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다시 온 트럼프 시대,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 반도체 업계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반도체 공약을 내걸진 않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유세나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으로 미뤄봤을 때 이 분야에서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련 정책에서 동맹국에 대해 더 이상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대표적인 예가 이전 행정부가 대중제재를 하면서 동맹국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주는 VEU(Verified End User·검증된 최종 사용자) 지정 문제다. VEU는 사전에 승인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의 수출 및 반입을 허용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 제도다.
2022년 미국은 첨단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막았다.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들이 사업에 차질을 빚을 뻔 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VEU로 지정되면서 한숨 돌렸다. 중국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미국산 장비 반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대중제재 수위를 높이기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VEU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플래시의 20%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VEU 지정이 취소된다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른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칩스법(반도체 지원법) 보조금이다. 칩스법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에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 TSMC는 650억달러를 투자해 66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다. SK하이닉스는 투자금 38억7000만달러, 보조금 4억5000만달러다. 아직 이들이 받은 보조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최근 인터뷰에서 칩스법을 비판하면서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매겨,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칩스법 보조금을 전액 취소하는 시나리오보다는 재협상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액수를 줄이거나 다른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칩스법 보조금과 함께 언급한 ‘반도체 고관세’에 대해서는 업계가 실현 확률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WTO의 정보기술협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해야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도 해외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어 자국 기업까지 관세의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관세를 여러 차례 강조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1기 집권 시절에 삼성·LG 등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고, FTA 개정 협상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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