다. 전한(前漢)의 역사가였던 사마천이 기록한《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황제헌원씨(軒轅)는 제후(諸侯)인 소전(少典)의 아들이다."

 

"구리(九黎)에 천자 치우(天子 蚩尤)가 있었다."

 

‘하늘(天)’이라는 말은 ‘신(神)’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최고의 존귀함을 가리키는 찬사이다. 사마천 이전에는 치우천왕을 변방의 오랑캐가 아닌 화하족(華夏族)의 숭배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공자조차도 동이(東夷)를 군자국, 대인국이라 추앙하며 그곳에서 살기를 염원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같은 책「봉선서」엔 위의 사실을 대변해 주는 기록이 남아있다. 유방이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치우천왕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으며 한나라를 건국한 뒤에는 치우 사당까지 세웠다고 하는 기록이다.

 

“축관에게 명하여 장안에 치우사(蚩尤祠)를 세우도록 하고 사관(祠官), 축관(祝官), 여무(女巫)를 두었다.“

 

한(漢)의 국왕인 유방이 출전하기 전에 치우천왕에게 제를 올렸다는 것은 그가 치우천왕을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숭배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치우천왕이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으며 헌원과의 전쟁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두었다는 우리의 사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사실은 고대 중국과 해외의 지리서인《산해경(山海經)―사마천의〈사기〉에도 등장한다. 유향(劉向)의 아들 유흠(劉歆)이 기존에 전해져 오던 내용에 덧붙여 편찬했으며 진대(晉代)의 곽박(郭璞)이 최초로 주석을 달았다. 이 책의 제작시기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에도 담겨져 있다.

 

“치우가 병을 동원하여 황제를 정벌했다.”

 

유방에 대한 기록은 그가 혈통적으로도 치우천왕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적이 아무리 전쟁에 능하다고 하더라도 내 아버지의 원수에게 제사를 올리는 아둔한 자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즉 화하족이 동이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 또한 우리 사서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며 중국 사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중국인들이 시조로 삼고 있는 삼황(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오제(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요임금〕, 제순유우〔순임금〕. 오제는 모두 헌원의 직계자손이다.)는 물론 그 유명한 공자도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사서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다―동이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의 선조라는 사실과 함께…….

 

“태호복희왕은 진국의 출신이다.(帝出於震)”[『태평어람』卷78「제왕세기」태호복희씨조]

 

『태평어람(太平御覽)』―송나라 때 이방(李昉)이 편찬한 책으로 중국 백과사서 중 백미로 평가된다. 여기서 ‘진(震)’국은『주역』설괘(說卦)에 “만물이 출호진(出乎震)하니, 진(震)은 동방야(東方也)”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 동쪽지역을 뜻하며, ‘동방’이라는 말은『후한서』「동이열전」서문에 “동방왈이(東方曰夷)”라 하였으므로, 결국 태호복희가 우리 동이족임을 뜻하는 것이다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도 “태호복희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공인되어 온 일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굴원(屈原 : 춘추전국시대의 문인)이 집필한《초사(楚辭)》에도 “황제(黃帝)는 백민(白民) 에서 태어났다.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적혀 있다. 사마천이 집필한《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순임금(舜)은 동이인(東夷人)이다.”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昌意)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

 

“황제(黃帝)로부터 순(舜)·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공자 7대손 공빈(孔斌)이 집필한《동이열전(東夷列傳)》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남아 있다.

 

 

 

“순(舜)임금은 동이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와서 임금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하였다.”

 

 

 

《고사변(古史辯)》은 일곱 권으로 된 방대한 문헌으로 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서도 같은 맥락의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 제준, 제곡, 제순, 소호,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설은 은나라를 세운 ‘성탕(成湯)’의 선조이다. 은나라 왕족은 설의 후손, 즉 은나라 왕족은 동이족이란 것이다. 삼황오제 시대가 끝나고 우(禹)가 세운 하(夏)나라가 멸망한 뒤 들어선 나라가 은(殷)이다. 일명 상(商)나라라고도 하는데 저 유명한 갑골문(甲骨文)의 주인공이기도 하다.《고사변》은 고대 중국의 문헌과 근래에 발굴된 유물 등에 근거하여 은나라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호금천은 황제헌원의 직계후손이다. 고로 환제헌원 역시 마찬가지로 동이족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굳이 우리의 민족사서가 아닌, 중국 측 사서 기록만으로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태호복희와 황제헌원, 순임금이 동이(東夷)인이고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 등도 모두 황제헌원씨의 자손이니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대 임금이라 받드는 삼황오제가 모두 동이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의 양심적인 학자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다. 중국의 역사학자 왕동령(王桐齡)이 펴낸「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4천 년 전 중국대륙에 묘족(苗族 : 구리〔九黎〕국 백성. 즉 동이족)이 행세했는데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묘족과 접촉 투쟁했으니 묘족의 일원이 구려(九麗)족이며 그 군주가 치우(蚩尤)이다"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 역시《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역이다.”

 

이와 같은 기록들로 고대의 대륙은 우리 민족인 구리국(九黎國)의 땅이었으며 중국은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시조라 떠받드는 황제헌원은 동이족으로써 구리국의 통치자인 치우천자의 제후의 아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그가 감히 치우천자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엔 처참하게 도륙당하고 만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위조해 놓았지만 진실은 이미 낱낱이 밝혀져 있다. 다만 반쪽발이 민족의 노예로 전락해 있는 얼빠진 한민족만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을 뿐이다.

 

《양서(梁書)》를 비롯한 여러 사서가 "동이국왈조선(東夷國曰朝鮮)"이라고 하여 동이(東夷)는 바로 우리 민족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