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목요斷想 외3.

太兄 2026. 3. 12. 20:42

 목요斷想  2026.03.12.

**틈이있어야 人間的(인간적)이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纖細(섬세)하게 짠 카펫에 意圖的(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 놓습니다.
그걸 페르시아의 홈이라,부릅니다.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깨진 구슬 하나를 꿰어 넣는다.
그걸 靈魂(영혼)의 구슬이라,부릅니다.

心理學(심리학)자의 硏究(연구) 結果(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完璧(완벽)한 사람보다,어딘가에 不足(부족)한 듯 빈틈 있는,사람에게 人間(인간)미와 魅力(매력)을,느낍니다.
濟州島(제주도)의 돌담은,여간한 颱風(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돌담을 살펴보면 돌과 돌의 사이를 메우지,않았기에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人間關係(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설 빈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物理的(물리적) 틈새가 아닌,제3의 空間(공간)인 틈새가 있을 때,人間關係(인간관계)가 形成(형성)됩니다.

내 마음에 빈틈을 내고 나 自身(자신)의 빈틈을,認定(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빈틈을 받아들이는게 濟州島(제주도)의 돌담처럼 颱風(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人間關係(인간관계)를 만드는 祕訣(비결)입니다.
때론 모자람도 美德(미덕)입니다.
빈틈이 있어야 햇살도 파고듭니다.

빈틈없는 사람은 博識(박식)하고 論理(논리)整然(정연)해도 정이 가질 않습니다.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들어갈 여지가 있고,이미 들어온 사람을,便安(편안)하게 합니다.
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疏通(소통)의 瘡口(창구)입니다. 굳이 틈을,가리려 애쓰지 말고,있는 그대로 열어 놓을,必要(필요)가 있습니다.

그 빈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생의 同伴者(동반자)가,되어 삶을 豐饒(풍요)롭고 幸福(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틈은 虛點(허점) 이 아니라 여유 입니다.

 

🌱《청라언덕 위의 첫사랑 이야기》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으로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대구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대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은 대구 근대문화의 중심지다.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치료로 유명한 대구의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바로 동산의료원이다.

박태준은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선구자로서 1920년 동요 '기럭기럭 기럭이...'라는 '기러기', 1925년 '24세의 나이에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의 '오빠생각', 새나라의 어린이 등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를 작곡했고, 1922년 그가 작곡한 우리나라 첫 가곡인 '동무생각'의 노랫말이 바로 이 언덕 위의 돌비에 새겨져 있다.

마산 창신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창신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노산 이은상은 1년 전 이 학교로 부임한 태준이 지은 동요를 좋아했다.

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서 바라보는 월포의 일몰을 좋아했고, 노비산에서 구마산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은상은 푸른 담쟁이 가득한 청라언덕과 좁고 긴 90계단이 아름다운 태준의 고향 이야기를 좋아했다.

태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은상은 꿈결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곤 했다. "박선생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고운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그 날도 태준은 은상과 함께 노비산 언덕에 앉아 있었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이 둘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문득 은상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런데 박 선생님! 선생님의 첫사랑은 어떤 분이셨나요?"라고 물었다.

은상의 뜬금없는 질문에 태준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첫사랑은 뭐, 한번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걸요.", "첫사랑이 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영영 가슴 속에 박제되는 사랑이고요."

🌱
“제가 다니던 계성학교 가까이에 있는 신명여고의 여학생이었어요. 함께 교회에 다녔는데, 한번은 그 여학생이 자두를 한 바구니 가져와 교회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전 그 자두가 저한테까지도 올까 하며 가슴을 졸이며 
있었지요. 그러다가 결국 화장실로 달아나 버렸어요. 혹시 자두를 못 받게 된다면 내가 자리에 없었으니 주지 못했을 거라 위안하려고요.

그 후 돌아오니 오르간 위에 자두 두 알이 놓여 있었어요. 깨끗한 손수건이 자두 위에 덮여 있었지요.

그 자두를 한참 책상 위에 두고 날마다 바라보았어요.
더는 둘 수 없을 만큼 썩고 말라버렸을 땐 꼭지를 따서 그 꼭지를 습자지에 싸서 보관했지요.

교회로 가려면 청라언덕을 지나가야 했어요.
여학생은 저녁 예배를 드리러 그 길을 지나곤 했는데, 전 오르간 연습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언덕으로 가 그 여학생이 지나는 걸 바라보았어요.

손수건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다가올 그 시간을 아껴두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 굳게 결심을 하고 그녀를 기다렸어요. '자두 고마웠어요' 이 말을 수백 번도 더 연습하면서.

라일락 이파리가 잔뜩 두꺼워진 칠월 하순이었는데, 그즈음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라’.

하지만 라일락 이파리가 어떤 맛인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문득 저는 그 맛이 궁금해졌어요. 사랑의 맛이 궁금해졌던 거죠. 손을 뻗어 연한 잎 하나를 따서 입안에 넣었는데, 아 그 맛이란! 그건 먹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어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은 맛이었는데 뱉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 기다림이 허사가 되고 말 것 같았거든요.

그 때였어요. 멀리 그녀의 모습이 보였어요.
기다림은 그렇게 길었는데 그녀의 걸음은 어찌나 빨랐던지 내가 이파리를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그녀는 내 코앞에 마주 있었지요.

아직도 입안에 가득한 그 맛 때문에 혀가 얼얼하고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해졌지요.

그때 제가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바보같게도 "라일락 고마웠어요"라고 말해버렸죠.

어휴, 그렇게 골백번 연습한 '자두'라는 말 대신 '라일락'이 고맙다니요."

순진한 아이처럼 귓불이 붉어진 태준을 바라보며 은상은 배를 잡고 웃었다. "아이고, 도대체 그 이파리 맛이 어땠게요?"

“그건 이 선생님이 직접 맛보셔야 해요. 사랑의 맛이 그런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태준은 얼굴을 활짝 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저를 보며 웃었어요. 제게 눈을 맞추고 소리없이 빙그레 웃었답니다.
그후 그녀는 말 한마디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어요."

🌱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은상이 갑자기 생각난 듯 수첩을 꺼내 무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선생님 곡에다가 그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으세요. 그러면 그 소녀와의 사랑을 노래 속에서나마 이룰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가사를 써 드릴 테니 곡을 붙여 보시겠어요?”

잠시 후 은상은 태준의 고향 추억과 눈앞에 펼쳐진 월포 바닷가의 풍경을 담은 시를 건네주었다.

수첩을 받아든 태준의 눈동자가 따스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노랫말이군요."

🌱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들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태준은 며칠 전에 작곡한 곡을 떠올렸다.
그 음률 속에서 푸르던 청라언덕과, 언덕의 붉은 돌담과 붉은 담을 휘감은 푸른 담쟁이와, 그 길을 장난치며 오르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본유학 중 폐결핵에 걸려 돌아와 24살의 나이로 그 아름답던 생을 마감했던 형이었다.

그리고 창포물을 들인듯 윤기 나던 소녀의 검은 눈썹과, 그 눈섭 아래 싱그럽던 소녀의 미소가 태준의 뺨을 조용히 만지고 지나갔다.

멀리 파도 속으로 백합 같은 소녀의 희디흰 얼굴과 저녁 조수처럼 떠난 흰 새 같은 형의 얼굴이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어느 시인이 쓴 이 사연을 읽고 나는 그날 내내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선율 속에 담겨진 그의 풍부한 서정성은 당시 우리 민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위로해 주었고, 그리움과 애잔함을 달래 주었다 한다.

이 땅의 연인들이여,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세요." 박태준이 말한다. "아 그 맛이란 정말 죽을 것 같은 맛이었어요!"
***
박태준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합창지휘를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연세대학교에 종교음악과를 설립하고 초대 음대학장을 지냈다.

 

  < ‘인류대가족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자 >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 가야할 체제(體制)와 주의(主義)를, 그 동안에 제기되었던 많은 것들을 수렴(收斂)하고 총합(總合)하여서, ‘인류대가족 자유민주주의’로 운영해 보자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긴 역사에서 인류가 낳았던 많은 주의(主義)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들은 봉건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독재주의, 방임주의, 신정주의(神政主義),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등이 있다. 여기서 최근에 중동에서 전쟁이 크게 비화되고 있는 이유는 신정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갈등이다.
  신정주의는 종교지도자나 종교 교리가 국가의 정치권력을 직접 지배하거나 통치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즉 경전(經典)이나 교리를 기반으로 하여서 국가의 법과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의 권위에 의하여 임명된 성직자나 종교지도자가 장기간 최고 권력을 행사한다. 이에 비하여 자유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뜻을 모아서 지도자를 선출하고, 임기도 제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기에 많은 국가들이 이를 선호하고 따르고 있다.
  신정주의 체제가 더러 있다. 동남아의 불교국가에서는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며, 불교신자가 평생 최고 권좌를 차지한다. 그리고 국가 운영방식을 최대한 자유민주주의를 따르고 있다. 바티칸에서는 선출된 교황이 평생 권좌에 있게 되며, 운영방식을 최대한 자유민주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중동의 신정주의에서는 이슬람이 큰 교세를 이루고 있고, 왕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자는 신정주의 체제의 도움으로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이 신정주의가 안타깝게도 자유민주주의보다는 독재주의 체제와 결합되면서 많은 폐단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즉 빈부 격차 심화, 권력자의 가문들이 각종 이권을 차지하는 것, 그로 인한 심각한 부정부패 발생, 과도한 전쟁 준비 등이 발생하고, 이는 국민들의 피폐(疲弊)로 이어지게 된다.
  신정주의도 나름대로 역사가 있고, 정통성이 있다. 그러나 어떤 주의나 체제가 좋은지 나쁜지는 운영 결과를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 중동국가들은 큰 노력이 없이도 돈을 잘 벌수 있는 노다지와 같이 땅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기름을 팔아서 거액을 잡았다. 그리고 이 돈을 국민 전체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살게 지원하고, 다른 나라들에 원조나 후원도 해 주면 칭찬을 받고 박수를 받을 것이다. 신정주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슬람의 신정주의가 독재주의와 연대하는 운영 방식이 되면서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다. 즉 장기집권, 현대판 귀족 계층 형성, 왕가의 각종 이권 독점으로 인한 자본의 편중, 부정부패, 여성 억압(히잡 강요, 결혼 제한, 직업 제한 등) 등이 심각하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이런 체제에 저항하기 위하여 아랍의 봄(Arab Spring)이 2010년 12월부터 2011년 사이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퍼졌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이라, 예멘 등에서 자유민주주의 바람이 부는 듯 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정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였다. 그러나 지도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공권력을 동원하여서 억압했다. 기득권의 달콤한 맛에 길들인 자들이 절대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겉으로 내세우는 종교 교리의 핵심과 사뭇 다른 국정 운영이었다.
  지금 이란을 중심한 중동에서 다시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신정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권력층과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는 미국과 이스라엘과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란의 하메네이는 1979년에 혁명을 일으켜서 왕정을 몰아내고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 사이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 기간에 이라크와 전쟁도 치렀다. 그런데 이로써 만족하지 않고, 그는 1989년에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가 되었다.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었고, 혁명수비대를 조직하여서 자기의 권좌를 계속 유지하였다. 아쉽게도 초심(初心)을 잃은 것이다. 마침내 그는 2026년 2월 28일에 사망했고, 47년간의 집권이 끝났다.
  무릇 종교공동체는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것이 종교공동체의 본질이다. 본질을 팽개치고 장기적으로 독재적인 권력의 꿀맛에 취하다보니까 지금과 같은 비극적 사단(事端)이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호메이니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워서 신정주의와 독재주의를 결합하는 형식의 체제를 지속하려는 태도를 가졌고, 그러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곧장 공격을 가하였고, 차제에 이란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
  이란 자체에서 자유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면서 공격을 저울질하고 있다. 전쟁 배경에 자원 활용, 핵무기 제조 근절 등의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이란이 신정주의를 벗어나서 자유민주주의를 택하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는 곧 중동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슬람의 신정주의에 변화가 있기를 소망한다. 여성들에게 히잡을 벗게 하고, 결혼 제한 철폐, 정치 참여 등의 제도와 문화로 바꾸어 주기를 바란다. 신앙을 유지하면서, 21세기에 조화를 이루는 새 문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필자는 ‘인류대가족 자유민주주의’를 주창(主唱)한다. 왜냐하면 종교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공통적으로 ‘인류대가족 사회’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을 합하여서 ‘인류대가족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한다. 신정독재주의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만도 아니다. ‘신정(神政)’을 ‘인류대가족’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인류대가족이란 단어에는 굳이 어떤 특정 종교 이념이 들어가지 않고, 일반적, 합리적, 대중적, 상식적, 평등한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과거 역사를 보고 잘못된 폐단(弊端)을 고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주의와 체제로 나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어떤 공동체나 국가든지, 장기 집권, 독재, 특혜독점, 차별 등의 행태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최대한 자유, 평등, 시장경제, 민주적 운영방식 등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부디 선조들이 피를 흘리면서 이루어 온 ‘인류대가족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로써, 각자의 신앙을 가지면서, 인류 전체가 같이 공생 공영하는 방향으로 혁신을 하고, 도약을 해 보자. (一光 趙應泰) 

 

사치라는 病병

원양어선 선장시절,

기지에서 하와이로 출장가는 주재원 K씨가 수행자의 롤랙스 시계를 빌려 달랬다.

주재원이 기지로 돌아와 시계를 돌려 주면서 롤랙스 시계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노신사가 시계를 보더니   자신은 삼십년 전 결혼 때 받은 낡은 시계가 지금도 잘 간다고 했단다. 

원조로 연명하는 나라의 국민이 원조를 주는 나라의 국민 보다 사치를 한것이 부끄러웠단다.

훗날 수행자는 가지고 있던 롤렉스 시계 두 개를 남에게 주고 없애 버렸다.

역사에서 사치라는 병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 내었을까?

사치란 병이 얼마나 많은 나라의 민란의 원인이 되었고 얼마나 많은 나라를 망첬을까?

지구상에 우리나라 국민 보다 사치하는 나라는 알지 못한다.

역사에서만 그런가?
김건희의 사치가 윤석열의 눈을 가려 정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가?

고급 브랜드에 환장해 백화점으로 뛰어가는 모습에서 나라 미래의 절망을 느낀다.

국고가 텅텅 비어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해서 수행자는 사치가 자신과 사회와 나라를 망치는 어리섞은 질병으로 취급하며

사치하는 사람은 자랑거리가 없고 머리가 텅텅빈 어리섞은 바보로 본다. 

자랑거리를 찾아보자.
사치하는 돈으로 남을 유익하게 하는 자선사업이면 어떤가?

無 碍  성 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