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제

공시가격 주먹구구로 산정했다

太兄 2023. 5. 15. 20:33

공시가격 주먹구구로 산정했다

2019-01-26 22:57:56


14억→40억→30억… 공시가격 주먹구구로 산정했다

조선일보
  • 장상진 기자
  •  
    입력 2019.01.26 03:08
    공시위 "3배 올린 근거 뭐냐" 묻자, 국토부 "현실화 필요하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아파트는 68%, 단독주택은 52%이다. '공평과세' 차원에서라도 단독주택 공시가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국토교통부 관계자)

    "취지에는 공감하나 인상률이 너무 높다. 세금 부담이 급증한다."(민간 전문가 공시위원)

    "현실화율은 처음 듣는 통계인데 근거가 뭔가요?"(민간 전문가 공시위원)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에 앞서 23일 오전 10시쯤 서울에서 열린 중앙부동산공시위원회(이하 '공시위') 회의에서 민간 위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국토부는 '현실화 필요성'이란 대원칙만 앞세워 원안(原案)을 강행했다고 참석자들이 25일 전했다.

    ◇거수기 논란 공시위조차 "근거가 뭐냐"

    공시위는 국토부 차관을 포함한 공무원 6명과 민간 부동산·법률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행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은 국토교통부가 공시가격에 대해 반드시 민간 전문가가 포함된 공시위 심의를 거친 뒤 발표하도록 규정한다.

    공시위는 회의 전부터 '거수기' 논란에 휘말렸다. 당초 회의가 이달 21일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국토부가 공시가격 발표일(24일) 하루 전으로 연기한 탓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공시위를 요식 절차로 생각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복수(複數)의 참석자에 따르면, 23일 회의에서 민간 위원 여러 명이 국토부가 들고온 공시가격의 인상 폭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 '공시가격 현실화' 필요성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국토부가 가져온 '현실화율' 통계에 대해서는 근거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참석자 A씨는 "통계에 대한 근거와 집계 방식, 기준 등을 물었는데, 국토부는 '공시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얘기했다"고 했다.

    특히 작년의 3배에 가까운 공시가격 인상률에 대해서는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는 의문이 여러 번 제기됐지만, 국토부 측은 '우리가 지금까지 잘 납득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잘하겠다'는 취지로 답한 뒤 회의를 마쳤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국토부 측은 회의 말미에 회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보안각서'도 쓰게 했다. 참석자 B씨는 "공시가격 인상 방식과 속도에 이의가 꽤 있었지만, 재논의를 주장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규현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회의에서 여러 의견이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수준의 의견 제시였고, 공시가격 현실화 자체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위헌·위법 소지"

    민간 위원들이 '근거'에 의문을 제기했던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최종 결정 전까지 요동쳤다. 서울 성수동1가 한 단독주택은 작년 공시가격이 15억5000만원이었는데, 지난달 국토부가 발표한 공시 예정 가격은 35억2000만원이었고, 24일 발표된 최종 공시가격은 27억원으로 바뀌었다. 연남동 다른 주택도 14억3000만원(작년)→40억6000만원(예정공시)→30억3000만원(최종공시)으로 변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시가격 산정이 명확한 기준 없이 주먹구구로 이뤄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위헌(違憲)·위법 논란도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이번 공시가격 발표에서 단독주택을 시세 15억원을 기준으로 '고가(高價)'와 '저가'로 나누고, 고가에 대해서는 '빠른 속도로 현실화', 저가에 대해서는 '점진적 현실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특정 가격대만 콕 찍어 '급격하게 높이겠다'는 그 자체가 조세 형평성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소득이 거의 없는 은퇴 계층의 보유세 부담에 대해 '집을 팔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납세자에게 집을 팔지 않으면 낼 수 없는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능력에 맞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應能) 과세'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하다는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 변호사는 "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 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느냐 마느냐는 국회가 법률로 정하는 것이고, 공시가격은 그런 과정에서 기준으로 삼는 지표"라며 "이번 공시가격 산정 과정을 보면 '기준'을 비틀어 버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여론의 환심을 사려고 원칙을 무너뜨려 행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