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은 '독이 든 성배'… 역대 정부 26년간 보험료율 안 올렸다
왜 지금 개혁해야 하나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당시 보험료율(소득 대비 내는 돈)은 3%, 소득 대체율(받는 돈)은 70%였다. 애당초 매달 소득의 3%를 넣으면 퇴직 전 3년 평균 월급의 70%를 주겠다는 비현실적 설계였다. 정부가 반발을 무릅쓰고 내는 돈은 올리고, 받는 돈은 줄이는 ‘인기 없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런 이유로 역대 정부는 ‘독이 든 성배’인 국민연금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지금까지 총 2~3차례만 보험료와 수급액을 조정했을 뿐이다.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6년 동안 9%에 머무르고 있다. 소득대체율도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0%(2028년 기준)로 조정한 이후에는 조정 없이 방치돼 왔다. 사실상 17년 만에 정부 의지가 실린 국민연금 개혁안이 나온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직전 정부에서 연금 개혁이 있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권은 “공무원연금 개혁이 우선”이라며 국민연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2018년 11월 복지부가 보험료를 더 내는 내용의 개혁안을 보고하자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반려했다.
전문가들은 “그 사이 국민연금은 부실해졌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 세대는 돈만 내고 연금은 한 푼도 못 받을 것’이란 불신이 퍼졌다”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지속성을 위해) 보험료율을 시급히 올려야 한다”며 “국회에서 특위를 꾸려 바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해결할 카드가 없어진다”고 했다.
정부에 따르면,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면 2056년엔 기금이 고갈된다. 작년 말 기준 1036조원의 국민연금 적립금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이때부턴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 전환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4일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2%로 하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16년(2072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고갈 후에는 적립금을 굴려 기금 수익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커진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받을 사람만 급증하기 때문에 연금 부족분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연금 소진(2056년) 이후 연금 급여 부족액은 매년 평균 31조8000억원씩 쌓여 2093년에 총 2231조원(미래 화폐 가치 하락 반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국민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현재 매일 885억원의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부담의 대부분은 미래 세대가 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연금 개혁 없이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2078년에는 전체 소득의 35%를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2%)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다면 예산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어떤 방법을 쓰든 부담은 미래 세대의 몫이다. 청년층은 노년층보다 연금은 적게 받고, 부담은 훨씬 많이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감안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50대는 향후 4년간 보험료율을 매년 1%포인트씩 올리고, 20대는 16년에 걸쳐 매년 0.25%포인트씩 천천히 올려 청년층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소득에 근거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사회보험의 대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보험료율 인상이 시급한데, 이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을 감안한 윤활유 같은 대책”(이상은 숭실대 교수)이라는 의견이 많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0~59세 국민연금 가입자 281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서 세대별로 보험료 인상 속도를 다르게 하는 방안에 40대(60.4%)와 50대(64.2%)를 비롯해 전체의 65.8%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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