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복지부 장·차관 물러나야 의정 갈등 끝난다

太兄 2025. 4. 1. 19:14

[조형래 칼럼] 복지부 장·차관 물러나야 의정 갈등 끝난다

의대생들 속속 복귀하면서 갈등 해결 전환점 마련했지만
무기력과 분노 유발로 일관한 관료들에 대한 불신 여전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어린 학생들에게 令이 선다

입력 2025.04.01. 00:10업데이트 2025.04.01. 10:38
 
전국 대다수 의대가 등록을 마감하는 가운데 31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1년 넘게 끌어온 의정 갈등이 마침내 정상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한 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울산대 등 의대생들이 강의실로 돌아오고 있다. 대학의 총장·학장들까지 직접 나서서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끈질긴 설득을 벌이는 한편 미(未)등록 시 제적이라는 강경 방침을 밝힌 것도 주효했다. 정부가 사실상 백기를 든 데 대해 환자·시민 단체가 “고통을 참아온 국민과 환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반발하지만 한국의 의료 체계가 급속히 붕괴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불씨가 남아 있다. 학생들이 등록만 하고 집단 휴학이나 수업 거부를 할 가능성이다. 서울대·연대 의대 학생회도 ‘등록 후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에게 “정부가 물러섰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어김없이 “정부를 못 믿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내년 의대 정원은 이전으로 되돌리더라도 2027년엔 다시 일방적인 증원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의대생은 “전공의가 떠나자 정부는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개원을 허용하는 개원 면허제를 도입하려 했는데, 이는 의대생들의 발을 묶겠다는 노예 면허제”라면서 “최근 추진 중단 방침을 밝혔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뒤집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2028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해 필수 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의료보험료 인상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년간 응급실·야간 진료 지원 등 전공의가 떠난 공백을 메우는 데에만 3조3000억원의 혈세를 추가로 썼다.

의대 증원 사태가 이렇게까지 꼬인 원인을 두고 의료계의 집단 이기주의가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이면(裏面)을 보면 정부가 의료계를 건설 현장에서 돈이나 뜯는 건폭 노조처럼 몰아세운 탓도 크다.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여전히 미스터리이며, 의료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다. 기재부 출신의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무기력했고 박민수 차관은 의료인들을 자극하는 분노 유발자였다. 말실수라고 해명한 “의새” 발언을 시작으로, “의사들의 제약사 갑질을 신고하면 보상금 30억원을 지급하겠다” “집단행동으로 의사들이 현장에 남아 있지 않으면 전세기를 내서라도 환자를 치료하겠다” “해부용 시신이 부족하면 수입도 고려할 수 있다” 등 내놓는 정책과 발언마다 막말 논란과 의사들의 연쇄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한국 의사의 평균 소득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진국 중 1위”라며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대중 심리를 건드려 의사들을 압박한 것은 모든 의사를 적(敵)으로 돌린 최악의 언론 플레이였다. 게다가 당시 인용한 2020년 OECD 자료에는 의사 소득이 높은 미국·일본·캐나다·호주 등 10국이 빠져 있었고, 한국 의사의 외래 진료 횟수가 OECD 평균의 3배라는 사실도 고의인지 실수인지 언급 안 했다.

기자는 지금까지 살면서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세 번 입원했다. 심장 질환의 일종인 발작성 빈맥으로 119 구급차도 네 번이나 타봤다. 한밤중에 대학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구급 대원이 ‘하트 디지즈(heart disease·심장병)’라고 외치면 당직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너무 많아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직 의사들이 주당 100시간씩 근무하면서 응급실을 지키는 전공의였다. 나는 병원 신세를 질 때마다 한국에 똑똑한 의사들이 있고 아프면 언제든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또 대학 병원 대기실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한국 의료 체계야말로 가장 평등한 복지 서비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료 체계가 무너질 뻔했다. 이를 재건하려면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신뢰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대 증원의 실무 책임자였던 복지부 장·차관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래야 소중한 1년을 통째로 날린 어린 학생들에게 영(令)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