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내가 直接 戰車를 몰고 光州暴動의 先頭에 있었다"

太兄 2023. 5. 16. 21:02

내가 直接 戰車를 몰고 光州暴動의 先頭에 있었다"

2019-02-26 22:28:41


내가 直接 戰車를 몰고 光州暴動의 先頭에 있었다"

(-남파간첩, 비전향장기수-南派間諜, 非轉向長期囚)

내가 직접 경험(直接 經驗)한 일입니다.
나<교도소에서 비전향장기수를 돌본 병사(兵士)(이유복)>는
21살 때까지 5.18을 추호도 의심 없는 民主化 抗爭으로생각했고

전두환을 정권욕(政權慾)에 눈이 먼 광기(狂氣) 어린 살인마(殺人魔)라고 생각했다.
국사시간(國史時間)에 배운대로 光州市民은 전두환에 의해 무참히 살육(殺戮)된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대학 2학년 1학기 마치고 身檢1級으로 陸軍으로 入隊하였다가
교도대(敎導隊)로 차출되어 교도소(矯導所)에서 軍生活을 하였는데,

그 당시 60代 초반의 중풍걸린 비전향 장기수(非轉向 長期囚) 한분이 계셨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빨갱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비로소 분단(分斷)의 아픔과, 軍隊에 왔다는 것을 실감(實感)했다.


비전향 장기수의 특성상 다른 죄수(罪囚)들과 합방(合房)을 할수 없어
독방(獨房)을 쓰는데, 중풍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빵간에 동기가 없어
나 처럼 군대에서 차출된 신병들이 병걸린 장기수를 돌보다가

후임 들어오면 그 후임이 돌보는 식으로
중풍 걸리고 몇년 동안 그래왔다고 했다.


나도 첨에 신병(新兵)이라 그분의 수발을 들었다.

막내생활을 거의 11개月하고 나서야 겨우 후임을 받아 수발

드는 일을 마칠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분에게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자신은 '사북탄광 폭동'때 지령(指令)을 받고 내려온

통일혁명전사(統一革命戰士)인데
그 다음 지령으로 '광주폭동'에 투입되어

自身이 직접 전차(戰車)를 몰고

광주폭동(光州暴動)의 선두(先頭)에 있었다.

폭동이 진압된 후에 北에서 내려온 同期들은 復歸하였으나
自身은 잔류(殘溜) 命令을 받고 대남활동(對南活動)을 계속하다가
80년대 중반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고 했다.


그분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면 놀랍게도 누구보다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퍼부었으나

아이러니하게 왜 그 오랜 세월을 전향(轉向)하지 않고

옥살이 하냐 물어보니,
'자신은 북에 가족들이 있고 만일 전향할 경우

가족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생각해서 자기 하나 희생하는 게 차라리 났다'고 했다.


전두환이에 대해서 물어보니
전두환이가 당시에 초반에 특전사(特戰司)를 투입하여

광주폭도(光州暴徒)들을 토벌(討伐)한 것은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당시 북에서 내려온 특작부대원들은 光州를 거점으로 폭동을

全國으로 확대(擴大)하여

남조선통일혁명(南朝鮮 統一革命)을 이루려고 했는데

전두환이가 대통령이 될 팔자였는지 천운이 따랐는지 잘 모르겠으나

초반에 폭도들을 도륙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적화(赤化)로 부터 구(救)해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난 광주(光州)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바뀌었고,

대한민국 역사교육(大韓民國 歷史敎育)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복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