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고난(苦難)과 시련(試鍊)"이 연마시키는 인생 외3.

太兄 2026. 7. 13. 21:06

 "고난(苦難)과 시련(試鍊)"이 연마시키는 인생

서양 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 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  고난과 시련의 돌을 치워 버리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됩니다.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빠져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서 남의 돈을 빌려 썼습니다.
그리고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연주를 듣던 왕도 일어섰다는
불후의 명작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은 바로 이 감옥이었습니다.
불후의 명작 <할렐루야>를 작곡한 '혠델'이
호화스럽고 행복한 위치에 있었다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헨델의  할렐루야'를 작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건강도 찾지 못하고
비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불살랐으면
<할렐루야>란 곡을 작곡 했을까요?
우리들도 인생 살아가면서 어떠한 고통과 시련이 온다해도 실망하고
좌절하여 쓰러지는 자가 아니라
오뚜기처럼 그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헨델'처럼 제2의 인생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채의 시(詩) 한 편을 올려드립니다.

   "눈물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이채)

비가 산과 들을 가려서 내리고
바람이 나무와 풀을 가려서 불던가
바위틈 작은 풀꽃에도 비는 내리고
갈대밭 풀벌레 소리에도 바람은 다녀가네

풍랑이 치고 해일이 일다가도
파아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면 제 가슴 쓸어안고 고요해지는 바다여
살다보면 누구나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울어야 할 때가 있다
고난 없는 삶을 바라지 마라
고난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주어지는 아픔이고
보람은 견뎌낸 만큼 얻어지는 기쁨이다.
오늘 내 몸이 수고로워야
내일 내 마음이 풍요롭거늘
무엇이든 쉽게 구하려 하지마라

눈물 없는 삶을 바라지 마라
울지 않고 태어날 수 없듯
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하루를 사는 데도 걱정이 많거늘 한평생 사는 데야 말해서 무엇하리.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
고통과 시련을 기필코 견디고 이겨내어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메시에게 보낸 한 교사의 편지★

세계최고 축구선수 메시가 과거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나갔을 때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메시는 죄책감과 많은 사람들의 비난때문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때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조그만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여교사가 메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는 삽시간에 아르헨티나는 물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결국 메시는 생각을 바꾸어 6주만에 대표팀의 복귀를 선언하였다.
아르헨티나의 한 교사가 메시에게 쓴 편지라는데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면 크게 도움될 것 같아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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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에게★

당신은 아마 이 편지를 읽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오늘 축구팬이 아닌 한 사람의 교사로서 당신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저는 비록 교사이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저를 향한 아이들 존경심은 아이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영웅이 포기하는 모습을 지금 보게 됐습니다.
당신을 지치게 만든 일부 아르헨티나인의 어두운 면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대표팀의 은퇴는 당신을 욕하고 깍아내리는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처럼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패배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우선이고, 유일한 가치라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아르헨티나 어린 아이들이 인생 목적은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늘의 메시가 되었는지를 잘 압니다.
성장 호르몬 결핍이라는 희귀병을 앓은 당신이 어린 나이에 고통스러운 주사를 얼마나 맞으며 자랐는지를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은퇴하면 이 나라 아이들은 당신에게 배웠던 노력의 가치를 더 이상 배우지 못합니다.
지금 당신처럼 단지 졌다는 이유만으로 포기를 한다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당신을 얘기할 때 당신이 얼마나 멋지게 축구를 하는지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프리킥으로 단 한골을 넣기 위해 당신이 같은 장면을 수천 번이나 연습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당신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벗어선 안됩니다.
우리 모든 팬들이 당신에게 승리와 우승만을, 트로피와 메달만 바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2위는 패배라고, 경기에서 지는 것이 영광을 잃게 되는 일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말아 주세요
진정한 영웅은 패했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이길 때는 같이 이기고, 질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때 만큼은 리오넬 메시가 아닌 아르헨티나 자체라는 마음으로 대표팀에 남아 줬으면 합니다.
결과에 관계 없이 사랑하는 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위대한 우승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진심을 담아서,
     비알레 초등학교 교사, 요아나 푹스

♡ 무더위에 폭염에 건강챙기시고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노후를 가볍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

사람은 젊을 때 늘 ‘복’을 이야기한다. 좋은 부모를 만나야 인생의 출발이 유리하다고 믿고, 훌륭한 자식을 두어야 노후가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의 강을 오래 건너온 사람들의 표정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이 준 복이 아니라, 결국 자기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젊음도, 체력도, 관계의 숫자도 예전 같지 않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허무에 무너지고, 어떤 이는 오히려 더 평온해진다. 그 차이는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편안한 노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은 기대를 줄인다는 점이다. 인간의 괴로움은 대부분 현실보다 기대에서 시작된다. 자식은 내 마음처럼 살아주길 바라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친구 역시 세월 속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관계를 소유처럼 붙들려 하기 때문에 상처받는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누군가 찾아오면 고맙고, 오지 않아도 서운함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것을.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의 내려놓음도 결국 같은 뜻일 것이다. 인연은 억지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강물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돈보다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젊은 날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간다. 더 벌기 위해 몸을 혹사하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마음을 소모한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깨닫는다. 인생에서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지나간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고, 자신을 소진시키는 관계를 멀리하며, 좋아하는 음악 한 곡과 조용한 산책의 가치를 안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하루를 얼마나 평온하게 보내는가에 달려 있다.

세 번째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길 줄 안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 외로운 존재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삶의 끝까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노년의 가장 큰 능력은 홀로 있음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다. 혼자 차를 마시고, 책장을 넘기고, 햇살 아래 천천히 걷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이다. 늘 누군가에게 기대어야만 행복한 사람은 고독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혼자서도 충만한 사람은 세상이 조용해질수록 오히려 더 깊은 자유를 누린다. 니체가 말했듯, 인간은 고독 속에서 비로소 자기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편안한 노후를 사는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안다. 감사는 현실이 완벽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부족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몸,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공간, 안부를 나눌 한 사람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늘 없는 것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비교는 끝없는 결핍을 낳지만, 감사는 현재를 평온하게 만든다.

결국 노후의 행복은 부모복이나 자식복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인연은 삶의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진정한 평온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기대를 줄이고,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혼자서도 자신을 지탱할 줄 알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에 필요한 가장 큰 복은 어쩌면 외부에서 오는 행운이 아니라,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나라를 살리자》

지금 대한민국은 망하는 길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국방이 무너지고 정부 스스로 외교를 참사시키고 법치가 무너지고 경제는 파탄나고 국가 재정은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다. 민생, 경제는 폭망했다.

나라의 형편이 이런데도 국민들과 각계 각층의 엘리트는 침묵하고 있다. 정녕 국민들은  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엘리트가 엘리트가 아니라 이리떼가 아닌가 싶다. 더럽고 비천한 탐욕의 이리떼 인간들이 엘리트인양 내숭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방을 보라. 3단봉으로 전방 초소가 붕괴되고 국방이 허물어져도 왜 장군들은 일언 반구도 없는가?

또 군별로 분명하게 특성이 있어야할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여 국방사관대학으로 만든다는데도 각 군의 장군과 장교 출신들은 왜 침묵하는가. 이런 대학은 무기력하고 생각없는 장교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사관학교가 대학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성우회 장군들은 왜 침묵하는가?

정부로 부터 받는 보조금 때문에 침묵하는가.
국가로부터 온갖 혜택을 입은 자들이 나라가 망가져도 침묵하고 모른채 하니 똥별이란 소릴 듣는 것 아닌가.

검사들은 검찰청이 80년 만에 폐지되고 헌법에 보장된 검사의 역할이 박탈당해도 왜 2천4백명 검사들은 말이 없는가?

범죄자 권력 앞에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는가. 힘없는 일반 국민들에겐 그렇게 서슬 시퍼렇게 겁박하던 검사들이 왜 권력자 범죄는 수사도 제대로 못하고, 항소를 포기하는가?
밤잠 설치며 고시해서 검사된 것이 고작 범죄자 권력자 시녀나 똘마니 역할인가.

검찰은 국회 불법 국정조사에서 선서를 거부한 검사하나 지키지 못하고 직무정지 시키나.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디에 팔아 먹었나.
폭탄주 마실 때나 검사동일체인가.

판사들은 더 나쁘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주범은 단연 사법부다. 외려 범죄자를 엉터리 논리로 벌하지 않았던 것이 사단이었다.

소극적 거짓말은 가능하다는 궤변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보라. 이제 판사들의 판결이 법 왜곡죄로 처벌받게 되었다.

사법부가 국회나 행정부의 하수인이 되었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부하가 된 지경에 이르렀다. 사법부가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그 잘난 3천 여명의 판사들은 왜 말이 없는가.

자업자득이다.
헌법과 법을 지켜야 할 판사들이 해괴한 논리로 법을 유린하고 파괴한 결과 아닌가. 또한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교도 죽었는가. 젊은 청년들의 패기와 열정은 어디로 갔나 ?

나라가 이렇게 망가지고 쇠락해가고 정치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는데도 대학은 왜 침묵하는가. 그 잘난 교수들은 그 흔한 성명서 쪼가리 한 장 발표도 못하나.

후쿠시마 처리수의 거짓선동엔 과학도 믿지 않고 성명서를 발표하던 교수들의 사기 지성은 어디로 갔나.
나라가 공산화되고 헌법이 무너지고 삼권분립이 파괴되는 것이 안 보이는가?

4.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데모를 지지하며 거리로 나온 노교수들의 데모를 모르는가.
지성과 양심이 죽은 대학이 지금 대학의 꼴인가. 오히려 한 자리 하려고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인가. 교수들 70%가 범죄자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이건 충격이다. 그런 더러운 양심과 도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나.

정말 일부지만 목사들은 나쁜자 들이다.
지금 이 정권이 교회를 해체시키겠다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목사들은 이 정권을 지지하고 범죄자 권력자를 부활절에 교인들도 모르게 도둑 같이 오게해서 교인들에게 연설하게 한 것은 정말 도둑 같은 짓거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
교인도 아닌 일반 국민들은 교회 해체법을 못 만들도록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목사란 것들이 교회를 해체 시키겠다 는 세력들과 야합 하는가 ?

적당한 거래로 야합 쇼를 벌이고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교인들이 1천5백 만이라고 하면 반대 서명운동은 한나절에 다 끝날 것이다. 낙태법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 등이 교회의 당면 과제아닌가. 그런데도 목사들이 공산화 정치세력들과 야합을 하며, 침묵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목사가 아니라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또 불교나 다른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이다.

대한민국에서 고위 공직을 지낸 자들의 침묵도 말이 안 된다. 온갖 노른자리를 찾아다니며 호의호식한 자들이 나라가 소멸될 위기에도 침묵하고 있는 것은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다.

최근 알려진 것과 같이 중국인들에게 공짜 돈을 지급하는 것이 추경에 반영됐다는 것은 공직자들이 양심도 의식도 없는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정말 국민들이 불쌍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헌정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국회가 헌법을 유린하고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법치를 죽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왜 침묵하는가. 몇 푼의  보조금 때문에 침묵하는 것인가?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국회의원을 해먹고도 아직도 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손들이 살아야할 나라가 공산화 되고 망해가도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이래도 국가 원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말 양심도 죽고 나이값도 못하는 시정잡배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말 나라가 암담하다.

방송이나 언론의 인간 같잖은 것들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
그들은 이미 간첩집단인 민노총의 노예가 돼 본래의 가치를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공짜 돈 몇 푼에 주권을 좌파들에게 팔아먹은 결과로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도 좌파를 지지하는가. 국민들이 각성하고 깨어나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라는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 또한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결국 나라의 수준이나 정치는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꾼들의 감성적 선동이나 바람몰이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 생각을 가져야 한다.
즉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선택해야 한다.

오늘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만든 진영은 자유 민주주의 우파세력들이다. 앞으로도 나라를 성장시킬 세력도 우파들이다.

지금 보라. 좌파는 나라 돈만 빼먹고 나라를 망치고 있다.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진정 우리 모두가  스스로 뜨겁게 반성하고 나라를 살려야 한다.

    ♻️  ~~~*^^*

[蛇足] 글쓴이의 애국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익명이라 다소 유감스럽지만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한 사람에게라도 이 글을 확산시켜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