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나랏돈, 더 잘 써야 한다
민생회복지원금 대부분은
헛돈 될 공산이 크다
투자 촉진도 기대 어려워
소비 늘려 투자 이끈다고?
한가한 발상 집어치워라
효과 확실한 일에 돈 쓰길

31조8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은 추경 시정연설에서 경제를 24회, 성장을 12회, 회복을 10회, 민생을 9회 언급하였고, 내수 진작을 위한 조치이지만 소득 재분배 효과도 기대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재정, 부채, 경제 상황 등을 다 고려해서 정한 것”이라고 하는 점이 믿음직스럽다. 국채 발행의 증가가 금리 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심스럽게 규모를 정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정부가 위기에 긴축만 고집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한 종전의 발언과는 좀 결이 달라서 마음이 놓인다.
국채 발행에 한계가 있고 정부가 쓸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내수 진작을 주된 목표로, 소득 재분배를 부수적인 목표로 효과를 가늠해 보자.
이번 추경에서 세출예산 증액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의 내수 진작 효과는 의심스럽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재정 1조원을 쓸 때 실질 GDP 증가로 연결되는 효과는 이전 지출의 경우 3300억원에 불과하고 정부 투자는 8600억원, 정부 소비는 9100억원으로 분석되었다. 2020년 코로나 때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준 긴급재난지원금의 매출 증가 효과는 26.2~36.1%였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일본은 여러 차례 소비 수요 진작으로 경제를 활성화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성과가 시원치 않았다. 관광 지원이 외국 관광객 유치에 효과가 있었다는 정도다. 최근에 1인당 5만엔을 지급하려고 여론조사를 했는데 부정적 응답이 76%에 달해서 포기했다. 일반 국민들까지 다 아는 일이 된 것이다.
상위 10% 국민에게 주는 7680억원 전부와 4296만명에게 주는 10조7400억원의 대부분은 헛돈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미약한 소비 진작이 경제 회복의 마중물까지 될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소비 회복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어야만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인데 이번 추경으로 소비가 진작될 부문은 우리가 투자를 기대하는 분야와는 너무 다르다. 성장 동력 산업에서의 투자 부진은 수요 부진 때문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규제들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투자를 앞당기기라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 촉진이 1조3000억원에 그친 것은 실망스럽다.
인재 양성 투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더 시급하다. 지방의 거점국립대학들을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일단 학생 일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맞추는 데 4조원이 든다. 이번에 착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대학 평가 기관인 QS의 이공계 대학 평가에 따르면 중국은 칭화대가 2위에 올라 있는데 우리는 카이스트가 20위, 서울대는 36위에 랭크되어 있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학을 하나라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이대로 내버려두고는 내수 진작이 되어도 외식업, 소매업 창업이나 일어나지 성장 동력 산업에 대한 투자 진흥은 어려울 것 같다.
GPU 5만개 확보에 거의 1조원이 든다는 AI 산업 투자를 시작했어도 좋았을 것이고, 주택 공급 확대의 강력한 의지를 과시할 기반 투자를 앞당기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바로 투자를 하자. 소비를 늘려 투자를 이끌어 내겠다는 한가한 발상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소득 재분배에도 직접 더 많은 돈을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계층인 기초생활수급자는 이번에 50만원을 받는데 월 76만5000원인 급여를 4만2000원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물가, 특히 식비 상승을 감안할 때 미흡한 감이 든다. 정부가 주는 돈이 넉넉하기는 어렵겠지만 헛돈을 쓰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한 명의 약자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더 두껍게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하느라고 공부할 시간도 갖지 못해서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덫에 갇힌 아이들, 나이가 찼다고 주거 대책도 없이 보육원에서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주는 지원을 대폭 강화하면 좋겠다. 인원수가 적어서 돈이 얼마 들지도 않는다. 인구 감소 시대에 이들이 더 나은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수지맞는 일일 듯싶다.
경제는 선택이다. 얻는 것이 있을 때 그 대가로 무엇을 포기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소비 수요 진작으로 경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소득 주도 성장을 너무 닮았다. 효과가 확실한 일에 바로 돈을 쓰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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