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한국의 홀수 문화 외4.

太兄 2026. 3. 13. 20:01

    *한국의   홀수 문화 

<홀수>는 우리 민족 精神文化의 <깊은> 뿌리다.
<홀수>는 딱 맞아- 떨어지는 <짝수>에 비해서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중에서도 특히 < 3 >을 選好(선호)하고 있지만 1 .3 .5 .7 .9  모두가 우리 생활 속 <깊이>  脈(맥)을  내리고 있다.

우선  <國慶日(국경일)>이라든가 名節이 모두 <홀수 날>이다
뿐만 아니라 때 맞춰서 돌아오는  節氣(절기)가  거의  <홀수 날>에  들어있다.
<설날>과 <추석>이 그렇고 정월 대보름 (1월15일) 삼짖날(3월3일 ) 단오(5월5일 ) 칠석(7월7일)  백중(7월 15일) 이 그렇다.

9월 9일은 <구중>이라 하여 남자들은  詩(시)를 짓고 여자들은 국화전을 부쳤다
생활 곳곳에 뿌리 내린 < 3 >의 의미는 더욱 다양하다.
사람이  죽으면 3일葬(장) 아니면 5일장을 치르는 것이  보통이지 4일장이나  6일장은 없다.
역시  삼우제(三虞祭)가 있고 <49제>라는 追募(추모)의 날이 있다.
亡者(망자) 앞에서는 홀수 날을 택하여 최대의  예우를  지키는 것이 뿌리 깊은 전통이다.
심지어 祭物(제물)을 올려도< 홀수>로   올리지 <짝수>로는  차리지 않는다.

돌탑을  쌓아도 3 5 7 9 홀수층으로 올렸을 때에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들면서 보는 마음을  편케 한다.
애기를 낳고  금줄을 쳐도세이레 (三七日)동안 출입을  삼갔다.
신성한  생명을  지키면서 축복하자는 삼신할미의 준엄한  고지(告知)다.
봉투에  돈을 넣어도 우리  서민들은 짝수가 아닌 3만 원 아니면   5만 원을 넣었지 4만원 이라든가 6만 원짜리 <기부 촌지>는 보기 어렵다.
이렇듯 < 3 >이라는 숫자가 우리들 생활 중심에서 軸(축)을 이루고 있다.

춥고 긴긴 겨울을 삼동(三冬)이라  했고
무더운 여름을  건너가려면 삼복(三伏)을  견디어야 한다.
무리를  일컬어<삼삼오오>라 했고 색깔을  이야기할 때도<삼원색>이 근원이다.

상고(上古)시대에 우리나라 땅을 마련해 준 삼신(三神)이 있다 하여 생명신으로  섬긴다
삼재(三災) 가  있는가 하면 또 삼재(三才)가 있다.
현대에는  시위문화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의 극치다.
가까운 <이웃>을  일컬어 <삼 이웃>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가 하면
잘 하면 술이 <석 잔 > 못 하면  뺨이 <석 대>다.

힘겨루기  판을 벌여도 <5판 3승 제>를  하며 
만세를 불러도 삼창(三唱)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다.

<짝수>는 죽은 者(자)의 숫자란   말이 있고
<홀수>는 <산사람>의 숫자란   말도 있다.
그래서 <祭祀床(제사상) >에는 과일을   홀수로   올리고 <절>을 두 번   하지만 산 사람에겐 절을  <한 번만>  하면 된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목적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생활 속 곳곳에   숨어있다.
그만큼 < 3 >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의 < 디딤돌>이요 구름판으로 안정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역사란 시간이 흘러 후세에 알려진다.

- 행운의 38선 -        

역사적으로 38선은 어떻게 그어졌나?
김종필 전(前) 총리는 물론, 다수의 국민이 모르는 역사적 사실은?

김종필 前 국무총리는 한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2년 11월 미국에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만났을 때다.
나는 처음에 다소 건방진 태도를 보인 케네디 장관을 향해
“당신네 나라가 우리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분단의 아픔을 안게 한 원인을 만들었소.”라고 따졌다.

그가 “그 이유가 무엇이오?”라고 묻기에
이렇게 답해줬다.
“38선을 누가 만들었소?
딘 러스크 육군 대령이 긋지 않았소?
왜 아무 죄 없는 한국을 반으로 갈라 놓았느냐 말이오.
우리를 분단시켜 싸우게 만든 것이 바로 미국이오.”

로버트의 형 '존 케네디' 대통령 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오른 러스크는 대령 시절이던 1945년 8월 한반도 지도에 38선을 그어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케 하는 초안을 만들었다.
"장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전략적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만일 JP가 케네디 법무장관이 아니라 러스크 국무장관을 그날 만나서 똑같은 소리를 했다면 러스크는 아마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그때 38선을 긋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을 것이오.
그러므로 당신은 나한테 오히려 감사해야 하오."

일본이 항복한 날 미군 최선봉 부대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1,000km나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소련군보다 먼저 한반도에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때 소련군은 이미 함경도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오고 있었고,
일주일 정도면 부산까지 밀고 내려갈 수 있었다.

이를 우려한 미국은 소련에게 38도선까지만 내려와 북한 지역에서만
일본군의 항복을 받으라고 제의했던 것이다.

1990년에 출판된 딘 러스크 (Dean Rusk) 회고록
'As I Saw It (내가 본대로)' 124쪽에 이렇게 적혀 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항복을 받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무부와 국방부는 의견이 달랐다.

국무부는 중국 본토의 가능한 한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 만주의 주요 지점들이 우리 점령지역에 들어가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육군은 우리 군대가 아주 조금 있거나 거의 없는 지역들은 아예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은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육군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 대륙에 상징적으로
군대를 좀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에 발판 같은 걸 하나 마련해 두기로 했다.
  
일본이 항복한 바로 그 날인 (미국 동부시각) 8월14일 늦은 밤,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장) 찰스 본스틸 대령과 나는 (국무부, 국방부, 해군이 합동회의를 하고 있던 회의실)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반도 지도를 자세히 보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이 점령할 지역을 선택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중략) National Geographic 잡지사가
만든 지도 한 장을 놓고 우리는 서울 바로 북쪽에서 한 편리한 경계선을 찾았으나 지리적으로 자연적인 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위(北位) 38도선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국무부, 국방부, 해군 협의회는 우리 건의를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고,
놀랍게도 소련 역시 이의 없이 동의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 양국 군대가 위치한 지점을 고려한다면 소련이 38도선보다 훨씬 더 남쪽의 선을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러스크의 이 증언을 보면,
일본과의 4년 간 전쟁에 지친 미국 군부는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 했으나 국무부가 우겨서 한반도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한 한반도 북쪽에 선(線)을 그어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미국 군부의 희망대로 그때 한반도에 미군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소련군은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하고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 (당시 33세· 본명 김성주)을 앞세워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었을 것이 뻔하다.

실제로 소련은 당시에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동유럽 여러나라 전부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때 미국이 38선을 그은 것은 우리 한민족에 엄청난 행운이었다.

38선이 그어질 당시의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1955년 출판한 회고록
《Memoirs by Harry S. Truman 》
<트루먼 회고록>
1권 444∼445 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듣기로는 번즈 국무장관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멀리 한반도의 북쪽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도록 선을 그으라고 국방부 작전국 정책과에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한반도로부터의 먼 거리와 병력 부족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에 직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한반도에 진입하는 쪽에서 한반도의 일본군 항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소련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파견하기에는 38도선도 사실은 너무 멀리 잡은 것이었다.

소련이 이의를 제기해서 우리가 실제로 병력을 제 때에 보낼 수 있는 거리에다 선을 그어야 했다면,
그 선은 38도선보다도 훨씬 남쪽에 그어졌을 것이다.

북위 38도선을 따라 군부가 선을 그었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의 옛 수도 서울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단 한반도에 들어간 소련군은 곧 38선을 봉쇄하고, 그 선 이북의 자기네 점령지역을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을 앞세워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독일이 연합국에게 1945년 5월7일 항복한 뒤,
소련은 전쟁 중 점령한 동부독일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나라들을 전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1945년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점령한 서부 독일과 일본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채택하여 오늘날 경제대국들이 되었고,
역시 미군이 점령했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0위 경제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점령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가 1989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간신히 자유를 되찾았고,
역시 소련군이 점령했던 북한은 아직도 공산독재에 집착하는 무능한 김 씨(金 氏) 세습정권에 의해 지구상 가장 가난하고 자유 없는 나라가 되었지 않은가!

38선 형성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김종필 씨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고 있다가 10여년 전 러스크와 트루먼 대통령 회고록을 읽어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 때문에 한반도가 38도선을 경계로 분단 되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전쟁의 비극도 발생하였고,
아직까지 우리민족이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우리 민족의 '불행의 씨앗' 이라고 주장하며 순진한 학생들에게 반미감정을 불어넣고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지난 70년 간 미국은 우리를 크게 세 번 도와주었다.

첫 번째는 1945년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우리 민족을 일제의 35년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두 번째는 38선을 그어 남쪽에서나마 시장경제 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해준 것이고,

세 번째는 김일성이 시작한 6·25전쟁 때 즉각 군대를 보내 김일성의 적화(赤化) 야욕을 분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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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애환의 38선에 대한 진실을 위 자료에서 잘 파악하시고 널리 주위에 전파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마트면 우리도 東구라파처럼 공산화되어   김일성 밑에서 북한처럼 노예생활 할뻔 했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안전하고 편리한 나라도 없습니다.
그에 더하여 기후 좋고 아름다운 금수강산까지 갖고 있어 가히 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BBC 조사 결과, 한국을 싫어하는 나라 TOP 10 — 그런데 이유를 알고 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BBC조사 #한국싫어하는... - https://youtube.com/watch?v=7LU0g4X-a00&si=Hj2_31zwfYe8fnkF

 

  < 중심인물의 중요성 >

 

  어떤 공동체에서든지 중심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그의 가치관과 역할에 따라서 공동체의 행복과 불행의 양(量)과 질(質)이 달라진다.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직장의 사장, 자치단체의 장(長), 군대의 장교, 국가의 고위공직자, 대통령 수상 총리, 등이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갖고, 평등 시장경제 자본주의 등의 제도와 문화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면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공산주의, 독재로 가면,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예를 들면, 손흥민 축구선수가 10년간 영국 토트넘 훗스퍼에서 뛰다가 2025년 여름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LAFC로 갔다. 2600만달러의 이적료도 받았다. LAFC구단장 소링턴이 손선수를 적극 설득했고, 손흥민도 그 동안의 유럽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다른 나라로 가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손선수가 가입한 이후로 LAFC 승률이 훌쩍 향상되었고, 관중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구단의 이익도 증가했다. 반면에 손선수를 가볍게 보았던 토트넘은 패배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1명의 선수, 손흥민의 중심인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계가 지켜보고,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13년부터 집권한 마두로 대통령이 중국과 연대하고, 장기독재, 부정부패, 마약, 폭력 등에 연계되면서 온갖 실책(失策)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국가 경제는 피폐하였다. 석유 산유국이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다. 결국 지난 1월 3일에 미국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나라는 온통 혼란에 빠졌다.
  이란의 경우,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로 인하여 1981년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45년간 독재체제에 머물러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설립되게 하려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란은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항전 기세를 올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공격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면 더 큰 불행이 있을 것인데, 과도한 욕망으로 인하여 이를 외면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독재와 함께 국민들의 빈곤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는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후에 승계하였고, 온갖 권력을 다 쥐었다. 아버지 김정일보다도 더 독재가 심하다. 국민의 자유, 평등, 경제 성장은 뒷전이고, 오직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다. 국민들이 굶어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그저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에 몰입한다.
  중국은 시진핑이 2012년에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였고, 2013년에 국가 주석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모든 권력을 다 갖고, 2018년에는 주석의 임기제한을 없앴고, 지금까지 14년간 독재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란에도 엄청난 돈을 퍼부어 주면서 도로 확충 항만 구축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기름을 싼 값에 갖고 갔다. 지금 이란에 전쟁이 생기면서 그 돈이 날아가 버렸다.
  국가가 엄청난 돈을 후원해 주면서 싼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서 외국에 팔았다. 그런데 싼 것이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그 제품의 성능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군사무기조차도 성능이 좋지 않았다.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고 있다. 또 언론을 비롯한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있어서 공산당 체제에 좋은 정보만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고, 이제 민심도 극에 달하여서 제2의 천안문 사태 발생을 걱정하고 있다. 나라가 뒤숭숭하다.
  대만에 대해 계속 무력시위를 하고 협박을 한다. 바다를 무단으로 점령하는 과욕을 부리고 있다. 또 2002년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펼쳐서 만주 및 한반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강조하고 역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변(强辯)한다. 또 부정선거 조작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며왔다. 그런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다가 지금 강하게 당하고 있다. 진실보다 거짓을 앞세우고, 종교를 억압하고, 언론 자유와 시장경제와 평등을 거부한 까닭에 국민들로부터 그리고 세계로부터 소외를 당하여서 지금 경제 파국이 생기는 위기 상태이다.
  이처럼 가정, 직장, 사회, 스포츠, 국가 등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중심인물의 가치관과 능력과 판단이 중요하다. 인간의 본성적인 요구를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공명선거, 평등, 협력, 부정부패 근절, 부정선거가 아닌 공명선거 등의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이런 내용에 대해서 늘 재고(再考)해야 할 것이며, 실수를 범하지 않고, 번성하고 부흥하여서 만방(萬邦)을 비추는 동방의 등불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一光 趙應泰)

 

"꿔다 놓은 보릿자루"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여러 사람속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말없이 가만히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존재감
없이 제 역할을 못 하거나, 모임에서 소외되어 있는 상황을 뜻하며, 조선시대 반정(反政) 모의 중 구석에 둔
보릿자루를 사람으로 착각했던 일화에서 유래한 관용구입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중종반정과 연관된 말인데 1506년 음력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이 시기는 벼 수확을 앞두고 있는 시기여서 ‘보리’가 주식일 수밖에 없었고, 보리는 그만큼 중요했다.
조선 10대 왕 연산군의 폭정이 심화되면서 몇몇 신하들은 중종반정을 꾸미게 되는데 이 역모를 주도한 사람이 박원종이다.

​거사 직전 박원종 집에 여럿이 모여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궁궐에 집결하는 시간까지 논의를 했는데 역모 계획이 누설될까 두려워 박원종 집의 어둠속에서 숨죽이면서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희안(成希顔)이 회의를 하던 중 어두운 방안에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희미한 사람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성희안은 모인 사람의 숫자를 세게 되는데 모이기로 약속했던 사람보다 한 사람이 더 많자 그 희미한 사람이 첩자라고 의심하고 박원종에게 알렸고 박원종은 희미한 어둠 속의 사람을 살피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첩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옆집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보릿자루 위에 윗도리와 갓을 올려 놓으면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모임에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보리의 수확은 5~6월 정도이고 벼의 수확은 9~10월이다.
벼의 수확으로 겨우내 겨우 버텼다면 보리의 수확은 5~6월까지는 버텨야 한다.
이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보릿고개' 시기가 되면 나무 껍질을벗겨 먹거나 진흙까지 먹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변비가 생기게 되고, 배변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오늘날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라는 말은 심한 변비로 인해 항문이 찢어지게 된 것에서 유래됐다.
그렇게 '보릿고개'를 버티고 5~6월이 되면 보리가 수확되면서 배고픔이 해결되지만 이 역시 8~9월이 되면 보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보리는 쌀과 달리 세금 징수의 대상이 되지 않아 쌀에 비해 여유가 있었기에, 이웃에게 보릿자루를 빌려주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는 이런 풍습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