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중앙그룹의 몰락 외3.

太兄 2026. 6. 27. 23:17

● 자유 대한민국  현대 미디어사의 거대한 흥망성쇠를 바탕으로, 중앙일보의 탄생부터 2026년 6월 20일 현재 JTBC의 부도 및 회생 절차 신청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대서사시를 팩트에 기반하여 총 10부작 형식의 장편 드라마 대본 기획(안)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정교하고 몰입감 넘치는 대한민국 유일의 언론 잔혹사, 
"가제" 
[제국의 몰락: 배신의 미디어]를 여건이 충족되면(제작사, 배급사, 출연 배우 등)바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대하 드라마 시리즈 기획안: 
[제국의 몰락: 배신의 미디어]
부제: 태양을 품으려 했던 달, 스스로 빛을 잃다

<등장인물>
홍석현: 중앙그룹의 절대 권력자. 처남인 이건희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킹메이커'이자 스스로 왕이 되고 싶었던 야망의 인물.

이건희: 삼성그룹의 전설적인 군주. 처가인 홍씨 일가에게 중앙일보를 떼어주며 미디어 제국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으나, 그것이 훗날 배신의 칼날로 돌아올 줄은 미쳐 몰랐다.
홍라희: 이건희의 아내이자 홍석현의 누나. 삼성과 홍씨 가문의 거대한 가교 역할을 하지만, 가문의 혈연과 남편의 제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
이재용: 삼성의 후계자. 엄마의 남동생 외삼촌인 홍석현과 외사촌인 홍정도를 믿었으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잔혹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비운의 황태자.
손석희: JTBC를 대중의 중심에 올려놓은 저널리즘의 아이콘. 냉철하고 정의로운 가면 뒤로, 거대한 정치적 폭풍의 도화선이 되는 극좌파 인물.
홍정도: 홍석현의 아들이자 중앙그룹의 후계자. 아버지의 야망을 물려받아 스포츠 중계권과 대규모 드라마 제작에 돈을 물쓰듯 쓰며 2026년 파멸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인물.

1부: 황금 탯줄의 탄생 (1965~1999)
[1965년, 중앙일보 창간식]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사돈인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과 손을 잡고 중앙일보를 창간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과 법조계 거물이 결탁한 미디어의 탄생. 홍진기의 어린 아들 홍석현은 그 거대한 인쇄기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고모인 홍라희가 삼성의 이건희와 결혼하면서, 홍씨 일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단단하고 부유한 '황금 탯줄'을 쥐게 된다.

[1999년, 배신의 서막]
"이제 삼성의 사보(社報) 소리는 듣지 않겠다."
홍석현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중앙일보의 지분을 넘겨받아 공식적인 계열 분리를 선언한다. 표면상으로는 독립된 언론사로의 도약이었지만, 속내는 삼성을 디딤돌 삼아 더 큰 정치적, 사회적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홍석현의 야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리 과정에서 발생한 탈세 혐의로 홍석현이 구속되는 굴욕을 겪으며,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거대한 독기를 품게 된다.

2부: 킹메이커의 야망과 주미대사의 꿈 (2005)
[2005년, 주미대사 임명과 삼성 X파일 사건]
홍석현은 마침내 노무현 정부 시절 주미대사로 임명되며 외교관이자 미래의 대권 주자로서 발돋움하려 한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권력의 정점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안기부의 도청 녹취록, 이른바 '삼성 X파일'이 터진다. 홍석현이 삼성의 자금을 정치권과 검찰에 전달하는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그의 대권 꿈은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간다. 주미대사직을 사퇴하고 귀국하는 공항, 홍석현은 카메라 불빛 속에서 결심한다.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삼성을 넘어서는 거대한 무기를 만들겠다.'

3부: 검투사의 영입 (2011~2013)
[2011년, 종편의 개막과 JTBC의 출범]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법 통과로 종합편성채널(종편) 시대가 열린다. 홍석현은 'JTBC'라는 거대한 칼을 쥐게 된다. 초기 종편은 극심한 시청률 저조와 적자에 시달린다. 반전의 카드가 필요했다.

[2013년, 좌파손석희의 등장]
홍석현은 지상파와 라디오를 장악하며 대중적 신뢰도의 정점에 있던 손석희를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파격 영입한다.
한국 보수 진영과 삼성은 경악한다. "어떻게 그런 극좌파 성향의 인물을 데려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홍석현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언론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어야 하네. 그래야 아무도 우리를 무시 못 하지."
극좌 손석희는 JTBC 뉴스룸의 앵커석에 앉아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훗날 삼성을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병기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4부: 황태자를 겨눈 칼날 (2014~2015)
[2014년, 이건희의 쓰러짐과 이재용의 시대]
삼성의 거인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젊은 황태자 이재용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삼성의 승계 작업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외삼촌인 홍석현과 그의 아들 홍정도는 미소띤 모습으로 이 상황을 지켜본다. 당시 홍씨 가문은 삼성이 자신들을 그저 '방계 가문'이나 '도와주는 언론사' 정도로 취급하는 것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삼성 죽이기 배신의 서막]
JTBC 뉴스룸은 점차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다른 보수 언론들이 삼성의 눈치를 보며 침묵할 때, JTBC는 좌파 손석희를 앞세워 가장 잔혹하게 삼성을 몰아붙인다. 
조카인 이재용을 향한 외삼촌 홍석현의 보이지 않는 경고이자, 삼성을 배신해서라도 자신들의 미디어 권력을 천하에 증명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5부: 가짜 태블릿 PC, 제국의 시발점 (2016년 가을)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
전 세계를 뒤흔든 폭탄이 투하된다. 손석희 앵커의 오프닝.
"최순실 씨의 사무실 태블릿 PC를 입수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고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 광화문은 문재인 등 반국가세력이 중심이된 촛불로 뒤덮이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거대한 탄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팩트와 의혹의 경계선]
보수 진영과 최순실 측은 "JTBC가 입수한 태블릿 PC는 조작되었거나 완전히 가짜"라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입수 경로의 불투명성, 감정 결과의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좌파 반국가세력 주도 시위대와 이미 불붙은 민심은 멈추지 않았다. 홍석현은 이 거대한 폭풍의 중심에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청와대와 삼성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킹메이커'를 넘어 '신의 손'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6부: 조카를 감옥으로 보낸 외삼촌 (2017)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과 이재용의 구속]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다. 그리고 탄핵의 불길은 곧바로 삼성으로 옮겨붙는다. 
JTBC는 삼성이 정유라에게 말(馬)을 지원한 것을 '정경유착의 결정적 증거'로 몰아치며 이재용 부회장을 압박한다.
누나인 홍라희가 홍석현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삼성 가문이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홍석현의 JTBC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포승줄에 묶여 서울구치소로 향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외삼촌의 언론사가 조카를 감옥에 보낸 비극적인 잔혹극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홍석현은 죄없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직후 대선 출마설까지 흘리며 자신의 출세를 위한 마지막 주사위를 던진다.

7부: 승자의 저주, 돈을 물쓰듯 쓰다 (2018~2022)
[황태자 홍정도의 무리한 질주]
권력의 정점을 맛본 중앙그룹은 2세 경영인 홍정도 부회장의 체제로 급격히 전환된다. 반국가세력의 절대적 지지로 종편 1위라는 타이틀에 취한 홍정도는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완성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한국 지상파를 다 죽여버리겠다. 스포츠와 드라마에 돈을 아끼지 마라!"

[중계권 독점과 드라마 제작의 늪]
JTBC는 올림픽(2026~2032년)과 월드컵(2030년까지) 중계권을 무려 5억 달러(한화 수천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하해 독점 계약한다. 지상파 3사의 코리아풀을 깨버린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동시에 제작 자회사(SLL중앙 등)를 통해 수천억 원의 제작비를 쓰며 드라마를 찍어내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미디어 재벌의 모습이었지만, 이는 승자의 저주이자 파멸을 향한 차입 경영(빚으로 쌓아 올린 성)의 시작이었다.

8부: 갉아먹히는 기초, 번져가는 적자 (2023~2025)
[넷플릭스의 습격과 광고 시장의 몰락]
시대가 변했다. 미디어의 중심은 TV방송에서 OTT(넷플릭스, 유튜브)로 완전히 이동했다. 
JTBC의 본업인 방송 광고 매출은 해마다 수백억 원씩 급감한다.
수천억을 들여 산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은 지상파에 재판매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적자가 되는 독약으로 변했다. 메가박스 등 계열사들도 코로나 이후 누적된 적자로 신음하기 시작한다.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
홍정도는 콘텐트리중앙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고 사옥을 유동화하며 버티지만,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자 비용만 매달 수십, 수백억 원씩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삼성을 배신하고 얻은 미디어 권력의 화려한 탑이, 금융 비용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밑바닥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9부: 서막의 피날레, 부도와 추락 (2026년 6월 20일 현재)
[2026년 6월 12일, 디폴트 선언]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JTBC는 만기가 도래한 206억 원 규모의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전격적인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다. 시장은 거대한 충격에 빠진다.

[2026년 6월 14일~15일, 기습적인 회생 신청]
이틀 뒤, 중앙그룹의 지주사인 중앙홀딩스를 비롯해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P&I가 줄줄이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코스닥 상장사인 콘텐트리중앙의 주식 거래는 전격 정지된다.
6월 15일, 마침내 JTBC마저도 개국 15년 만에 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2026년 6월 19일, 최종 부도의 낙인]
우리은행 중앙기업영업본부에 지급 제시된 중앙일보의 기업어음 220억 원이 최종 부도 처리되고, JTBC의 어음 360억 원 역시 1차 부도 처리된다. 1965년 삼성의 자본으로 화려하게 태어나, 2016년, 손석희의 가짜 태블릿 PC로 한국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세상을 뒤흔들었던 중앙일보 패밀리 JTBC가 빚더미에 밀려 완전히 파산 직전의 몰락으로 내몰린 비운의 현실이다.

10부: 인과응보의 잔혹사 (에필로그)
[무너진 사옥, 홀로 남은 거울]
텅 빈 상암동 JTBC 사옥의 뉴스룸.
화려했던 스포츠 중계권 계약서와 드라마 기획서들은 법원의 압류 딱지가 붙은 채 뒹굴고 있다. 
출세를 위해 삼성을 배신하고, 
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의 단두대로 보냈으며, 
조카 이재용 마저 감옥으로 보냈던 중앙일보 패밀리 jtbc. 그들이 그토록 쥐고 싶어 했던 정치적 권력과 미디어 제국의 꿈은 결국 2026년, '부도'라는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늙어버린 홍석현과 고개를 숙인 홍정도가 법정관리 재판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비참한 뒷모습 위로, 한때 그들이 외쳤던 "팩트 체크"라는 단어가 
조롱처럼 울려 퍼지며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기획 의도 및 작품 총평]
이 작품은 단순한 기업의 파산 드라마가 아닙니다. 혈연을 배신하고, 언론이라는 무기를 사적으로 휘둘렀을 때 맞이하게 되는 
'권력의 법칙'과 '인과응보'를 다룬 대한민국 현대사 최고의 서스펜스 잔혹극입니다. 2026년 현재 일어난 생생한 부도 사태의 팩트를 기반으로 구성된, 한국 드라마 대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날카롭고 드라마틱한 명작이 될 것입니다. 
용의 눈물, 태양의 후예, 무인시대를 능가하는 명작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하드라마"

 

 

홍석현에 복수하지 않는 이유

https://m.youtube.com/shorts/2-_l2PGt_dM

행복은 지금 이 순간
/ 엄상익 (변호사)

30년 가까운 그 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사십대 중반쯤 한창 일을 할 때였다. 부산에 사는 고종 사촌형이 엑스레이 필름을 보내면서 부탁했다.
"폐암 진단이 나왔는데 실력 있는 서울 의사에게 확인 해 줘. 나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나는 사무실 건너편에서 개업하고 있는 진단방사선과 의사인 친구에게 그 필름을 가지고 갔다. 경기고와 서울의대를 졸업한 그는 실력있는 의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필름을 날카롭게 주시하더니 판결을 선고 하듯 말했다.
"석 달"

형은 정확히 석 달 후에 죽었다. 아직은 오십대 젊은 나이인데 하던 일을 그대로 둔 채 저 세상으로 건너간 것이다. 나도 불안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가서 검사를 받았다.

CT 모니터를 보던 친구가 마우스를 멈췄다. 화면을 확대했다. 다시 축소했다. 각도를 바꿨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친구의 얼굴 표정을 봤다. 친구의 손가락이 화면 한 점을 가리켰다.
"쓸개에 1.5센티짜리 혹이 보여."

친구의 표정은 시험지를 앞에 놓은 모범생 이었다.
"설마...?"
"설마가 아냐. 이 정도 크기면 악성화됐을 확률이 높아."
"네가 잘 못 봤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내 진단이 틀린 적이 없어."
그는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
병원을 나왔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내가 죽으면 저 하늘도, 저 거리도, 저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 와서 침대에 쓰러졌다. 죽는다는 말인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서울대 진단방사선과 과장으로 있는 친한 친구에게 내가 받은 CT필름을 보냈다. 오진이기를 바랬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안됐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암일 가능성이 많아.
일단 수술을 해봐.
그래야 확실히 알 수 있어."
권위자의 말이었다.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천장만 보고 있으려니 답답했다. 살아서 숨 쉬는 동안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현대 아산병원의 의사도 암이라고 했다. 수술 날짜를 잡았다.
하던 일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사무실로 다시 출근했다. 의뢰인이 책상 위에 놓고 간 돈봉투가 그대로 있었다. 평생 그 돈 때문에 뛰어다녔는데. 사건 정리를 시작했다.
맡고 있던 건들을 아는 변호사들에게 하나씩 넘겼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외 아들인 내가 없으면 돌 볼 사람이 없는 노인이었다. 젊은 아내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월남했다.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소식이 끊긴 채 평생을 사셨다.
내 서재의 책상 앞에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는 상황을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응."
"혹시... 제가 죽게 되면 양로원으로 가세요."
"-----"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눈에 물기가 괴더니 맑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걱정은 말어. 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

나는 창밖을 봤다. 하얀 새가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작년 겨울, 퇴계로 쪽을 지나가다가 본 담벼락의 문구가 떠올랐다.
'구걸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행복입니다.'
그때는 웃었다. 지금은 노숙자가 부러웠다. 자주 보던 감옥 안에 있는 죄수들이 부러웠다. 깜깜한 동굴 속에 갇혀 있다고 해도 살고 싶었다.
수술하기 위해 입원하기 전날 밤이었다. 아내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보."
내가 아내를 보았다.
"응."
"내가 만약... 아이들 잘 부탁해."
아내가 손을 멈췄다.
"당신 새 행복 찾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
"그만해요."
아내는 손에 잡고 있던 침대 시트를 집어 들었다. 접었다. 펼쳤다. 다시 접었다.
나는 천장을 봤다.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깃을 비비고 사는 게 행복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수술 당일 아침이 밝았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봤다. 5월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렀다.
차창 밖으로 야산이 보였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연두빛이었다. 아름다운 연두. 이 길로 다녔는데 저게 항상 저기 있었나.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신호등에서 차가 섰다. 횡단보도를 사람들이 건넜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 모두들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나도 어제까지는 저랬는데. 부러웠다.

수술 전날 저녁, 의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암이 주위에 전이돼 있으면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암은 생존 기간이 평균 6개월입니다. 여기 서명하시죠."
펜을 들었다. 이름을 쓰는 볼펜이 떨렸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됐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이동 침대에 올랐다. 중앙수술실 문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헤어졌다. 천정에 달린 하얀 등이 내 시야에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 같았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십자형 수술대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발가벗긴 채 그 위에 눕혀졌다. 손목과 발목을 묶였다. 실험실의 개구리가 떠올랐다.
인간이 별 게 아니었다.
수술실 안이 하드 락 음악소리가 꽝꽝 울렸다.
마스크를 쓴 의사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마취의가 주사를 놓았다.
"하나, 둘, 하면서 천천히 숨을 쉬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몇 초가 남은 삶의 전부일지 모른다.
살아온 날들이 슬라이드 영상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회가 일었다.
돈을 좇았다.
승소를 좇았다.
그런데 내가 없어지는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었는데 나는 그걸 보지 못한 채 죽는 게 억울했다.
그래도 마지막 기도는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아버지 어머니 아래서 좋은 교육받고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수술실 천장이 두 쪽으로 쫙 갈라졌다. 나는 깊은 어둠의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이었다. 캄캄한 창고 같은 곳. 한구석에 나는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순간 하얀빛이 퍼지면서 세상이 열렸다. 눈이 부셨다. 의사 두 명이 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맥을 끊어내고 가스를 주입해 몸통을 복어같이 만들고 내장을 적출하는 여섯 시간의 수술이 끝났다.
한 달 후 병리검사 결과가 나왔다.
'전이 없음.'
나는 살아났다. 그리고 배웠다. 살아있음이 축복인 것을.
세월이 흘러 나는 칠십대 중반이 되었다. 그때부터 30년을 더 산 것이다.

한 달 전 고교동기가 동해에 있는 내게로 찾아왔다.
"나 암 말기래. 뼈까지 전이됐대"
그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암이 아니라도 우리 이제 죽을 나이 아닌가?"
내가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칠십대 중반이면 우리는 살만큼 살았어.
본전을 다 찾은 거지.
암이 아니라도 다 죽어. 어차피 죽을 건데 무엇이 문제지?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선물로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 친구가 한참을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그러네"
나도 그랬다는 과거의 얘기와 다 죽는다는 말이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인생은 지금 이순간이 행복. 그리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임은 아닐까
        *****************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이 얼마나 찬란한 선물이었는지 깨닫는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요, 큰 아쉬움 일 수도 있겠다.
부활.
그 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금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열림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젊은이에게는 가혹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말을 받아 들이면서,
우리는 모두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고 있다.
오늘 하루, 평범하게 지나가는 이 시간이 기적과도 같은 시간임을 안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이 피어 있는 이 순간처럼, 숨 쉬고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옆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 묘비명을 이렇게 쓰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했습니다.
     모 두 감사합니다."

         ㅡ 옮긴 글 ㅡ

 

♡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삶의 후반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젊은 날에는 늘 위를 보며 살았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조금만 더 가지면
조금만 더 인정받으면 마침내 만족할 수 있을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빴습니다.
쉬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오르는 동안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아이의 얼굴이 얼마나 자랐는지, 부모의 등이 얼마나 굽어 갔는지.
삶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입니다.

그토록 붙잡으려 했던것들은 하나도 내 것이 아니었고,
그토록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높이 오르면 다른 하늘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하늘은 늘 그 하늘이었고,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의 욕망뿐이었습니다.

무상(無常)은 책 속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걷던 사람이 먼저 떠나는 일,
건강하던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일,
젊음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일.
붙들 수 없는 것이 삶의 본질임을 이제는 압니다.
공(空) 또한 비어 있다는 허무가 아니라 아무것도 영원히 내 것일 수 없다는 맑은 인정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내 것이라 우기지 않아도 되고,
더 얻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텍쥐베리는 말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그 말이 가슴으로 이해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
곁에 있어 주던 사람의 침묵,
말없이 건네던 따뜻한 손,
아무 일 없던 평범한 하루.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삶의 후반은 더 오르는 시간이 아니라 덜어내는 시간입니다.
쥐고 있던 것을 놓고 쌓아 두었던 마음을 비우고 남은 것의 고마움을 배우는 시간.

이제는 압니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았고 행복은 도착해야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숨 쉬는 이 순간, 함께 있는 이 사람, 조용히 저무는 하루가 이미 충분한 선물이었습니다.

" 소중한 것은 "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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