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이승만 기념관이 우파 聖地? 온 국민 화해와 통합 장소 될 것”
[김윤덕이 만난 사람]
‘풍경이 있는 세상’ 책으로 펴낸
김황식 이승만기념재단 이사장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 김황식 전 총리는 옳았다. 11년 전, 퇴임 후 계획을 물었을 때 “인생은 알 수 없으니 순리의 물결에 맡길 것”이라던 그는, 현재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운동을 주도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심에 서 있다. 작년 9월 닻을 올린 국민 모금 운동은 3월 현재 7만명이 참여해 113억원이 모였다. 전남 장성 태생인 김 전 총리는 “호남 기업인들이 많이 참여해 보람이 크다”고 했다. 마침 본지 <아무튼, 주말>에 연재한 ‘풍경이 있는 세상’이 책으로 나왔다.
◇대통령 할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운동으로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분이 아닐까 합니다만.
“저도 황혼기에 이리도 바쁘게 살게 될 몰랐지요.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웃음).”
-좌우 없이 존경받는 원로지만 위원장직 맡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텐데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많은 분이 권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중학생 때 4·19를 경험하셨는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없었나요.
“내가 중학교를 다닌 광주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총소리가 들렸지요. 그런데 우리는 당시 이 대통령을 ‘대통령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했어요. 3·15 부정선거만 해도 자유당 간부들이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려고 획책한 것임을 많은 국민이 알고 있었지요. 하야를 선언하고 이화장으로 가실 때 수많은 시민이 운집해 흐느끼며 작별 인사를 나눴고요. 당시 신문들도 ‘여생을 편안히’처럼 감성적인 제목으로 그날을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왜 이승만 혐오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이어져 왔을까요?
“이 대통령을 왜곡하려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탓이지요. 속된 말로 이승만을 ‘죽여야’ 북한이 정통성을 얻으니 의도적으로 폄하했고, 남한의 종북 세력이 이를 추종하면서 이승만을 몹쓸 독재자로 낙인시킨 겁니다.”
-총리 퇴임 후 독일에 계실 때 이승만 연구를 하셨다고요.
“독일의 정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쓰느라 초대 총리 아데나워에 대해 공부하는데 자료를 볼수록 이승만 대통령이 떠올랐어요. 건국의 아버지로서 두 분이 비슷한 점이 많았지요. 73세에 초대 대통령과 초대 총리에 오른 것, 애국심과 권력의지가 강했던 것, 장기 집권 한 것까지도요. 국가의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두 지도자는 북한과 동독을 공산권 괴뢰 정부로 여겨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농지개혁, 사회보장제를 추진했어요. 친일파와 나치 부역자 문제에서도 아주 중한 책임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관용하는 등 마치 두 분이 전화해 가며 상의한 듯 닮았지요. 유일한 차이라면 아데나워는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독일인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지만, 이승만은 그 반대라는 사실입니다.”
◇이승만은 페미니스트?
-영화 ‘건국전쟁’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고요.
“85세의 이 대통령이 4·19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서울대학병원을 찾아가 울음이 곧 터질 듯한 모습으로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장면에서요. 하와이에서 작고해 조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연도에 소복을 입고 선 시민들이 애통해하는 대목에서 ‘민심이 바로 저거였구나’ ‘우리가 그동안 이 대통령을 너무도 홀대했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여성에게 참정권과 교육의 기회를 준 것에 놀라더군요.
“미국의 한 정치학자는 이승만을 사회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라고 평가했어요. 그만큼 양반 상놈 차별이 없는 사회를 지향했고, 여성을 존중했지요. 농노나 다름없던 국민을 지주로, 당당한 주권자로 만든 농지개혁은 독일로 치면 사회민주당의 중도좌파적인 정책이에요. 제헌 헌법에 그런 규정들이 있는데도, 우리가 너무 몰랐던 겁니다.”
-비스마르크는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했다던데, 이승만이 그 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그렇지요. 해방 후 극심한 혼란기에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했고, 6·25와 휴전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활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동시에 한미 동맹을 통해 안보의 틀을 굳건히 마련한 것은 역사의 기회를 포착한 위대한 정치가의 혜안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영화가 이승만의 과(過)를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도 분명히 있지요. 그러나 우리 역사가 그동안 이 대통령을 하도 왜곡해 놔서 이를 바로잡으려다 보니 그 짧은 다큐에서 과에 대한 것까지 취급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영화에는 김구 선생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이승만과 김구는 한 살 차이에 같은 황해도 고향이라 평생을 형·아우로 지낸 동지입니다. 두 분 다 공산주의에 반대한 독립운동가로서 애국자였고요. 다만 1948년 정부 수립과 관련해 단독 정부냐, 통일 정부냐를 두고 이견이 있었던 것인데 이승만 박사가 세계 정세를 보는 안목이 있으니 더 옳은 판단을 내린 거지요. 그렇다고 김구 선생을 폄하해선 안 됩니다. 그분 나름대로 애국적인 생각을 갖고 내린 판단이었으니까요. 이승만을 높이려고 김구를 낮춘다면 이는 편 가르기일 뿐,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호남 기업인들의 동참
-국민 성금이 100억을 넘어 113억원에 이르렀다고요.
“예산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는 독립 유공자 기념관과 달리, 대통령 기념관은 정부가 30%만 지원하기 때문에 70%를 민간이 마련해야 합니다. 최소 500억원에서 1000억원을 모아야 하는데, 제 꿈은 순수하게 민간 성금만으로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모금이 쉽지 않을 텐데요.
“이승만을 잘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로 알고 있는 국민이 많아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했지만, ‘건국전쟁’의 흥행으로 이 대통령의 업적이 널리 알려져 앞으로 더 많은 분이 동참할 것이라 믿습니다.”
-해외 모금도 활발한가요?
“개인 최다액인 10억을 기부한 분이 베트남에서 기업 하는 분입니다. 하와이 교민들도 일찌감치 2억원 넘는 성금을 보내주셨고, 호주 등 해외 곳곳의 동포들이 동참하고 계십니다. 건국 대통령에 대한 그분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중소기업인들도 많이 참여한다고요.
“개인으로는 셋째로 많은 액수인 3억원을 기부한 분이 호남 기업인입니다. 1억원씩 해준 기업인도 여럿이고요. 아버지에게서 이 대통령의 훌륭함을 듣고 자랐다며 2억원을 기부한 할머니, 이승만을 찬양하는 한시와 함께 200만원을 보내준 할아버지, 우표를 판 수익금 1000만원을 기부한 대학생들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성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념관 건립을 이승만 우상화로 보는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이승만을 알릴 거고, 과오로 생각하는 부분도 빠뜨리지 않을 겁니다. 이승만 기념관은 우파의 성지(聖地)가 아니라,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통합과 화해의 장소가 될 겁니다.”
-기념관엔 어떤 물건들이 전시될까요?
“개인적으로는 이승만의 친필 영문 일기, 한성감옥에서 쓰신 ‘독립정신’ 초판, 그리고 김구 선생과 깊은 동지적 유대 속에 왕래한 유필 편지를 보고 싶습니다.”
◇나는 눈 덮인 휴화산
-’풍경이 있는 세상’(나남)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승만 기념관 등 벌여놓은 일이 많아 작년 12월로 연재를 끝냈는데, 중간에 빠뜨려 읽지 못했거나 흩어져 없어진 신문 스크랩을 아쉬워하던 분들이 책으로 내달라고 청해와 부득이 엮게 되었습니다.”
-경어체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쓰신 글로 큰 사랑 받았지요.
“평생 공직자로 근엄한 체하며 살아온 구각(舊殼)을 벗고 싶었어요. ‘한 수 가르쳐줄게’ 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지요.”
-거칠고 독해서 남에게 상처 주는 글은 쓰지 않겠다고 했더군요.
“독설과 막말이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 역할을 못 해요. 인터넷 댓글들은 얼마나 거칠고 황폐한가요. 저부터라도 순하고 따뜻한 글을 쓰자 다짐했지요.”
-첫 글이었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강렬했습니다.
“고지식해 보이는 공직자가 감성적인 노래를 제목으로 걸고 전쟁의 비극을 다룬 글인데, 그걸 읽고 ‘사람 달리 봤다’고 한 분이 많았지요(웃음). 동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성경구절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를 인용해 쓴 글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새겨들으면 좋겠더군요.
“정치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니 높은 데 뜻을 두지 말고 낮은 곳에 거하라는 뜻인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당선만 되고 보자는 풍토라 안타깝지요. 정치의 속성이 본래 그렇다지만, 그럴수록 국민이 자기 인격이자 양심의 표현인 투표권을 엄중히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검수완박, 연금개혁 등 현안을 다룬 글도 많았는데요, 현재 강대강으로 치닿고 있는 의대생 증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의술은 인술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선 안 되지요. 정부도 많은 연구를 거쳐 도출한 결론이겠지만 조금 양보하면서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해요. 이를테면 증원 목표는 유지하되 좀 더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 연(年) 증원 숫자는 다소 줄이는 방법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쪽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식이면 문제는 풀리지 않아요.”
-일본에 관한 글도 여러 편 쓰셨지요. 반도체 등 최근 부활하고 있는 일본의 저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1990년대 산업화에서 정보화 시대로 전환하는 세계적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 비롯된 것이지요. 그러나 기초가 튼튼한 사회라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일본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전국 시대, 에도막부의 평화 시대, 명치유신의 근대화, 군국주의와 무모한 전쟁, 원폭 피폭 등 영욕의 역사를 경험한 일본은 무시할 수 없는 저력과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에 관한 글은 별로 없더군요.
“싫은 소리를 쓰게 될까 봐(웃음).”
-미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다가 폭탄주가 우리 발명품인 줄 잘못 알았음을 깨달았다는 대목에서 웃었습니다. 은근히 장난기가 있으시지요?
“어느 기자가 저더러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하니 퍽 섭섭하더군요. 저는 ‘눈 덮인 휴화산’입니다. 붉은 마그마가 끓고 있는. 제 안에 마그마가 없었다면 ‘풍경이 있는 세상’ 같은 글은 쓰지 못했을 거예요(웃음).”
☞김황식
194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광주지방법원장, 대법관, 감사원장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제41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퇴임 후 안중근의사숭모회, 호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던 중, 2023년 6월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지산통신’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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