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이 아름다운 理由
( why life is beautiful )
어느 날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일 이었기에 출발 전부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동네 커피 專門店에 들어가 카페라테 한잔을 주문했는데,
테이크 아웃해서 들고 나오던 중, 유리문에 살짝 부딪혔다.
순간 종이 컵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던지 커피가 반쯤 쏟아져 버렸다.
나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서 “뚜껑 하나 제대로 못 닫아 커피를 반이나 쏟게 하느냐?” 화를 냈다.
종이컵 뚜껑을 잘못 닫은 그 靑年 職員은 어눌한 발음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커피 나왔다는 신호(信號)의 진동 벨이 앞좌석에서 울렸다.
앞좌석의 그 아주머니가 커피를 받아서 내게 건네며, 하는 말.
“카페라테예요.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늘 남겨요.
그거 제가 마실께요?
우리 바꿔 마셔요.”
난 그 아주머니가 손에 쥐여 준 그분 몫의 카페라테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너무 부끄러웠다.
커피 집에 들를 때마다 문득 문득 그때 커피 전문점 에서의 상황이 마음속에 늘 그늘로 남아 있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가끔 들르는 그 커피 집에는 낯선 靑年이 새로 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행동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다.
순간 그 청년을 채용 해 준 회사가 몹시 고마웠다.
그건 단순히 취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눈부신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빼앗은 또 한 사람. 40代 아주머니 한 분이 구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직감 했다.
그 아주머니는 오직 한 사람만 보고 있었다.
아주 애틋하고 절절한 눈빛으로~^
청년의 어머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發達 障碍人 아들의 첫 직장에서 그 아들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떨까?
초조하고, 不安하고, 흐뭇하고, 感謝하고,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눈물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순간 나는 그 아주머니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여기 단골인데요...!
아무 걱정 마세요.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다 착하고 좋아요,
아드님도 잘 할 거예요.”
그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걸 보고 나도 울컥했다.
삶이 아름다운 건 서로 어깨를 내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漢文의 사람 인 (人)자 처럼.~^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몫인 온전한 카페라테를 내어 준 아주머니.
코로나 19로 인해 몇 개월간 집에 못 들어가서 보고 싶은 어린 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울지 않는 간호사.
火災 現場에서 부상(負傷)을 입어 들것에 실려 病院 으로 향하면서도 한 사람 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소방관 아저씨.
장사 안 되는 동네 입구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살 때 제일 볼품 없는 것만 골라 넣는 퇴근길의 영이 아버지.
마스크를 서너 개씩 여분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며,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 말없이 내미는 준호 할머니.
이렇듯 참으로 많은 보통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더 감사하고, 베풀며, 살아 갈 수 있을까?
남은 인생 나는 얼마나 자주 내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까?⚘️
🌷등대(燈臺) 불빛
( lighthouse lights )
어느 외딴 섬(島)에서 실제(實際) 있었던 일입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풍랑이 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들보고 오늘은 바다에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한참 고기가 나오는 철이라고 괜찮다고 고집스럽게 바다에 나갔습니다.
저녁(夕)이 되고, 바다가 심상치 않은데, 아들은 돌아오지 않아 엄마의 마음이 탑니다.
한 밤중이 되자, 바다는 큰 파도(波濤)와 폭풍(爆風)이 몰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東西南北이 區分이 안 되는 칠흙 같은 밤이라 아들은 方向을 잃었습니다.
어느 쪽이 자기가 사는 섬 쪽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생사에 기로에 애타게 방황하던 중 멀리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아들은 그 불빛을 보고, 방향을 잡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와 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큰 불빛을 만들기 위해 자기 집에 불을 놓아 아들이 찾아오게 한 것입니다.
집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아들의 生命은 한번 잃으면, 다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 들을 '世上'이라는 바다에 내어놓고,
'알아서 잘 살겠지'하고 無心 하게 방치하지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世上은 무서운 곳입니다.
惡이 판을 치는 곳에서 子女를 구하려면, 부모님은 자기 집에 불이라도 놓는 心情으로 등대(燈臺)를 켜놓아야 합니다.
좋은 車, 좋은 집,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안에 등대 불이신 하나님 섬김을 심어놓아야 큰 폭풍이 닥치더라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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