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이슬람교
종교
2017-11-13 00:16:01
무함마드(Muhammad)-이스람교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라고도 한다. 6세에 고아가 되어 친적의 손에 자랐다. 틈틈이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610년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말씀을 계시 받았다. 613년부터 전교에 들어가 이슬람교를 세웠다. 그는 유일신을 정성을 다해 믿고 섬기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내려온 기독교의 예언자들을 따른다고 천명했다. 630년부터 군사적 원정을 통해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슬람 제국을 설립했다.
마호메트(Mahomet)의 아랍어 이름. 무함마드는 메카에 사는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家)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아브드 알라는 그가 출생하기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고아 무함마드는 조부 아브드 알 무탈리브, 숙부 아부 탈리브에게 양육되었다.
무함마드는 1년 중 일정 기간 동안 메카 교외 산중에 틀어박혀 명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있었다. 610년경 어느 날 밤 히라 산에서 무함마드는 영적 체험을 했다.
대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신의 말씀이 계시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도망치려고 했다. 이윽고 계시가 끝나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공허감이 그를 엄습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전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확신하고 613년경부터 전도를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유일신의 전능을 열렬하게 그리고 되풀이하여 선언하는 것이었다. 유일신은 우주의 창조자이며 부활의 날에 그 피조물의 모든 것을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의의 신은 동시에 자비의 신이기도 했다. 신은 지상을 자신의 영광과 은혜의 징표로 채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관해, 신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진다. 모든 사람은 신앙·예배·희사로 신의 자애와 가호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이것을 새로운 교리로서 제창한 것은 아니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가르침이 예언자의 전통적 흐름을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아브라함·모세·예수 등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예언자들이 같은 사명을 띠고 인류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려고 했다.
630~631년 아라비아 반도 각처에 사는 여러 부족의 사절이 메디나의 무함마드를 방문했지만, 동시에 군사 원정도 행해져서 이슬람 국가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때 무함마드의 권위는 견고하게 확립되어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은 점차 진척되었다.
'이별의 순례'라고 일컫는 632년의 순례에서 무함마드는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병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함마드 자신에게나 그의 제자들에게 이별의 순례는 예언자의 생애를 정리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최후의 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후에도 분열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또한 신은 유일하며 신자는 형제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으며, 여성의 권리에 유의할 것을 신도들에게 명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돌아와 632년 6월 8일 죽었다.
전승에 따르면 새로 선출된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는 비탄에 빠진 신자들에게 "만일 그대들이 무함마드를 숭배하고 있다면 분명히 무함마드는 죽었다. 그러나 만일 신을 숭배하고 있다면 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다.
쿠란에서의 무함마드[원본 편집]
그의 사상은 이슬람, 중동 역사서적과 함께 <꾸란>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말한 알라의 계시를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6신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리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 의하여 터득하려는 것이다.
이슬람은 계율이 엄하고, 쿠란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어, 남편은 아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때릴 권리가 있고, 명예살인이라는 제도도 존재한다. 쿠란에서 비 무슬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지하드로 없애야 할 적으로 묘사된다.
종파의 확고한 구분은 있으나 교리의 올바른 본질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신앙이 인간의 생활을 규율에 맞게 지켜준다고 한다.[2]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 다르게 거룩한 전쟁이라 불리는 '지하드'라는 교리가 있다.
테러도 이슬람에서는 지하드에 속한다. 지하드 참전자는 72명의 처녀들이 시중 드는 천국에 심판 없이 바로 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이슬람 신앙을 포교하는 데는 나라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무함마드는 자손을 번창하라고 했으며, 여자는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했다. 이슬람의 남성은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다. 무함마드는 정복 전쟁을 계속해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632년 3월에는 메카에서 예배를 지내고, 무함마드 자신이 순례를 지휘하였다. 그 후 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 같은 해 6월 8일(이슬람력 11년 3월 13일) 애처 아이샤가 지켜보는 가운데 메디나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검소하게 장례를 치러 오늘날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모스크 에 매장되어 있다.
- 이스람 창시자 무함마드는 후계자 선정방법으로 분열된 양대 宗派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다. 무함마드 핏줄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시아파는 이란이 종주국으로 예멘 카타르 등 10%이며, 후계자를 공동체의 다수결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는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로 90%를 점하고 있으며 이스람 신자는 16억명으로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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