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강사 영어 지문이 수능에 그대로, 이것도 “우연”이라더니
2023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대형 입시 업체 소속 ‘일타’ 강사의 모의고사 지문과 똑같은 지문이 출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이 사안과 함께, 이 일타 강사와 문항 거래를 한 현직 교사 4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도 이와 관련해 교육부와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감사하고 있다.
수능 2개월 전에 한 일타 강사가 낸 교재에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하버드대 교수가 쓴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일부를 발췌한 지문이 실렸다. 그런데 이 지문이 수능에 그대로 나왔다. 문제 유형은 달랐지만 같은 지문이라 이 교재를 풀어본 학생은 시간을 절약하며 정답을 수월하게 맞힐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지문이 출간을 앞둔 EBS 수능 교재에도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입시 역사에 없던 일이다.
이 의혹은 수능 직후 평가원 이의신청 게시판에 다수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교육부와 평가원은 “우연의 일치”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문제의 하버드 교수 책은 당시 한국에서 출판되지도 않았고 248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세계의 수많은 영어 문장 중에 특정한 글의 특정한 구절이 한국의 두 가지 교재와 국가 시험에 동시에 나온 것을 우연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정상적 판단을 한다고 볼 수 없다.
가장 먼저 일타 강사가 교재에 실은 이 지문을 수능 출제진과 EBS 교재를 만드는 현직 교사들이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면, 이들 사이에 커넥션이 있다고 의심해야 한다.
이들의 삼각 커넥션 의혹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지난 2016년 수능 모의평가 국어에선 유명 강사가 검토 위원인 현직 교사에게 돈을 주고 문제를 넘겨받아 학원 수강생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교육부는 작년 9월 최근 학원 문제를 출제한 경력이 있으면서도 수능 출제에 참여한 교사 24명을 적발해 경찰에 고발·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이번 ‘판박이 지문’ 사태는 조사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기본 원칙인 공정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더구나 평가원은 EBS 교재를 만들 때 감수하는 기관인데 이 업무도 소홀히 했다. 유착 가능성이 명백한데도 “우연” 운운하면서 아무런 조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던 교육부와 평가원의 책임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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