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외환위기' 조짐…재정적자 확대하며 가속페달 밟는 이재명 대통령
[김기훈의 생각]
한·미 투자합의로 외환보유액 동원 어려워
금리 올리고 재정긴축해 달러 유입 늘려야
이 대통령의 돈 풀기 정책은 외환위기 촉발 요인

한 외환 전문가는 최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정부가 긴급 대책에 나서는 모습을 ‘3차 외환위기’ 조짐이라고 풀이했다. 시장에 달러가 부족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는 급락)하는데도 정부가 긴급 투입할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원화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외환위기 발발을 막으려면 금리를 높여 국내 달러의 유출을 막고 해외 달러 유입을 촉진해야 한다. 또 재정 긴축을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줄여 원화 가치를 더 높여야 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투자 압박으로 외환시장의 단기 미세 조정에 투입할 가용외환보유액은 사실상 제로(0) 상황이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은 대대적인 재정적자를 공언하며 돈 풀기에 나서면서 외환위기를 촉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차 외환위기
1차 외환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의 치적 욕심과 재정경제원(옛 기획재정부) 외환 담당 관료들의 외환보유액 관리 부실이 주요 원인이 되어 발발했다. 김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에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목표를 이루고 싶어했다. 임기 중반의 반도체 호황에 취한 경제 참모들은 1996년에 238억 달러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지만 1만 달러 달성을 위해 저환율을 고집했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북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장부상으로는 수백억달러이지만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단기간에 회수할 수 없어서 실제 가용한 외환보유액은 2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국가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폭등했다. 한국은 부도 직전에 IMF(국제통화기금)에 긴급구제금융을 요청했다.

IMF는 구제금융 제공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1996년말 12%이던 한국은행의 콜금리(현재의 기준금리)를 40%까지 올리라고 압박했다. 해외투자자들에게 높은 금리를 제시해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국 정부는 즉각 30%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IMF는 또 금융·기업구조조정을 하고,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 회복에 나서더라도 재정적자의 폭을 일정 수준 이상 키우지 못하도록 했다. 정부 재정이 튼튼해야 구제금융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1차 외환위기는 한·미동맹을 중시한 미국 백악관이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을 압박해 외채만기연장에 합의하도록 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한국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이 일구어 놓은 튼튼한 재정 덕택에 국채 발행에 성공했고, 그 자금으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했다. 외환위기 책임자 처벌이 시작되자 관료들은 저환율 정책으로 달러 값이 싸진 덕에 해외여행을 열심히 나갔던 국민들을 책임자 리스트에 슬그머니 끼워넣었다.
2차 외환위기
2차 외환위기는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나타났다. 미국발 충격에 전세계 환율이 요동쳤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했다. 다행히 10년 전 겪은 1차 외환위기의 극복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가용외환보유액을 넉넉히 확보했던 경제팀은 외환시장의 심리적 쏠림 현상이 있을 때마다 외환보유액을 풀어가며 시장 안정에 노력했다. 넉넉한 외환보유액이 환율 상승의 대세를 꺾을 수는 없었지만,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정부 경제팀은 생명줄인 외환보유액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환보유액 소진보다는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 때에는 현금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며 경제팀에 달러 확보를 지시했다. 1차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2차 외환위기의 최종 해결책도 미국에서 왔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가간 통화스왑(통화 교환) 제도를 확대했는데 다행히 한국을 끼워준 것이다. 한·미 통화스왑 발표 이후 환율은 하락하고 서울 외환시장은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3차 외환위기 조짐
외환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2차 외환위기보다는 1차 외환위기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로 촉발된 대미투자 합의로 인해 한국의 외환보유액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투자 합의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 3500억달러(약 514조원)를 투자하며, 이 중 1500억달러는 미국 조선업 재건 등 직접투자에 사용된다. 나머지 2000억달러는 연간 200억달러의 범위 내에서 10년 이상 현금을 송금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연간 200억달러를 어떻게 마련할까? 정부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운용 이자수익과 한국투자공사(KIC)의 해외투자 수익으로 일차적으로 충당하고, 부족할 경우 정부나 공기업이 달러 표시 해외 국채 발행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이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 계산은 이렇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11월말 현재 4307억달러. 이 외환보유액을 10년 만기 미국 국채에 전액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4.1%의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여기서 177억달러를 얻을 수 있다. 또 한국투자공사가 작년말 현재 투자하고 있는 2065억달러 중 채권 부문 투자액 657억달러를 같은 방식으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 연간 27억달러의 이자수익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둘을 합하면 매년 미국에 보낼 투자금 200억달러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이 이자수익을 얻으려면 미국 국채를 10년간 팔지 말고 그대로 들고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큰 경제 충격이 와서 외환시장이 급변동할 때 미국 국채를 매각해 시장에 수백억달러씩 공급하며 한국 외환체력의 건재를 과시하고 시장의 우려를 희석시켰던 2차 외환위기 때의 대응 방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한 외환 전문가는 “한국의 장부상 외환보유액은 4307억달러이지만 실제로 사용 가능한 가용외환보유액은 사실상 제로(0) 달러”라며 비관적 분석을 내놓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미국에 5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반면, 외환보유액이 1조3240억달러에 달해 한국보다 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에 대해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만약 외환시장에 영향이 있다면 (연간 한도) 200억달러를 줄이도록 (미국과) 협상을 할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해지면 미국도 제몫 챙기기에 바쁘기 때문에 결국 가용외환보유액이 없는 한국 정부만 속수무책 상태에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충수
외환시장이 안정되려면 달러가 충분히 공급되거나 수요가 줄면 된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외환시장 안정에 충분히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시장 안정 수단은 주요 달러 수요·공급자인 ①수출입 기업 ②국민연금 ③한국인·외국인 금융투자자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밖 환전, 수출 기업의 달러 매도 촉구, 해외주식 투자 자제를 요청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 기업과 투자자들은 정부의 부탁보다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의 동원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나중에 특검이 ‘최종 결정자’를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1차 외환위기 때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처방이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근본 대책은 당시 IMF가 달러 유출을 막고 유입을 늘리기 위해 극약 처방한 금리 인상과 재정적자 축소를 통한 외환보유액 확충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조짐이 보일 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외환보유액과 정부의 재정적자 상황을 가장 주의 깊게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두가지가 튼튼해야 자신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행이 결정한 비정상적인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고 말한다.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으면 돈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려하기 때문이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선언한 대대적인 재정적자 확대 정책도 외환위기 징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한다. 원화가 시장에 더 많이 풀릴수록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2026~2029년 4년간 재정 적자를 478조원, 국가보증채무를 64조원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경우 보증채무를 제외하고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5년 말 49.1%에서 2029년 말 58.0%로 높아진다. 국가채무가 크게 증가하면서 1차 외환위기 때 한국경제 재건의 원동력이었던 튼튼한 재정 여력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대통령은 한은이 금리(통화량) 조절로 제어할 수 있는 국내 금융·부동산 위기보다 외국인들이 총칼을 들고 달려오는 외환위기의 파괴력이 몇 배나 크다는 것을 체험했을까? 건국 후 50년만의 첫 여야 정권 교체가 외환위기 때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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