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궁전' 코앞의 러 순찰정... 우크라 해상드론이 두동강 냈다
푸틴 궁전에서 직선거리 15㎞, 전선에선 430㎞ 떨어진 곳
푸틴 경호와도 관련 있는 FSB 소속 순찰정
러시아 보안 체계에 대한 상징적 타격이라는 의미

우크라이나가 14일 러시아 흑해 연안 깊숙이 위치한 항구에 정박 중인 러시아의 정보ㆍ보안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소속 순찰정 ‘이즈무르드(Izumrudㆍ’에메랄드’라는 뜻)’를 해상 드론으로 공격해 침몰시키고 관련 이미지를 공개했다.
이 공격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공격 지점인 러시아 남부 흑해의 휴양도시 겔렌지크 항구는 푸틴의 흑해 별장인 이른바 ‘푸틴 궁전’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로, 항구에서 ‘궁전’까지 직선 거리는 1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즈무르드’ 격침에 동원된 무기는 자체 개발한 사르간(Sargan)-3000 무인 해상 드론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측은 해상 드론이 선박에 충돌해 폭발하면서, 러시아 승조원 일부가 숨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해군이 공개한 위성사진에서는 ‘이즈무르드’함이 심각하게 손상돼 선체가 두 동강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와 FSB는 이번 공격에 침묵했다.
‘이즈무르드’함은 러시아 해군 소속 군함이 아니라, FSB의 국경수비국 소속 순찰정이다. 국가 안보와 방첩, 대테러 업무를 담당하는 러시아 FSB는 국경 경비도 맡고 있으며, 해상 국경을 감시하고 밀수·불법 침입 등을 단속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순찰정과 경비함을 운용한다.

‘이즈무르드’는 길이 약 61m의 선박으로, 헬리콥터 착륙장을 갖추고 있어 장거리 순찰과 국경 감시 임무가 가능한 대형급 선박으로 분류된다.
‘이즈무르드’함이 격침된 곳은 우크라이나ㆍ러시아 전선에서 약 430㎞ 떨어진 지점이어서,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 해상 드론이 흑해 깊숙이 타격할 능력을 갖췄음을 보여줬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1년 1월 겔렌지크에 있는 대규모 호화시설이 딸린 푸틴 궁전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했다. 나발리는 이에 앞서 2020년 8월 러시아에서 노비촉 계열의 독극물에 중독됐고, 이 독살 시도에서 회복한 뒤 이 영상을 공개했다. 이후 러시아 북극권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교도소에서 수감 중 2024년 사망했다.
영상에는 대규모 저택과 극장, 차를 마시는 공간, 헬리콥터 착륙장 등 호화 시설이 등장했다. 나발니 측은 이 궁전의 건설 비용은 푸틴의 측근 기업인들이 댔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이 저택의 소유권을 부인했고, 푸틴의 오랜 측근인 사업가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자신의 부동산이라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해상드론은 흑해 전장의 판도를 바꿨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강탈한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을 모항으로 한 러시아 흑해 함대에 비해 해군력이 크게 부족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대형 군함 대신, 폭발물을 탑재하고 원격 또는 자율 방식으로 타깃에 접근하는 무인 해상 공격체계 개발에 집중했다.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계속된 해상 드론 공격 위협 탓에, 흑해 함대 전투자산의 30%를 잃고 나머지 전력을 세바스토폴에서 더 방어가 쉬운 다른 항구로 이동시켰다.

우크라이나는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가 금수 조치를 우회하기 위해 운영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도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1주일 새 90여 척의 러시아의 노후 유조선들을 공격하면서, 인근 아조프해를 경유하는 러시아 운송이 중단됐다. 아조프해는 러시아가 원유와 곡물, 철강 등을 국제시장에 운송하는 주요 해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유조선 네트워크와 FSB 순찰정 공격 지점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약 430㎞ 떨어진 곳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해상 드론이 크림 반도를 넘어, 러시아 본토와 가까운 흑해 연안까지도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또 푸틴 대통령 경호와도 연결되는 FSB 소속 순찰정 격침은 러시아 보안 체계에 대한 상징적 타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암같은 공산주의
https://m.youtube.com/shorts/rw8i2Q5ZDlk
야 사퇴않으면 탄핵할것
https://m.youtube.com/watch?v=8mz2m4Q5e2k&pp=ugUEEgJrbw%3D%3D
미셸스틸이 왔다 대사관 공식발표
https://youtu.be/nobDwAeFiG4?si=EtyIVs_XOGy0SFob
■ 잠실혁명 8. DJ(김대중)과 민주당의 악업을 상기하다
정치학자로서 민주화 40년을 지켜보며 올공(올림픽공원)에서 새삼 김대중과 더불어민주당의 악업을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정선거가 김대중과 함께했으며 마지막 모습이 6.3 사태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악업은 단순히 국민을 일회성으로 속이고 권력을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영웅을 폄하하며 나라의 발전을 파괴하고 나아가 정의와 마래를 파괴하는 적영웅(Anti- hero)의 끝판왕이었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그와 민주당의 대표적 악업은 고속도로 반대, 원전건설 반대, 포항제철 반대, 인천공항 반대, 청계천복원 반대, 자전거도로 반대, 한미FTA 반대, 미국산 소고기 반대,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4대강 정비 반대 등이다.
일찌기 박정희대통령은 연설에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를 바라보았다"고 술회했다. 전두환대통령도 야당의 축출로 출발했다. 그들에게 김대중을 비롯한 운동권은 나라를 좀먹는 기생충이자 '국가의 적' 자체였던 것이다.
실지로 김대중이 집권한 5년은 현대사 암흑기의 출발이었다. 남북대치에도 안기부를 변질(해체)시키고 군, 검, 경의 수천명 대공요원을 해고했다. 햇볕정책의 미명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공식화된 핵개발에도 천문학적 대북지원을 감행했다. 또한 민노총, 전교조, 언론노조 등 소위 반국가세력을 제도권에 끌어들였다. 또한 5.18 특별법으로 역사를 왜곡하며 온갖 특혜로 국가재정 및 공직자 충원마저 흐트렸다.
여기에 부정선거의 기원도 출발시켰다. 재임중 악업이 심판될까 두려워 안정적 정권재창출을 위해 자동개표시스템(2002)을 도입한 것이다. 필자는 십년전 치과의사출신의 부정선거 1세대 레전드를 만나 부정선거와 전자개표시스템의 상관관계와 실질적 부정사례를 보고받고 충격을 받았었다.
일찌기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교수는 "조직은 퇴화(이권화)한다"는 국가흥망의 코드로 유명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표적 경우이다. 선관위는 김대중을 통해 헌법상 특권기관에서 권력기관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선관위는 10년후(2012년) 사전선거제를 도입한다. 이제 두개의 제도로 유례없는 부정선거의 틀이 완성된 것이다. 이후 부정선거는 정치권에서 사회단체 심지어 일반인에게도 공공연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선거소송이 무려 150여 차례나 이루어졌고, 하나같이 정상적 수사나 절차없이 사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기각되었다. 한국의 선진행정에서 예외적 현상이자 정의와 공정성 나아가 법치주의가 선거관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일찌기 공산주의를 경험했던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와 솔제니친([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은 "공산주의는 지성을 마비시키고, 역사를 왜곡(폄하)한다"고 결론 지은바 있다. 바로 20세에 남로당원이었고, 1960년대 말부터 북한의 비밀공작금으로 민주화운동에 나서고 마침내 4수끝에 대통령으로 자유 헌정을 유린했던 김대중이 인생이 좋은 사례이다."
오늘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서울에서 현대 한국을 만든 위대한 지도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황당해 한다. 심지어 화폐나 지명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세훈시장과 장동혁대표가 올공(올림픽공원)에 나타나 청년들을 격려하고 부정선거로 출발하여 광화문, 여의도와 올림픽공원을 이승만광장, 박정희광장, 전두환공원으로 명명하며 "대한민국을 되찾자(Restore Korea)"고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과연 그날이 올것인가?
2026.7.10
하봉규명예교수(헤리티지 코리아)
이 재판취소 저지모임
https://youtube.com/shorts/7UOjHUkPIOQ?si=76qbedGuLhLrHCgo
올림픽공원 총집결 호소
https://youtube.com/shorts/e7YJQWvVWo8?si=MxM_f0c1hU27gbcP
<노무현의 친부 노판석의 정체>
노무현의 부친 노판석은 6.25 당시 인민군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노무현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 1953년 노무현이 5살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약 20~30명 가량의 사람들을 무고하게 살해했다고 전해온다.
노판석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
노판석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가 철천지원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은 좌익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할 때 못 본 체 했다.
노판석은 왜 빨치산이 되었나?
노무현의 조부가 일제시대 때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해방이 되자 동네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괄시와 무시를 당하게 됐다.
이에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큰 앙심을 갖고 있다가 6.25가 터지고나서 괴뢰군이 전남 강진을 점령하자 괴뢰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철저한 앙갚음을 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빨치산들에게 자발적으로 식량과 물품을 대줄 민간인들은 없었기 때문에 여느 빨치산처럼 노판석 역시 지리산에서 가까운 남원 부근에서 민간인들을 약탈, 살해하지 않았겠나 하는 의혹이 있다 한다.
1953년 아군이 괴뢰군을 격퇴하고 남한 전역에 치안과 질서를 확립해나가자 노판석은 동네 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노무현(5살)과 노건평을 데리고 목포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야반 도주를 했다.
동네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배편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가족을 데리고 부산항에 도착한 노판석은 산골 오지인 경남 진영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그곳서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 한다. 당시에는 전란 직후의 혼란기로 호적을 새로 만들기가 매우 쉬웠다.
그리곤 또 다시 김해로 도주를 했고, 이후부터 노무현 집안은 경상도 출신 행세를 해온 것이라 한다.
노무현은 김해에서 역시 6.25 당시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권오석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권오석은 6.25 때 인민군 앞잡이로서 지역 주민 11명을 살해한 경력이 있다.
이후 노무현은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일을 채 1년이 못되게 하고 난 후 변호사 개업을 한다. 이때 노무현을 도와준 이가 김광일 변호사다.
김광일 변호사는 수습 변호사로 자기 사무실에 온 노무현에게 돈까지 빌려주면서 노무현의 변호사 개업을 도와준다. 이 때 빌린 돈은 불과 3개월 만에 다 갚았다.
김광일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시국사범들에 대한 인권 변론을 하는데, 노무현과 문재인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김광일 변호사 덕에 시국변론을 몇 번 하던 노무현은 김광일 변호사 덕에 김영삼 민주당 총재를 알게 된다.
YS의 추천으로 공천을 얻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 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훨씬 지난 후 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노무현은 "YS로부터 봉투를 많이 받아서 원도 없이 써봤다" 라고 썼다.
그리고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노무현은 이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졌고 이 덕분에 호남지역사람들과 김대중의 눈에 들게 됐다.
얼마 후 민자, 민주, 자민의 3당 합당 반대에 나서면서 이를 명분으로서 합당을 극렬 반대 했고, 꼬마 민주당에 잠시 머물다 DJ 진영에 합류했다.
이후 DJ와 노무현의 관계는 양부, 양자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노무현 장인 권오석의 정체>
권오석에 의해 학살된 양민 유족 중에 변재환 박사(58세)가 있다.
그는 “권오석에 의해 살해된 유족회”의 대표다. 그는 권오석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권오석씨는 태생부터 장님은 아니었다. 막걸리를 공업용 알코올에 섞어 마시다 실명된 것이다. 실명한 권은 6.25가 일어나기 전인 1948년에 남로당에 가입했다.
당시 우리 숙부님인 변백섭은 면장이었고 권오석은 면서기였다. 권씨는 사상관계로 의심을 받아 다른 면에 있다가 쫓겨 와, 변백섭 면장 밑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6.25가 나자, 권오석은 창원군 진전면의 치안대장이 되었다. 눈이 먼 권씨는 동네 사람들의 손바닥을 만져보고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를 등급별로 판정했다.
왜냐하면 손바닥에 구등살이 많이 배겨 있으면 순수한 농민이고, 아니면 공무원 또는 부자이기에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2002년 5월 3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은 장인의 묘소에 참배를 하면서 “장님(장인 권씨)이 부역을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조금 가담하고 더 가담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같은 시기에 권양숙은 아버지 권씨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때 나는 어려서 부모님 일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태생이 장님인 사람은 혼자서도 잘 다니지만, 후천적으로 실명한 권씨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권씨의 경우 장님이 된지 얼마 안 되었고 남편이 양민을 등급별로 손으로 판정하고 있을 때, 옆에서 부축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의 장모였다.
노무현 부부의 거짓말에 대해 변씨는 이렇게 반박한다.
“장모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 되나. 나는 권양숙씨와 동갑이다. 나도 아버지를 통해 숙부님의 학살사건을 낱낱이 듣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어렸다는 이유로 모른다는 것인가?
더욱이 아버지가 감옥에 있을 당시 권양숙은 15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왜 감옥에 갔는지 들었을 것 아니냐?
우리가 알고 있는 3.1운동이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아서 안 것은 아니지 않나.”
“학살당한 11명의 유족들은 궁핍하게 살았다. 6.25 이후 부모 두 사람이 있어도 어려운 살림인데 아버지 없이 산 유족들은 그야말로 피눈물 흘리는 세월이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했더라면 유족들은 부모 형제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을지 모른다.
"노무현 부부와 장모는 죄 없이 죽은 11명의 양민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제대로 알리고 사죄해야 한다".
권오석의 좌익 부역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대검찰청이 발간한 ‘좌익사건실록’에 있다.
피해자 측 증언에 따르면 권오석은 일제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면서기로 일했을 정도로 똑똑했으며, 양민을 학살하기로 결정한 인민재판에서 검사, 변호사, 판사 역할을 혼자 수행한 유일한 재판관이었고 그의 말 한마디로 양민의 생사가 갈렸다고 한다.
'실록' 책자에는 피해자가 9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피해자 측은 11명이라고 주장한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다음과 같다:
변백섭(4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변선섭(34, 농업, 창원군 진전면 일암리)
변회섭(3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양촌리)
김옥갑(53, 농업, 창원군 진전면 일암리)
김만작(32, 농업, 창원군 진전면 시락리)
김성갑(46, 농업, 창원군 진전면 창포리)
주정호(28, 군인, 창원군 진전면 봉암리)
박종주(51, 구장,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박주한(47, 농업,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정봉주(32, 농업, 창원군 진전면 광촌리)
권오건(28, 군인, 창원군 진전면)
피해자 유족들은 권오석이 시각장애인임에도 노동당 선전부장,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치안대장 등을 맡았던 사실이 그의 투철한 좌익 사상과 적극적인 활동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송정호 법무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권오석이 1956년 질병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1961년 재수감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를 넘어서'에는 북한이 남한으로 첩자를 보내려 했던 시도와 권오석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며, 권오석은 6.25 당시 마산지구 전투에 참여해 미군을 포로로 잡는 등의 공로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 체포된 후에도 사상 전향을 하지 않은 채 감옥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권오석의 딸이 노무현의 부인이 되어 입성하자 평양 방송은 이를 위대한 김일성 수령 정신의 승리라며 선전했고, 금강산에 관련 플래카드가 걸렸었다는 소문도 있다.
인사이드 월드 사이트ㅡ손충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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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조사에 노무현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1위라고 나오길래 이 칼럼을 퍼올립니다. 제대로 알고 좋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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