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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워’ 2라운드가 시작됐다 …美·日·EU, 중국 車·가전용 반도체까지 제재

太兄 2024. 4. 8. 15:48

‘칩 워’ 2라운드가 시작됐다 …美·日·EU, 중국 車·가전용 반도체까지 제재

미·일·EU 손잡고 수입 차단 나서
전체 반도체 시장, 범용 비중 70%

입력 2024.04.08. 03:27업데이트 2024.04.08. 10:22
 
美·EU 공동성명 “공급망 왜곡에 대응해 공동 조치” - 지난 5일(현지 시각) 벨기에 루뱅에서 열린 제6차 미국·유럽연합(EU) 무역기술협의회(TTC) 장관회의에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왼쪽) EU 집행위원회 경쟁담당 부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연합·일본 등 동맹국들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에 이어 레거시(범용) 반도체에 대한 제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레거시 반도체는 AI(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에 쓰이는 반도체보다 수준은 낮지만, 자동차·항공기·가전 등 다양한 제품에 쓰이며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제재로 타격을 받은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에서 활로를 모색하자,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마저도 차단에 나서면서 ‘칩 워(반도체 전쟁)’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4~5일(현지 시각) 벨기에 루뱅에서 열린 무역기술협의회(TTC) 장관회의에서 공동 성명을 내고 “레거시 반도체가 세계 공급망을 왜곡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성명에서 제재 대상으로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이 산업(레거시 반도체)을 엄청나게 보조하는 것을 알고 있고, 이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레거시 반도체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합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 반도체 관련 일러스트. /연합뉴스

미국과 EU가 이번 공동성명을 통해 정조준한 것은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이다. 레거시 반도체는 AI에 들어가는 최첨단 반도체보다 기술 수준은 낮지만, 자동차·전자·무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미국은 지난 1월 국가 안보나 핵심 기반 시설과 관련된 공급망에 레거시 반도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조사를 시작했고 EU도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국과 EU는 “레거시 반도체에서 왜곡 효과나 과도한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非)시장 경제 정책과 관행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값싼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첨단 반도체만 제재한다고 중국의 수익 창출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레거시로 다른 형태의 기술 혁신이 나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조치다”고 말했다.

◇미·동맹국 레거시 전방위 압박

미국과 일본도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압박에 나서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오는 10일 미국 워싱턴 회담에서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후 공동 문서엔 ‘동지국(동맹·우호국)과 협력해 반도체 공급망 강화’라는 내용으로 대중(對中) 제재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양국은 이 같은 합의 내용을 주요 7국(G7)과 공유하며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 레거시 반도체 비중을 줄이는 일본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값싼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 대신 다른 나라의 제품을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자국이나 동맹·우호국으로 (조달을) 전환해 중국 편중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미국과 동맹국들은 중국 레거시 반도체의 확장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를 본격 규제해왔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의 중국 도입을 막거나 엔비디아 등의 최첨단 AI 반도체 수출을 막는 식이었다. 그 결과 중국의 최첨단 산업은 타격을 받았지만,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를 조성해 수십조 원을 쏟아 부으며 활로를 찾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신규 투자의 대부분은 레거시(28나노 이상)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최첨단 막히자 레거시 확대한 中

실제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시도는 오히려 레거시 반도체 산업을 확장시켰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 등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레거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세계 점유율은 지난해 29%에서 2027년 33%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나 러몬도 장관은 “향후 몇 년간 시장에 나오는 모든 신규 레거시 반도체의 약 60%가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반도체의 저가 공세에 서방의 기업들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가전, 군용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에서 만든 반도체를 구입해 쓰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커질 수 있다. 매슈 포틴저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중국의 28나노미터 칩에 의존하는 모든 국가와 군사·민간 산업에서 중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데 실패한 후 반도체 판매 제한에 더 중점을 둘 수 있다”고 했다.

대중 제재 확대를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DB하이텍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레거시 반도체를 일부 생산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규제로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체적으로 중국에 대해 어떤 제재 방안을 내놓을지 파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레거시(legacy) 반도체

범용 혹은 구형 반도체를 말한다. 보통 2011년 양산을 시작한 28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와 그 이전 공정에서 생산되는 것을 지칭한다. 성능과 에너지 효율은 첨단 반도체보다 떨어지지만, 자동차·가전부터 군사 무기까지 여전히 폭넓게 사용된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의 레거시(범용) 반도체 제재에 나선 것은 2022년 시작된 대중 제재로 중국의 첨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 직접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