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원, 美日보다 적은 진짜 이유
1일부터 정부가 18조원 규모 반도체 금융지원 정책을 시작했다. 국고채 금리 수준으로 반도체 기업들에 대출해준다는 내용이다. 이를 포함해 정부는 26조원 규모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추진 중인데, 업계에서는 위기에 빠진 반도체 산업에 훈풍으로 이어지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 정부는 수십조원의 보조금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현지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 53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기로 해 인텔이 11조6000억원을 확보했다. 일본은 소니, 도요타 등 자국 기업들이 출자해 만든 반도체 드림팀 ‘라피더스’에 보조금 8조원을 투입했다. 유럽연합(EU)도 64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정작 반도체 산업이 주력인 한국 지원책에는 보조금이 없다.
현재 국내 기업은 공장을 지을 때 필요한 전력 송전망 등 인프라 구축 비용마저 부담해야 한다. 미국 등 주요국은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 그나마 이번 정책에는 첨단산업 특화단지의 용수·전력·도로 등 기반시설에 소요되는 비용 중 15~30%가량을 국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하면서 벌어진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내놓은 정책치고는 부실한 느낌이다.
우선 반기업정서 때문이라고 본다. 반도체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두 기업 모두 국내에서 가장 돈 잘 벌고 우량한 곳이다. 반기업정서를 넘어서려면 두 기업이 망하기 직전까지 가 ‘연민의 대상’이 돼야 하는데, 그때는 반도체 패권을 미국이나 일본, 대만, 혹은 중국에 넘겨준 뒤일 것이다. 반기업정서 해소는 국민들도 조금 양보하고, 삼성과 SK는 더 노력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나랏돈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나라 살림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로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관리재정수지란 지표를 고안해 따로 발표한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수치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사회보장성기금이 재정건전성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국민연금기금이 흑자를 내고 있어 통합재정수지 적자폭이 관리재정수지보다 더 작아 보여도 적자로 돌아서면 반대로 통합재정수지 적자폭이 급격히 불어난다. 이미 국고보전이 이뤄지고 있는 공무원연금은 10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고 있는데, 20년 뒤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에서 발생할 적자는 100조원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통합재정수지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흑자 규모가 가장 컸던 해도 37조원(2007년)에 불과했다. 연금 개혁 없이는 앞으로도 핵심 산업 부양을 위해 국가가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은 이번처럼 겉돌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