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백제의 대륙경영

太兄 2023. 5. 13. 17:32

백제의 대륙경영

2018-12-30 23:58:32


♥백제의 대륙경영

백제가 중국 대륙을 경영했다는 주장은 일반사람은 물론 사학자들에게도 생소하게 들린다. 백제의 대륙경영설은 '삼국사기'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지만 중국과 일본 사서에는 편린이 보인다. 백제가 중국 대륙에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는 경우는 고려시대의 김부식뿐 아니라 요즘 사학자들 가운데도 많다. 이들은 백제가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 중국에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믿지 못한 것이다. 백제가 중국의 요서지방과 산동반도를 비롯한 동부 해안지방에 진출해 그곳을 다스린 강력한 해양제국이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으니 이는 그만큼 연구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中 사서 속 백제 영토 요서·산동 아울러
그렇다고 해서 전대 학자 가운데 이런 사실을 밝혀낸 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신경준이 '증보문헌비고'에서 백제가 한때 요서와 월주를 차지했다고 썼고 신채호도 '조선상고사'에서 백제가 요서·산동·강소·절강 등지를 차지했다고 했으며, 정인보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중국 사서 가운데 가장 먼저 이를 언급한 '송서(宋書)'는 '백제국이 본래 고려(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000여리에 함께 있었는데 그 뒤에 고려(고구려)는 요동을 침략해 소유하게 됐고 백제는 요서를 침략해 소유하게 됐는데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晉平郡) 진평현이라고 했다'고 소개한다.
비슷한 기록은 북송 때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원나라 때 '문헌통고'에도 보이고, 특히 남북조 때의 '남제서'에는 백제가 북위의 대군을 섬멸한 전쟁기사까지 나온다.
북위는 남북조시대 북조의 하나로 선비족 탁발씨(拓拔氏)의 나라다. 이런 빛나는 백제의 역사를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조에서 '(재위) 10년, 위나라가 군사를 보내 쳐들어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는 단 한 줄로 뭉개버렸다. 유학·신라 중심 사관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선비족은 중국 북방의 유목민족이다. 그들의 기병 수십만명이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 백제로 쳐들어왔다는 말인가. 육로로 백제를 공격하려면 고구려를 거쳐야 하는데 고구려가 순순히 길을 내줬을까. 게다가 당시 고구려 임금은 광개토태왕의 뒤를 이은 장수대왕이었다.
고대사의 권위자인 윤내현 박사는 '한국열국사연구'에서 "남북조시대에 백제가 영토로 삼고 다스렸던 중국 지역이 요서, 즉 오늘의 하북성 난하 유역에서 동부해안을 따라 산동성을 거쳐 강소성 남부까지 이르렀으며 남쪽의 광서장족자치구 울림군 지역까지 근거지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술했다. 윤 박사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백제가 중국 동부해안 지역에 진출해 그곳을 지배했다는 사실은 당시 백제의 국력을 알게 해주며 백제가 해양활동을 활발히 한 국가였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중국의 동부해안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황하중류 유역과는 구별되는 문화권으로서 한반도 및 만주와 밀접한 문화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황하 중류 유역 거주민인 제하족(諸夏族)에 의해 동이(東夷)라고 불렸다."

역사 잃으면 미래 없어… 제대로 지켜야
서한 무제는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우거왕을 반대하고 서한으로 이주한 예군·남여 등 28만명을 받아들여 지금의 발해만 서부 연안 창주지구에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해 그곳에 거주하도록 했다. 따라서 중국 동부해안 지역에는 한민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를 기초로 백제의 중국 동부해안 지역 진출이 쉬웠던 것이다. 또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고구려 유민인 이정기 일가가 산동성 지역에서 치청번진(淄靑藩鎭)을 경영하면서 당 황실에 대항했다. 그 뒤를 이어 장보고 대사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해상권을 장악했는데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것도 그 전에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이를 지켜야 한다. 역사를 잃으면 미래도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내일의 좌표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