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많은 것을 보지만, 거울 없이는 제 눈동자를 보지 못합니다
가족 식탁에서 말다툼이 길어질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그렇게 들었다”고 말합니다.
둘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기 자리에서 본 풍경을 너무 쉽게 전체 진실이라고 믿는 데 있습니다.
1940년대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동료 베르벨 인헬더와 함께 유명한 '세 산 실험'을 했습니다. 아이들 앞에 높이와 모양이 다른 세 개의 산 모형을 놓고, 반대편에 인형을 앉힌 뒤 물었습니다.
"저 인형의 눈에는 산이 어떻게 보일까?" 네다섯 살 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골랐습니다. 인형의 자리에 서면 산의 순서가 달라진다는 것을 아이는 아직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피아제는 이것을 '자기중심성'이라 불렀습니다.
이 자기중심성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는 저절로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운전대 앞에서, 댓글 창 앞에서 여전히 내 감정이 가장 크고, 내 상처가 가장 깊고, 내 해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느낍니다. 내게는 내가 너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는 2000년 코넬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에게 민망한 가수의 얼굴이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강의실에 들어가게 한 뒤, 몇 명이나 알아챘을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절반가량이 보았으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기억한 사람은 네 명 중 한 명꼴이었습니다. 길로비치는 이를 '조명 효과'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무대 위 배우처럼 모든 시선이 내게 쏟아진다고 느끼지만,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무대의 주인공으로 사느라 바쁩니다.
오늘날 우리의 손바닥 위에서는 이 착각이 날마다 새롭게 갱신됩니다. '나를 위한' 알고리즘 화면은 내 취향과 내 분노와 내 관심만을 골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들여다 볼수록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내가 본 만큼만 있고, 진실은 내가 느낀 만큼만 있다고 확신하게 합니다.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2005년 케니언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모든 직접 경험은 내가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라는 깊은 믿음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회로에 새겨진 기본 설정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을 이어받아 인간을 '자기 안으로 굽어진 존재'라 불렀습니다. 가장 좋은 일을 할 때조차 그 끝이 슬그머니 자기에게로 휘어진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인정받고 싶고, 겸손을 말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자아는 참 조용하지만 집요합니다.
자기중심성은 결심만으로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눈은 많은 것을 보지만 자기 눈동자는 직접 보지 못합니다. 등불은 방을 밝히면서 제 발밑은 비추지 못합니다. 저울은 많은 것을 달면서 제 무게는 달지 못합니다.
사람이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제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듯이, 자아는 자아를 들어 올리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성의 변화는 중심의 교체에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천문학이 열렸듯이,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이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때 인생은 비로소 제 방향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자아를 고쳐 쓰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중심이 바뀌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보고, 이웃을 너그럽게 보며, 내 자리에서만 보이던 산을 조금씩 그 사람의 자리에서도 보게 됩니다.
오래된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두 개의 자루를 메고 나온다고 합니다. 앞가슴에 멘 자루에는 남의 허물이 담겨 있고, 등 뒤에 진 자루에는 자기 허물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허물은 눈만 들면 쉽게 보지만, 제 등에 진 허물은 평생 잘 보지 못합니다. 은혜란 그 등 뒤의 자루를 보게 하시는 빛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남의 앞자루만 보던 눈을 거두어 그의 무거운 뒷짐까지 헤아리게 되는 마음입니다.
복음은 남의 허물을 더 선명하게 보는 눈이 아니라, 내 등에 진 자루를 먼저 보게 하는 빛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그리고 권면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3-4)"
내가 만나는 사람에 의해 나는 물들어 간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하얀 종이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그러나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물들고, 어느새 그 향기와 냄새를 품은 존재가 되어 갑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와 함께 길을 걷고 계시다가 길 위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보셨습니다.
부처님은 제자에게 그 종이를 주워 오게 하시고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이 종이는 어떤 종이이냐?”
제자는 종이를 살펴본 뒤 말했습니다.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아직도 향기가 남아 있어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고 다시 묵묵히 길을 걸으셨습니다.
얼마 후, 이번에는 길가에 떨어진 새끼줄 하나를 보시고, 제자에게 또다시 주워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새끼줄은 어떤 줄이냐?”
제자는 잠시 맡아본 뒤 대답했습니다.
“생선을 묶었던 줄입니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도 이와 같으니라.
본래는 모두 깨끗하였으나,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에 따라 죄도 짓고, 복도 부르게 된다.”
향을 담았던 종이가 향기를 품듯, 비린 것을 묶었던 줄이 냄새를 머금듯, 우리의 마음 또한 우리가 가까이한 사람과 말과 행동을 닮아갑니다.
어떤 사람의 곁에 머무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며, 결국 삶의 방향까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연은 선택이며, 만남은 곧 삶의 공부입니다.
나를 탓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 곁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내 마음이 무엇에 물들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누구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향기로운 종이로 남기를 가만히 발원해 봅니다!
🐞행복한 사람
"만족(滿足)"이라는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만(滿)"은 '가득하다' '차오르다' 라는 뜻이고,
"족(足)"은 그냥 '발'이라는 뜻인데,
어째서 "만족"이라는 단어에 발 족(足)자가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발목까지 차올랐을 때, 거기서 멈추는 것이 바로 가장 적당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와~~^^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어떠한 철학적 표현이나 시적 미사여구보다 행복에 대한 완벽한 정의였습니다.
"滿足"이라는 한자를 보면서 행복은 욕심을 최소화 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족욕(足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발을 담구는 건강법 입니다.
이때 발목까지만 어느 정도 따끈한 물속에 담궈도, 곧 온몸이 따뜻해지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온 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목까지 차오르고, 머리 끝까지 채워져야 행복할 것이라는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스스로 반성해 봅니다."
과욕은 금물입니다.
분수를 지키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만고불변(萬古不變) 행복의 방정식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지금 있는 그대로, 이 모습 그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 탈무드 -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곧,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며, 작은 것에도 만족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중년이 되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인생의조언.
남이 아니라, 나부터 돌아보라,
적과 원수가 주는 상처보다, 내안의 그릇돈 생각과 탐욕이 더 큰해를만든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마라.
사람은 예로부터, 늘 서로 헐뜯고 비방해왔다. 말은 많아도, 적어도, 적당해도, 결국 비난을받는다.
현재에 살아라,
과거를 쫓지말고, 오지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않았다,
오직 지금 이순간만 바라보고, 흔들림 없이 실천하라.
부족함을 채우기보다, 충분함을느껴랴.
고뇌에서 벗어 나려면, 만족할줄 알아야 합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불평하며 늘 가난하다 느낀다.
적은 것에도 만족할줄 아는것, 그것이 행복 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오늘도 행복한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자원 0%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다니.." 미국도 경악한 한국의 맨손 신화! 반도체·조선·방산까지 싹쓸이한 대한민국의 저력 - https://youtube.com/watch?v=nsm4DgwmsOU&si=2M0M7PMYdRmL2U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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