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양

씨앗을 제공했다고 다 내곡씩이 아니다

太兄 2024. 10. 31. 18:14

♡ 씨앗을 제공했다고 다 내곡씩이 아니다 

오씨와 이씨는 앞뒷집에 사는데다 동갑이라 어릴 때부터 네집 내집이 따로 없이 형제처럼 함께 뒹굴며 자랐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장가를 들었지만 오씨 마누라는 가을 무 뽑듯이 아들을 쑥쑥 뽑아내는데, 뒷집 이씨네는 아들이고 딸이고 감감소식이다.
의원을 찾아 온갖 약을 지어 먹었지만 백약이 무효다.

설이 다가와 두 사람은 대목장을 보러갔다.
오씨가 아이들 신발도 사고, 아이들이 뚫어놓은 문에 새로 바를 창호지 사는 걸 이씨는 부럽게 바라봤다.

대목장을 다 본 두 사람은 대폿집에 들러 거하게 뚝배기 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집 오씨네 아들 셋은 동구 밖까지 나와 아버지 보따리를 나눠들고 집으로 들어가 떠들썩하게 자기 신발을 신어보고 야단인데 뒷집 이씨네는 적막강산이다.

제수물품을 부엌에 던진 이씨는 창호를 손으로 뜯으며
"이놈의 문은 3년이 가도 5년이 가도 구멍 하나 안나니" 라고 소리치다 발을 뻗치고 울었다. 이씨 마누라도 부엌에서 앞치마를 흠씬 적셨다.

설날은 여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다.
그믐날 밤에도 한두시간 눈을 붙일까 말까 한 데다 설날은 꼭두새벽부터
차례상 차린다, 세배꾼들 상 차린다, 친척들 술상 차린다 정신이 없다.

설날 저녁, 주막에서는 동네 남정네들의 윷판이 벌어졌다.

이씨는 오씨를 뒷방으로 끌고 가 호젓이 단둘이서 술상을 마주했다. 이씨가 오씨의 손을 두손으로 덥석 잡고 애원했다.

"내 청을 뿌리치지 말게."
"무슨 일인가? 자네를 위한 일이라면 살인 빼고는 무엇이든 하겠네!"

이씨가 오씨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오씨는 화들짝 놀라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돼, 그건 안되네!" 이씨는 울상이 돼 말했다.

"이 사람아! 하루 이틀에 나온 생각이 아닐세. 천지신명과 자네와 나, 이렇게 셋만이 아는 일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이씨는 통사정을 하고 오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연거푸 동동주 석잔을 들이켰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피곤에 절어 이씨 마누라는 안방에서 곯아 떨어졌다.

안방 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와 옷을 벗고 이씨 마누라를 껴안은 사람은 이씨가 아니라 오씨였다.

확 풍기는 술냄새에 고개를 돌리고 잠에 취해 고쟁이도 안 벗은 채 이씨 마누라는 비몽사몽간에 일을 평상시처럼 치루고 말았다.

이씨 마누라가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진 걸 보고 오씨는 슬며시 안방에서 빠져 나오고 이씨가 들어갔다.

마침내 몇 달이 지나 모심을 무렵 이씨 마누라는 입덧을 하더니 추수가 끝나자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씨 마누라는 감격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요녀석이 자라면서 신언서판이 뛰어났다.

오씨는 틈만 나면 담 너머로 이씨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씨가 어느날 서당에 들렀더니 훈장은 출타하고 일곱살 난 이씨 아들이 훈장을 대신해 학동들에게 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동들 사이에는 열살, 열두살, 열다섯살인 오씨 아들 셋도 끼어 있었다.

어느날 이씨와 오씨가 장에 가는데, 길에서 만난 훈장이 이씨를 보고

"아들이 천재요. 내년엔 초시를 보도록 합시다." 오씨는 속이 뒤집혔다.

며칠 후 오씨가 이씨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벌컥벌컥 술을 마시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내 아들, 돌려주게." 단호하게 쏜 한마디가 비수처럼 이씨의 가슴에 꽂혔다.

몇날 며칠을 두고 둘은 멱살잡이를 하고, 술잔을 놓고 밤새도록 말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사또 앞까지 가는 송사가 됐다.

오씨는 천륜을 앞세우고, 이씨는 약조를 앞세우며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또도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또가 이씨 아들을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아들에게 다 얘기하고 나서 사또가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일곱살 그 녀석은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을 훔치더니 말했다.

"지난봄에 모심기 할 때 앞집에서 모가 모자라, 우리 집 남는 모를 얻어가 심었습니다. 그러나 가을 추수할 때 우리 집에서는 앞집에 대고 우리 모를 심어 추수한 나락을 내놓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또는 큰소리로 말했다.

"재판 끝!" 쾅 쾅 쾅
"오씨는 듣거라! 앞으로 두번 다시 그런 헛소리를 할 땐 곤장을 각오하라."

"아버지, 집으로 갑시다." 이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며, 눈물이 앞을 가려 몇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 정말 기가막힌 명  판결이네요.
씨앗을 제공했다고 다 내 곡식이 아니죠!

'교 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진홍 목사 "특별시국문"  (4) 2024.11.01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아!일좀해라!  (3) 2024.10.31
산처럼 강물처럼 살자  (3) 2024.10.31
人間이 갖춰야 할 德目  (1) 2024.10.30
어느 교수의 글  (2) 202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