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뜰날'의 트로트 대표 가수 송대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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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날’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수 송대관(79)이 7일 별세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이날 새벽 서울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2019년 위절제술을 비롯해 몇 차례 수술 등을 겪으며 병마를 극복하려 애써왔지만 결국 세상과 작별하게 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1946년 6월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 태어난 고인은 1965년 전주영생고를 졸업한 뒤 가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가수 발굴의 ‘성지’였던 오아시스 레코드의 손진석 사장을 만나 결국 가수 데뷔의 꿈을 이뤘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무명 생활이 길어졌다. 이후 1975년에 낸 신곡 ‘해뜰날’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맞이해 그해 가수왕까지 석권했다. ‘해뜰날’의 가사 속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는 문구처럼 그에게도‘해뜰날’이 온 것이다.
이후 1998년 ‘네박자’, 2003년 ‘유행가’ 등을 히트시키며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송대관은 어린 시절부터 각종 어려움을 이겨낸 바 있다. 송대관은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실종됐다.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송영근이다. 고인은 지난해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밝힌 뒤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인데 우리 할아버지가 겪은 고문과 고통은 정말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라면서 “다음 세대들은 할아버지의 업적으로 대한민국이 광복, 해방된 거라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할아버지인 송영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전북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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