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여행
2018-03-25 12:54:23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여행
여행은 한 개인이 자신을 찾고 정체성을 세우고, 동시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긍정적인 힘이다.
서양의 역사는 접촉, 투쟁, 교역과 여행에서 탄생한 새로운 관계들의 결과이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여행을 통해 얻는 창조적인 능력과 풍요로움이,
역설적으로 상실과 고통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율리시즈나 길가메시(수메르 신화의 영웅-옮긴이)의 신화적인 여행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율리시리즈는 어쩔 수 없이 떠돌아 다니게 되고 전리품과 동료들을 모두 잃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신에게 부름을 받은 길가메시는 자기 왕궁을 버리고 세상 끝에 도착했지만,
불멸도 젊음도 얻을 수 없었다.
중세에 떠돌이 기사들은 궁정을 떠나 혼자서 괴물과 거인, 고통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신비한 숲으로 들어갔다.
용기와 성장을 보이기 위한 여행은 마음 든든한 모든 것들,
즉 자기 집과 잘 알려진 일상의 관계들이 주는 확실성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오기를 요구한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자신의 사회적인 정체성을 잃고, 당황하다가 다시 자신을 찾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태어나길 요구 받는다.
따라서 서양의 전통에서 여행은 표면적이고 불확실한 자신을 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진정한 가치에 도달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알기 위해
자신의 결점, 자만심, 허약성, 편견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보편적인 계획된 휴가여행은 이러한 이상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물리적인 이동은 있지만 모험, 불편함, 다양한 것들과의 접촉, 정처 없이 떠도는 일은 극히 줄어들었다.
휴양지에서 사람들이 찾는 것은 문명과 안락함 밖에 없다.
발견은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관광으로 바뀌고, 경쟁은 스포츠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행의 이상적인 의미는 다른 방식으로 실현된다.
그 하나는 이민을 가거나 먼 곳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이탈리아에 온 다국적기업의 관리자들 및 전 세계로 뻗어나간 그 다국적기업에 파견된 우리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습관을 뿌리 채 뽑아버리고 다른 이들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 세관의 장벽이 무너지면, 이런 시련에 맞설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유럽의 건설을 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여행도 있다.
이것은 공간적인 여행이 아니라 지식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여행이다.
장기간 외국의 주요 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간 학자들, 경영자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아이 때처럼 책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들의 특권, 지위, 안전성을 포기했다.
이것 역시 정화와 겸손의 훈련이다.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
오만함을 벗어버린 채 모든 것을 거리를 두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여행의 진짜 효능은 여행하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것들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익숙해져 있는 우리 자아에서 탈피하는 데에서 우러나온다.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 역시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시 어린이가 되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비대해지고 탐욕스러워진 우리 자아를 잊어야 한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 가장 진실한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고독한 순간이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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