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권으로 비행기 타고 들어와"…北외교관 가족의 전무후무 탈북경로
도강과 위조여권 등을 이용해 수개월에 걸쳐 탈북에 성공하는 일반적인 탈북 경로와 달리, 20여년 전 유럽에서 북한 여권을 가지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해 탈북한 북한 외교관 가족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25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무후무한 경로로 탈북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일 한 탈북민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영상 내용이 공유되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2000년 체코에서 북한-체코 신발 기술 합작 회사 사장으로 일하다 200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씨가 출연한다. 김씨는 북한 경공업성 관료 출신으로, 동유럽과 동남아 등 여러 국가를 방문하며 대사관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영상에 따르면 김씨는 체코에 머물던 2002년 6월 한국행을 결심했다. 주체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북한의 명절인 9월9일이 됐다. 김씨는 그날따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남조선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라”고 했다.
그사이 김씨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명절맞이 ‘충성의 선서식’을 진행했고, 회사 내 보위원과 통역관들을 ‘다른 공장에 가서 선서식을 진행하라’며 내보냈다.
김씨 아내는 체코에서 독일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가는 루프트한자 항공편을 예약했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사진첩만 가지고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했고, 가족들을 데리고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직원에게 북한 공무여권을 보여줬다는 김씨는 “(직원은) 유럽 사람이니까 조선 사람이 조선에 간다고 하니까 의심하지 않고 표를 줬다”고 했다.
남은 건 출입국 심사였다. 김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권은 한국 여권하고는 다르지 않나”며 “비자란 뒤져보고 ‘노비자’하면 이제 죽는 거 아니냐. 체코가 북한하고 가까운데 전화 한통이면 다지 않나. 보위원이 달려오면 죽는 것”이라고 당시 느낀 심경을 떠올렸다.
김씨는 가족들의 여권을 모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다행히 아무말 없이 도장을 찍고는, 아내 품에 안겨 있던 김씨의 네살배기 자녀에게 “굿바이”라며 인사를 했다. 김씨는 “그 3초가 300년 같았다”고 했다.
무사히 독일에 도착해 한국행 비행기로 갈아탄 김씨는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비행기 좌석에 탄 사람들이 모두 북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벌써 날 잡으러 왔나하고 한참 굳어서 보니까 우리한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 가슴을 보니까 (김일성일가) 초상 배지도 없더라. 여행 왔다가 돌아가는 한국 사람이었다”고 했다.
김씨 아내는 장거리 비행 내내 연신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결심을 하고 떠나는 거였지만 50년을 산 고향을 떠나는 게 잘하는 일인가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김씨는 40분 동안 공항 곳곳을 둘러보며 깨끗하고 현대적인 시설과 한국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김씨는 차마 북한여권으로 입국심사를 하지 못하고 공항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가족들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 이가 없자 결국 김씨는 지나가던 직원에게 “평양에서 왔다”며 여권을 보여줬다. 김씨는 “(직원이) 범 본 놈처럼 뛰더라”고 떠올렸다.
공항 직원들은 김씨 가족을 빈 방으로 데려가 A4 용지를 건네며 ‘한국에 온 이유’를 적으라고 했고, 이후 국정원 직원들이 도착해 김씨 가족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들이 자꾸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하더라. 체코에서 독일 들어갔다가 여기까지 오는 거를 자기들 모르게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김씨 가족은 국정원 직원들이 마련한 장소에서 보름간 머물며 간첩 취조 등을 받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이 체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건 내용을 국정원 직원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조사가 끝날 무렵 김씨는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가 체코를 떠난 바로 다음날인 9월10일 김씨 자리를 대신할 신임 사장과 김씨 가족을 데리고 북한으로 돌아갈 관계자가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소리를 듣는데 아찔하더라”며 “하루 늦게 떠나려고 했으면 (공항서) 잡혀서 못 들어오는 거였다”고 했다.
김씨는 “아내는 (한국에 입국한) 순간까지 ‘아버지랑 오빠들 다 죽게 생겼다. 평양에 있는 자식들은 어떻게 하냐’고 툴툴거렸지만 (국정원 직원) 이야기를 듣더니 ‘이젠 영감 말 잘 들을게’하더라. 내가 신이 됐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2002년이면 엄청 옛날도 아닌데 운이 정말 좋았던 거 같다” “번듯한 옷에 가족들까지 데리고 있으니까 당연히 귀국이라 생각했나보다” “공무여권 가지고 탈북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겠지” “탈북 성공률 말도 안되게 낮던데 천운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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