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카 주역부터 체코 선발대까지...8년 '맨땅 헤딩'
체코 원전 수주 숨은 주역 5인방
2009년 5월 당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영업팀 김종우 차장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지하 2층으로 출근했다. 이곳에 꾸려진 비상작전상황실(워룸·War room)에서 그는 한국 최초의 해외 원전 수출 도전이었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입찰 제안서를 썼다. ‘원자로 등 주(主)기기 계약 협상 담당’을 맡아 한전 컨소시엄 직원 80여 명과 야전침대를 두고 휴일도 없이 일했다. 이후 원자력영업 업무만 해온 그는 작년에서야 ‘늦깎이 상무’로 승진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이 어려워져 회사에서도 원자력사업 비중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종우(54) 상무는 올해 첫 유럽 원전 수출 역사를 쓴 ‘체코 원전’ 사업에도 2009년 워룸 동료와 함께 중추 역할을 맡았다. 김 상무는 “체코가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짓기만 한다면 무조건 한국을 택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한국 원전 생태계가 탈원전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세계 시장에서 기회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버린 적은 없었다”고 했다.
◇바라카 원전 수주 후 탈원전 견딘 숨은 주역들
원전 강국 프랑스를 꺾은 ‘체코 원전’ 수출 신화의 숨은 주역은 지난 15년여간 역경을 견뎠다. 탈원전 정책 아래에서도 원전 기술을 사수하기 위해 읍소했던 직원, 2014년 핀란드 원전 수주 무산의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선발대로 체코로 발령 났던 직원 등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2018년 9월 체코 원전 입찰 전담조직 ‘팀코리아’를 꾸려 수주 경쟁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팀코리아’의 현장책임자 역할을 맡은 장현승(49) 한수원 체코·폴란드사업실장은 2017년 10월 15일 열린 ‘신고리5·6호기 공론조사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에서 마지막 발표자로 단상에 올랐다. 신고리5·6호기(현 새울3·4호기) 건설 중단 또는 재개, 운명이 걸린 자리였다. 그는 “지금 때마침 체코 원전 특사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우리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면 영국·체코와 같은 국가들이 관심을 가지겠느냐”고 호소했다. 결국 공론화위에서 원전은 살아남게 됐고, 이후 체코 원전 수출에 도전할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가 살아남게 된 것이다. 2016년 만난 체코 현지 원전업계 부장 직원이 이번 체코 원전 발주처의 사장이 됐다. 장 실장은 “‘담당자 얼굴이 바뀌면 안 된다’는 원칙으로 8년간 일하며 버텼는데, 그게 다 자산이 됐다”고 했다.
한수원 체코·폴란드사업실 서준교(56) 부장도 ‘체코 선발대’였다. 그는 한수원의 핀란드 올킬루오토 4호기 입찰 때 3년간 핀란드 주재원으로 일했다. 한수원 유력 전망이 나왔는데 2014년 핀란드가 사업을 접었다. 실무를 담당했던 그는 허탈함이 더 컸다고 한다.
이후 2016년 체코로 발령이 났다. 체코 원전은 2018년부터 입찰 경쟁이 시작했는데, 2년 일찍 현지에서 ‘한수원’을 알리는 특명을 받았다. 사무실이 없어 코트라(KOTRA) 사무소 공간 일부를 빌렸다. 러시아, 프랑스 원전에 우호적인 현지 관계자들을 수도 없이 만나 한국 원전을 세일즈 했다. 서 부장은 “차가웠던 현지 관계자들이 중립에서 한국 지지로 돌아설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설계·영업·시공 한뜻 “K원전 확신”
원전 설계를 맡은 한전기술 강상호(55) 처장은 체코 원전에 들어갈 APR1000의 노형 설계 개발부터 인증 취득, 우선협상자 선정까지 8년간 기술업무 책임자로 일했다. 강 처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글로벌 안전 요건이 훨씬 강화돼 APR1000 개발이 더 어려워졌고, 체코의 기준도 깐깐해졌다”며 “최고 품질을 입증할 수 있는 기술 입찰서를 4만쪽 넘게 작성하고, 발주사에 1000건 넘는 질의응답 및 대면설명을 통해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시공을 맡은 대우건설의 김봉하(54) 해외원전팀장은 1996년 입사 후 국내외 원자력 프로젝트 입찰을 담당했다. 그는 “일반 건설 사업은 입찰 과정 3개월, 시공 2년 6개월, 총 3년이면 마무리되지만 원전은 입찰만 6년이 걸렸다”며 “원전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내·외부를 설득하는 일도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사기업에서 6년은 커리어(경력)를 걸어야 하는 시간”이라며 “원전 수주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경력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K원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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