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대만 ‘새싹’이 판세 바꿀까… 민중당 2030 열풍

太兄 2024. 1. 6. 19:20

대만 ‘새싹’이 판세 바꿀까… 민중당 2030 열풍

총통 선거 유세 현장 이벌찬 특파원 르포

입력 2024.01.06. 03:00업데이트 2024.01.06. 08:29
 
4일 밤 대만 신주의 민중당 유세 현장에 청년들이 신(新)정치의 주역이 되겠다는 의미로 새싹 모양의 머리 장식을 하고 참석했다./신주=이벌찬 특파원

대만 총통 선거(13일)를 앞둔 4일 저녁, 대만 신주의 수이전삼림공원에서 열린 제3정당 민중당 후보의 대규모 유세 현장은 머리에 초록색 새싹 핀을 꽂고 참가한 청년 6000여 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싹 핀은 ‘대만 신(新)정치의 새싹이 되겠다’는 뜻이다. 대부분 각자 만들어 온 것으로 “이거 머리에 다세요” 하고 권하며 나눠주는 이도 여럿 만났다.

그동안 대만 정치는 반중(反中) 민진당과 친중(親中) 국민당이 대대로 ‘적대적 공생’을 이뤘다. 이번 총통 선거부터는 제3 후보가 20% 안팎 지지율로 선전하고 있다. 변화의 힘은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청년들이다. 젊은 유권자 상당수가 기자에게 “무조건적 중국에 대한 굴종도, ‘전쟁이냐 평화냐’식 협박도 맞지 않는다”면서 “대만의 안보·경제를 지키기 위한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일 저녁 대만 신주에서 열린 민중당 유세에서 청년들이 백지에 쓴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대만에선 청년들의 '백지 운동'이 한창이다./신주=이벌찬 특파원

이번 선거에서 민중당의 청년 지지자들은 ‘백지 운동’ ‘55계획’을 벌이고 있다. 2022년 11월 중국에서 일어난 방역 반대 시위와 이름이 같은 백지 운동은 대만에 대한 바람을 적은 종이를 유세 현장에 들고 나가는 캠페인이다. 55계획은 ‘거실 혁명’이라고도 한다. 5일 동안 집에서 매일 5분 부모·조부모에게 애정 표현을 하며 민중당 지지를 당부하자는 제안이다.

이날 민중당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를 위한 도시락, 보안 검색대, 종이 홍보물은 보이지 않았다. 청년 선거 운동가들은 “버스 인력 동원이나 전통 방식 유세는 청년들에게 효과가 거의 없다”고 했다. 대신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세 일정을 전파하고, 색연필 등으로 각자 소망을 담은 ‘낙서 팻말’을 즉석에서 만든다. 이날 커원저 민중당 총통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실컷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청년들밖에 안 오더라”고도 했다.

지난 3일 저녁 대만 신베이의 민중당 경선 본부에서 30대 부모와 자녀들이 커원저 총통 후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흰 종이에 적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이번 대만 선거는 유권자의 35%를 차지하는 20·30세대가 막판 판세를 흔들 핵이 될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발표한 주요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집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32~40%)와 제1 야당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27~36%)의 경쟁이 박빙이고, 민중당 커원저 후보(19~22%)가 뒤를 따랐다.

커원자가 당선될 확률이 낮은 상황이기는 하다. 관건은 커원저가 ‘젊은 표심’을 끌어들이는 가운데, 누구 표를 뺏어 오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반중 민진당은 지난 8년 동안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청년 지지층을 확보한 상황이어서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노년층과 골수 보수층의 지지가 강한 국민당은 민중당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관측된다.

대만에서 민중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의 머리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저녁 신주 유세 현장에 참석한 젊은 남성의 모습./신주=이벌찬 특파원

지난달 5일 여론 조사 기관 관젠조사 발표에 따르면 민중당의 20~39세 지지율이 25.0%로 민진당(19.2%)을 앞선다. 지난달 23일 메이리다오전자보의 여론조사에서도 30~39세 민중당 지지율이 32.7%로 민진당(27.6%), 국민당(26.8%)을 넘어섰다. 민중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청년 투표율이 지난 선거(70%)보다 높은 80%를 넘기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만 청년들이 민중당을 택하는 데는 거대 양당이 주력하는 양안·안보 문제보다 민생에 관심이 쏠린 탓도 있다.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현 총통이 연임에 성공한 2020년 선거 때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가 대만 청년들의 안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만에 중국의 무력통일을 우려하는 ‘망국감(亡國感)’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그러나 현재 대만 청년 실업률은 11%를 넘어섰고(작년 10월), 소비자물가 지수도 크게 올라 2.9%(11월)를 기록했다. ‘대만 선거와 민주 연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경제(34.2%)는 양안 문제(18.1%)보다 뜨거운 관심사다. 4일 유세 현장에서 만난 저우모(34)씨는 “국민당과 민진당 중 누가 선거에서 이겨도 대만해협의 위기는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고, 에이든(24)은 “청년들은 지정학적 문제보다 집값·소득·취업 등에 관심이 쏠려 있고, 대만 GDP(국내총생산)나 증시 성장보다 손에 잡히는 혜택을 원한다””고 했다. 린모(24)씨는 “젊은 사람들은 절대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부(富)가 위 세대에 집중돼 있어 저출생이 심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만에서 열렬한 청년 지지를 받는 민중당의 ‘새싹 신드롬’이 심상치 않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선거 운동 일환으로 타이베이의 시장을 방문한 커원저 대만 민중당 총통 후보의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커원저 후보는 명문대인 대만대 의대 출신으로 2019년 7월 민중당을 설립했다. 의사 경력이 길어 ‘민중당 주석’보다 ‘커 의사’로 불리곤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민당 허우유이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독자 출마했다. 대만 정계에선 커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 20% 수준의 지지율을 거두고, 동시에 치르는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8석 이상 챙기면 대만 정치의 세대교체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중국 입장에서도 선거 이후 커원저가 민진당의 독주를 견제할 카드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위협을 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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